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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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건강하게 화를 내는 법을 아직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해서 지지난 주부터 이리저리 쌓여 온 감정을 꾹꾹 눌러 대기만 했다. 좋아하는 만들기도 하고 책도 읽었으나 거의 논문급이었던 책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만들기까지 끝내고 나니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와서 급기야 지난 목요일에 최고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그날 그냥 자려다가 집어 든 이 책의 첫 챕터를 읽다가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읽어나갈수록 흐느끼는 소리까지 터져 나와서 그 챕터만 읽고 책을 덮은 후에 간신히 울음을 삼켰다.

이 책이 슬퍼서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슬픈 책이 아니다. 그냥 내가 늘 생각하던, 마음에 담고 있던 어떤 부분을 가볍게 토닥이고 감싸주기도 했다가 치워주기도 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런 세심함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툭 무심한 듯 다가오기에 무방비로 있다가 감정의 쓰나미에 휩싸이게 되는 그런 '이상한' 책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의 삶은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에 어떤 위험과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먹고 뛰고 구르고 다치기도 하면서 몸이 자라날 것이다. 그렇게 몸이 다 자란 뒤에는 몸이 아닌 것들도 자라날 것이다. ……

우리는 모두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다. 용감하게 알을 깨고 나온 모든 아이들의 모험에 박수를 보낸다.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中 p.14~15

 

스스로가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MBTI 검사에서 '나는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누르는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던 친구의 동그란 눈이 생각난다. 친구는 이게 전혀 궁금하지 않단다. 왜 태어났는지 궁금한 만큼 나는 내가 원해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라니... 물론 저자가 말하는 태어남은 탄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낯선 곳에 갈 때 같은 모든 첫 경험을 시도하는 거 자체를 태어남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거나 삶을 시작하고 살아나가는 우리 모두는 태어나기로 결심했고 그렇기에 성장도 있다는 거,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삶을 좀 다르게 보는 데는 도움이 될 거 같다. 특히 부모와 아이, 상호 간에는 이런 시각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짐작한다. 살아보니 경험의 총량에 비례하는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中 p.20

타인의 삶을 예단하고 충고하는 일이란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 나도 그들과 같은 시대를 통과했다. 기혼자들의 세상에서 성장해 어른이 되었고 앞으로도 그들 속에 섞여 살아가야 한다. 내가 아는 어른 중에는 비혼으로 사는 어른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도 잘 사는 방법 같은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中 p.171

 

바라는 모든 것이 나이에 비례해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말과 행동이 앞서고, 타인과 내 경험 앞에서 겸손할 수 있으며, 인간, 또 나만 생각하지 않고, 상실과 불안을 먼저 고민하지 않는 삶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에 대해 섣부른 비난이나 비판하지 않는 포용력 넓은 사람이면서 상대방이 그렇지 않다고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

 

 

어릴 때부터 들은 평범한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라 신 아버지의 말씀을 어느 때보다 실감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가 비슷한 형태로 비슷한 시기를 지나며 스스로를 세상의 가장자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저자에게 공감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담담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속에 저자가 읽었거나 읽고 있는, 혹은 다시 읽은 그림책들의 등장이 공감의 영역을 넓히고 한층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읽으면서 몇몇 그림책들은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업하면서는 그림책도 자주 사고 읽었었는데 이제는 너무 텍스트 중심의 책 읽기를 하고 있다. 만화, 애니메이션처럼 그림책도 아이들만 보는 게 아닌데 말이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저자를 응원한다. 덕분에 몇 주간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를 비롯해서 이 책을 읽은 모두가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하루하루 충실한 나름의 일상을 채우며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완성된 노년의 삶을 꿈꾸는 우리 모두 다소 엉뚱하고 이상(理想)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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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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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읽게 된 『신라 공주 해적전』. 읽기 전 아주 단순하게 공주가 해적이 된 얘기인지, 해적이 공주라는 건지, 뭐 이런 의문이 들었는데...

