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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추석 당일에 그라운드 시소에서 전시를 하나 보고 스티븐 킹의 데뷔 50주년 기념 팝업에 다녀왔었다. 장소는 종각 영풍문고 내에 있었는데 포토존과 작품 등으로 소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둘러보다가 그래도 50주년인데 한 권 사자 생각하고 들도 나온 게 요 『로드워크』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J. K. 롤링이 필명으로 발표한 『커리어 오브 이블』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도 원래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쓴 것이라고 하니 작가들은 작품을 많이 쓰다 보면 다른 이름으로 발표하고 싶은 (큰) 욕구가 생기나 보다.

중년의 가장인 도스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집과 오랜 시간 몸담았던 세탁 회사 위로 고속도로가 놓이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위원회에서는 보상금을 수령해서 빨리 이사하라고 하고, 직장에서는 이전할 새로운 부지의 계약을 서두르라고 도스를 압박한다. 아내와 직장에는 모두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듯 거짓말을 지속하던 그는 사냥용 라이플과 폭탄을 구하는 등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를 거듭한다.
도스에게 집과 직장은 그냥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아내와 남부럽지 않은 TV를 사려고 같이 돈을 열심히 모았던 기억, 뇌종양으로 잃은 사랑했던 아들의 흔적, 제대로 능력을 인정해 준 존경할 만한 상사와의 추억 등이 켜켜이 쌓여 웃음, 눈물과 다양한 감정을 계속 상기시키는, 어찌 보면 그의 삶 자체였다.
아마 집이나 직장, 둘 중에 하나라도 무사했다면, 도스가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했던 아들, 의지했던 상사 등 삶에서 지속적으로 누군가를 잃을 때마다 느꼈던 누적된 상실감은 집과 직장, 모두가 사라지는 시점에 이르러 커다란 폭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도스의 마음과 정신은 상실을 겪을 때마다 작은 금이 가고 있었던 거 같다.

이야기는 철저히 도스의 감정을 따라간다. 그래서 전에 읽었던 다수의 스티븐 킹의 작품처럼 사건 중심의 스펙터클은 없다. 읽기 힘들었던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리 스릴러 느낌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하나를 잘하는 작가는 다른 것도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역시나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궁금증 하나, 어차피 들통날 거 필명은 뭐 하러 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