 

 

장보고 무리 틈에서 장사치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재물을 모은 장희는 장보고 사망 이후, 도망쳐 한주라는 곳으로 온다. 별다른 일 없이 빈둥대다 모아둔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자 돈벌이를 위해 거리로 나가 '행해만사(行解萬事)', 즉 무슨 문제든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깃발을 내걸고 자리를 편다. 밤이 되고 허탕인가 싶어 치우려는 찰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 몰린 한수생이 나타난다. 한수생을 속여서 한동안 다시 편하게 지내보려던 장희는 그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약해지고 배를 타고 함께 달아난다. 항해를 계속하던 두 사람은 서해에서 가장 무섭다는 해적 대포고래를 만나 노비로 팔아넘겨질 위기에 처하는데...

『신라 공주 해적전』은 장보고 밑에서 천하를 겪어 이치에 밝고 꾀가 많으며 언변에 능한 장희와 작은 마을에서 글만 읽고 농사일만 하여 어수룩하고 올곧은 한수생, 두 남녀의 모험담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두 사람, 남녀가 주인공이면 거의 열에 아홉은 결말에 둘이 사랑에 빠지면서 끝난다. 그 탓인지 나는 장희가 마음을 바꿔 한수생을 구하러 가는 시점부터 '둘이 맺어지겠구나'라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건 아주아주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ㅎㅎㅎ

 

"본시 사나운 기세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어서게 되면, 중간에 그게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그냥 그 기세에 눌려 일을 저지르게 되는 수가 많은 법이오. 더군다나 자신은 현명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데 주위에는 멍청한 자들뿐이라고 믿고 함부로 말 떠들기 좋아하는 놈이 한둘만 섞여 있으면 일이 험악해지는 것은 더 쉬워지게 마련이오."


- 『신라 공주 해적단』 中 

 

모든 갈등을 풀어나가는 주도권은 언제나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장희가 가지고 있다. 물론 한수생의 우직함이 중요한 순간에 한몫하기도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것은 대부분 장희다. 이야기 안에서 2명의 공주가 등장한다. 한 명은 다른 사람에게 공주라는 이름으로 이용당하는 허수아비고, 또 다른 쪽은 협상을 통해 살생 없이 바다를 평정한 해적에게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각각 누구인지는 작품에서 확인하시길...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치 알려지지 않은 장보고 부하에 관한 구전 설화를 읽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줄 알지만 왠지 이랬을 거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은 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 목적이 일치하면 무리를 이루어 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짓밟기도 한다. 한수생을 약탈하고 죽이려 한 마을 사람들이 그랬고, 장희와 한수생이 만난 해적들이 그랬고, 해적들과 결탁한 관군들이 그랬다. 장희와 한수생은 그런 상황에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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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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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여행을 친구와 둘이 갔었다. 여행지는 일본 도쿄였고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여정이나 방문지에 대한 것들이 거의 맡겨진 상태였다. 비용 부담은 친구가 더 많이 하기도 했고 내가 흥미 있는 곳만 주구장창 다니기에는 좀 걸려서 느슨한 일정에 보편적으로 많이 가는 곳들을 다양하게 챙겨 넣었었다. 이렇게 나름 서로를 배려했다고 생각한 여행은 정말 최악이었는데 친구는 옆에 그냥 서 있으면서 길을 잃을 때마다, 방문지 한곳이 끝날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하냐, 거기 왜 가는 거냐, 꼭 가야 하는 거냐며 계속 날 다그쳤다. 똑같이 초행길이었는데 딱히 아이디어 없이 닦달만 해대는 친구에게 나는 점점 지쳐갔고 화가 났다. 꽤 배워왔던 일본어가 한 번씩 들릴 때마다 뿌듯해할 겨를도 없었고 여행 막판 즈음에는 나는 말을 잃었다. 친구는 자기 기분을 바로바로 표현해서인지 계속 기운찬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저기압인 게 자기도 느껴졌는지 몇 번은 눈치를 봤지만 결국은 자기 기분으로 돌아갔다. 차라리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 중심으로 아주 빈틈없이 꽉 찬 일정을 짰으면 더 나았을 텐데...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절대적으로 혼자 하는 여행을 선호하게 되었다. 특히 처음 어디를 갈 때 누군가랑 가는 것보다 혼자 가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만일 헤매더라도 혼자 헤매는 게 속 편하니까. 그래서 이 친구와는 어떻게 되었냐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관계가 이어지기는 했다. 친구였으니까 그게 친하다는 착각이었든, 뭐든 간에 친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한다. 정말 잘 살고 있을 거다. ^^

이 여행 때문에 친구를 탓할 생각은 없다. 정말 정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우리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과연 친하다는 게 어느 정도의 관계일까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친구와 길게 가지는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친구와 나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과연 우리는 진짜 친했던 걸까?

 이런 경험이 나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함께 보냈던 시간 속에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한다. 단순하게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 사람의 취향, 성향 등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고민하면서 많은 부분을 살피고 정보를 모은다. 문제는 이런 판단의 신뢰성이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가 내린 판단을 신뢰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정한 기준과 그로 인한 판단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타인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우리가 범하는 오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해 동안 어마어마한 금액의 사기를 치는 상황에서도 조금도 의심받지 않았던 메이도프, 미국 중앙정보국 최고 간부 위치까지 올라간 쿠바 스파이, 소아성애자 샌더스키, 천재 시인의 자살과 테러 집단 간부의 자백 등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각종 통계와 연구 자료를 연결 지어 그토록 거대한 속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당연하게 지나치면 안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모든 코치가 소아성애자라고 가정되면, 어떤 부모도 아이가 집 밖을 나가게 하지 않을 것이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코치를 맡겠다고 자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결정이 아무리 끔찍한 위험을 수반하더라도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는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가 결국 배신으로 끝나는 드문 경우에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은 것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비난이 아니라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


- 『타인의 해석』 中 p.177

  투명성은 행동과 태도, 즉 사람들이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그들이 속으로 느끼는 방식에 대한 확실하고 믿을 만한 창을 제공한다는 관념이다. 이것은 우리가 낯선 사람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는 결정적인 도구 중 두 번째 것이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거나 그와 소통하지 못하거나 그를 제대로 이해할 만한 시간이 없을 때, 우리는 행동과 태도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타인의 해석』 中 p.190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타인에 대해 진실을 기본값으로 놓도록 설계되었다. 낯선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그가 진실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끔 되는 것이다. 농담처럼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 번을 넘어가면 속은 사람이 나쁘다는 말을 하는데 기본값을 진실로 놓는 인간이 속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주변에 누군가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저 다른 사람도 나에게 진실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무슨 핑계를 대도 범죄자는, 나쁜 놈은 속이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미드 중에 표정이나 제스처를 읽고 범인을 밝혀내는 수사극이 있었다. 책에서 언급된 안면 동작 부호화 시스템이라는 소재에 착안한 것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게 더 판단하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숨길 수 없는 감정을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런데 문화권에 따라서 같은 표정도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표정을 학습한다. 책 같은 텍스트,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서 사람이 놀랐을 때나 행복했을 때 짓는 표정과 행동을 끊임없이 본다. 그리고 그것으로 내 감정도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런 학습의 밖에 있으면 이런 표준화된 태도와 행동은 무용지물일 수 있는 거다. 더불어 학습의 안에 있더라도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다 다를 수 있기에 태도와 행동을 내면과 바로 연결 짓는 판단은 아만다 녹스의 사례처럼 무고한 사람을 마녀사냥할 만큼 아주 위험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타인에 대해 판단할 때 어려운 부분은 그 사람이 드러내지 않은 배경이나 맥락을 우리가 절대 알 수가 없다는 점인 거 같다. 저자가 책의 시작에 언급하고 끝에 집중적으로 다루는 샌드라 블랜드의 사건은 우리가 타인을 단편적으로 판단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녀를 체포했던 경찰관 엔시니아는 말콤 글래드웰이 지적한 거의 모든 오류들을 바탕으로 샌드라를 의심했는데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이 두 사람 모두 서로가 그렇게 행동한 배경이나 맥락을 전혀 몰랐다는 것일 거다. 사실 두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되는데 결국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지고 이주한 젊은 여성이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해임된 엔시니아가 여전히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샌드라를 탓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비극이라면 비극이겠다.

우리는 의심과 경계로만 살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믿고 의지한다. 이 때문에 뒤통수를 맞는 것까지 감수하지 않으면 사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도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편적인 기준과 판단이라는 걸 너무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됨을 여러 연구와 수치로 보여 준다. 전에 선생님이 대화 중에 나와 친구에게 각각 적립제와 차감제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타인을 만났을 때 나는 신뢰를 조금씩 쌓는 스타일이고 친구는 100% 신뢰에서 시작해서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감을 한다는 얘기였다. 선생님은 본인도 차감제로 살아왔다고 하면서 사람에 너무 치이니까 적립제로 바꿀까 한다는 말씀을 했는데 나는 두 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어 꼭 적립제로 한다고 해서 사람에 덜 치이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가지고 있는 성향에 따른 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닐 거라는 데 우리 모두 동의했었다.

메이도프에게 뒤통수 맞고 큰 돈을 날린 것과 마코폴로스처럼 사기꾼 메이도프를 꿰뚫어봤지만 상대를 과대포장하여 총기까지 사면서 공포에 떠는 것, 둘 중에 어떤 게 더 나쁜 일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한 세상에서 단순하게 선택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거 같다.

+ 이만한 두께의 책을, 추리소설도 아닌데 이렇게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은 건 처음이다. 정말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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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 무심코 읽었다가 쓸데없이 똑똑해지는 책
오후 지음 / 웨일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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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평균 점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3과목이 있었다. 물리, 지구과학, 수학! 그렇다. 나는 문과생이다. ^^ 그나마 수학은 단원별로 점수가 높을 때도 간간이 있었는데 - 미분, 적분, 행렬, 통계 등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 물리, 지구과학은 뭘 배우든 점수가 신통치 않아서 나도 나지만, 담임 선생님의 입시 지도까지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같은 과학이래도 화학은 엄청 잘했고 -이건 거의 암기 과목이니까... ㅎㅎㅎ-, 생물은 재미가 없었지 도통 뭔 소린지 모르겠는 건 아니어서 과학 4과목의 점수는 거의 극과 극을 달렸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학이나 과학을 좀 다르게 접근한 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뭔가 나에게 다른 길, 다른 방법을 보여주지 않을까 해서 인 거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책들하고 크게 성공적인 만남을 가진 건 아니었다.

책방난달에서 찾은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집어 들었는데 계산을 하고 나서 바로 옆 책장에 놓인 다른 책이 더 재미있어 보여 잠시 잘못 샀나 했다. 또 같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가 싶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 책 재미있었다. 제목에 과학이 쓰여있지만, 딱히 과학 책이라고 한정 짓기에는 역사, 정치, 철학 등 건드리는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큰 편이고 저자의 재기 발랄함이 느껴져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책 속에서 던져주는 생각할 거리들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말이다.

 

 

인공 비료 생산 이전보다 지구의 인구는 훨씬 늘어났고, 자연은 더 파괴되었으며, 우리는 너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식량 위기, 식수 위기, 혹은 경제 위기는 세계를 지옥으로 바꿀지도 모른다. 인류가 사라지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동안 서로에게 보여줄 잔인함이 두렵다.


-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中 p.57

우리는 일상적으로 그냥 먹고산다. 배고프니까 먹고,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그것에 어떤 기술이나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는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굶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식량의 대량 생산에 인공 비료가 필요하고 이 인공 비료는 질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질소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고, 나라의 국경이 달라진 데다 화학 무기 개발로까지 이어졌다는 걸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 정확히 말하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 이 책은 이렇게 우리가 용어 정도만 아는 생활 속 과학 기술의 산물을 두고 그게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정치적인 배경, 그리고 관계된 다른 사물들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아울러 이런 기술들이 구축한 세상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되는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산다. 문화 자체가 인위에서 시작한 것이다. 동물 세계를 통틀어서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고 한다면 인간이 부자연스러운 일들을 매우 잘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성소수자가 자연의 섭리를 어겼다 한들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피해는 많은 경우 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두고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 다수가 준다.


-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中 p.215


나는 불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불화가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에서도 식구들끼리 큰 소리가 나거나 하면 그냥 좀 그러려니 해주고 넘어가면 안 되냐는 얘기를 하는데 가끔 뉴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나는 약간 그런 마음인 거 같다. 그러려니... 책을 읽으면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간성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고, 인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게 놀라웠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정한 성별 정정 허가 기준은 웃겼고... ^^

기본적으로 인간은 나랑 다른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 다른 상대가 껄끄러운 적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성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싶다면 이유는 어마 무시하다. 중요한 건 계속 내가 다수에 속해 있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냐는 거 아닐까? 회사에서나 개인적으로 어떤 사업, 프로젝트 등에 지원하려다가 자격 요건에서 나이나 연혁, 규모 등으로 좌절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고립된 느낌이 드는데 요즘 나는 내가 엄마(주부)도 아니고 청년도 아니라서 갑갑할 때가 있다. ㅎㅎㅎ 사회적으로 소수자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때는 다수의 기준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고 그 안에서 나도 얼마든지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방식을 습득한 기계는 인간의 편견까지 그대로 물려받는다. 이전에 존재하던 소수자 배척은 빅데이터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그런 배척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공정함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가 얼마나 피해를 받는지도 빅데이터로 수치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런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빅데이터가 과정이 아니라 효율만 찾아간다면 그 길은 필연적으로 차별로 흐르게 된다.


-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中 p.318


몇 년 전부터 핫한 빅데이터. 그냥 용어만으로 대충 짐작하던 게 이 책 덕분에 명확해졌는데 이런 빅데이터 분석을 맹신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안 좋은 사례들이 마음에 걸렸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 명암을 다 가지고 있는 빅데이터는 미국의 월마트의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지점에서 딸기맛 팝타르트가 불티나게 팔리게 해 주었고, 서울시 올빼미 버스의 효율적인 운영 노선 지정 등에 도움을 주었지만, 선량한 관광객이 테러리스트로 체포되거나 좋은 평가를 받는 교사가 해직되게도 만들었다. 기술이라는 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또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빅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분명하고 저자가 보여준 대로 인생의 난제까지도 분석해 낼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다. ^^

총 7개의 챕터는 식량, 단위, 플라스틱, 성, 우주, 빅데이터, 기상을 다루고 있다. 대충 알고 있던 부분이 자세히 들어가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평소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플라스틱과 기상을 다룬 챕터를 보고 나니 -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냥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피해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고 세상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책 뒤표지에 '빌 브라이슨도 울고 갈, 이토록 웃긴 과학 교양!'이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 있다. 전에 빌 브라이슨의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느낀 게 맞다면 그도 이 책 좋아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후기에 구매 인증을 하면, 너무 길어서 책에 싣지 못한 두 챕터를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영수증을 버려서 어떻게 구매 인증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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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 코미디언 무어 씨의 문화충돌 라이프
이안 무어 지음, 박상현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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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게 국경을 넘어서 벌어지는 일이 되면 정말 다른 차원이 이야기가 되는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영국인 모드족 이안 무어는 임신한 아내와 아들, 키우던 개까지 데리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바로 그런 이주를 감행한다.

물론 그에게는 반은 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며 프랑스어가 가능한 아내가 있고, 아내의 조부모님이 프랑스에 계셔서 무어 가족의 정착을 돕기는 했지만 주차 공간 확보조차 피 튀겼던 영국 크롤리에서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작은 농촌마을로 이주해서 농장까지 꾸리는 건 상상으로도 쉽게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게다가 모드족으로 매사 자신의 스타일이 확고한 이런 사람이 말도 안 통하는 프랑스 시골에서 농장 일을 한다니...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정말 호기심 한가득이었다. ^^

 

 

저자인 이안 무어는 원래 작가가 되고 싶었고 스탠드업 코미디도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으로 작가의 꿈도 이뤘는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신랄하고 통렬한 문체가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만든다. 원서로 읽으면 얼마나 더 거침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 중 유일하게 영국에서 태어난 새뮤얼은 셋 중에서 가장 '영국적인' 아이다. 물론 여기에서 '영국적'이라 함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새끼 bugger'라는 욕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새뮤얼의 동생인 모리스와 테렌스는 둘 다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특히 제일 어린 테렌스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가장 프랑스인에 가깝다. 항상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파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에 모리스는 감성이 넘치고 예술가 기질을 타고나서 창의적이고, 자기 감정을 쉽게 표현한다. 하지만 그런 모리스도 프랑스 친구들 사이에서 앵글로-색슨의 본색을 드러낼 때가 가끔 있다. 가령 축구 연습 때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게 그렇다.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中 p.55

 

프랑스에 이주하고 5년 사이에 태어난 아들 둘까지, 모든 자녀를 묘사하는 표현에서도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본업인 스탠드업 코미디를 계속하기 위해 일주일에 절반은 영국까지 출장을 다니는 이안보다는 아내 나탈리가 예민하고 섬세한 남편과 각기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세 아들, 그리고 말, 닭, 개, 고양이 등 농장의 모든 생명체를 보살피고 달래는데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는 실질적이고 정신적인 지주이다. 남편에 세 아들이라니, 고양이라도 암컷을 키우고 싶어 했던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처음 해 보는 농장 일과 동, 식물을 돌보는 데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가족들의 저마다 다른 성향으로 인한 문제들, 그리고 영국과는 다른 문화적, 사회적인 차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사건사고들, 모두 가끔은 멘탈을 붕괴되게 하고 쓸데없이 기운 빼거나 인내심에 한계가 오게 만들지만 저자는 때로는 거침없는 비난과 비판으로, 때로는 인내와 끈기로, 결국(?)은 포기와 인정으로 적응해 나간다.

 

 

… 내 생각에 프랑스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파리지앵, 즉 파리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른 프랑스인들을 수준이 낮다고 내려다본다. 두 번째 그룹은 파리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프랑스인들이다. 이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은 진정한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이 있으니, 레퐁시오네르 les Fonctionnaires, 즉 공무원들이다. 파리 사람들과 '진정한' 프랑스인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집단이다.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中 p.341~342

 

  서류를 잔뜩 들고 도청에 도착한 우리는 번호표를 받고 호명을 기다렸다. 대기실은 혼잡했다. 우리가 겪은 그 모든 과정을 그대로 겪은 사람들(이 사람들은 프랑스 자동차를 산 프랑스 사람들이었는데도 그랬다)이 삶의 희망을 잃고 모여 있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특별히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미워하는 게 프랑스의 관료주의이다.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中 p.344

 

단연 하이라이트는 영국에서 산 자동차를 등록하기 위해 두 부부가 프랑스의 공공기관, 공무원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였는데 한 번씩 우리나라 공조직도 속 터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럴 때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거 같다. (그런데 최장 3년 동안 프랑스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급 육아휴가는 좀 부럽더라. ^^;;;)

 저자와 그 가족이 겪는 이 모든 과정을 읽어나가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같이 속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미소를 짓게 된다. 약속된 날짜가 별 의미 없는 공사들, 유달리 동물들에게 마음 약한 나탈리에게 쏟아지는 동물 구조 요청, 이안에게만 일어나는 동물들과의 트러블까지 남이 속 터지는데 껄껄 웃고 있는 게 살짝 미안하기도 한데 저자도 모든 후회는 집에 돌아와서 5분 사이에 사라진다고 하니 그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던지에 상관없이 결국 그도 웃었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과 미니 인터뷰가 별도로 있는 것을 보고 역시나 저자는 세심한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번 더 했다. 코로나19로 그의 멀고 잦은 출장 여정도 일시 멈춤 상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도 농장에서의 유쾌한 일상은 계속되고 있을 거 같다.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어서 다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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