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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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에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읽게 된 『신라 공주 해적전』. 읽기 전 아주 단순하게 공주가 해적이 된 얘기인지, 해적이 공주라는 건지, 뭐 이런 의문이 들었는데...

 

 

장보고 무리 틈에서 장사치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재물을 모은 장희는 장보고 사망 이후, 도망쳐 한주라는 곳으로 온다. 별다른 일 없이 빈둥대다 모아둔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자 돈벌이를 위해 거리로 나가 '행해만사(行解萬事)', 즉 무슨 문제든 말만 하면 다 풀어준다는 깃발을 내걸고 자리를 편다. 밤이 되고 허탕인가 싶어 치우려는 찰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 몰린 한수생이 나타난다. 한수생을 속여서 한동안 다시 편하게 지내보려던 장희는 그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약해지고 배를 타고 함께 달아난다. 항해를 계속하던 두 사람은 서해에서 가장 무섭다는 해적 대포고래를 만나 노비로 팔아넘겨질 위기에 처하는데...

『신라 공주 해적전』은 장보고 밑에서 천하를 겪어 이치에 밝고 꾀가 많으며 언변에 능한 장희와 작은 마을에서 글만 읽고 농사일만 하여 어수룩하고 올곧은 한수생, 두 남녀의 모험담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렇게 두 사람, 남녀가 주인공이면 거의 열에 아홉은 결말에 둘이 사랑에 빠지면서 끝난다. 그 탓인지 나는 장희가 마음을 바꿔 한수생을 구하러 가는 시점부터 '둘이 맺어지겠구나'라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건 아주아주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ㅎㅎㅎ

 

"본시 사나운 기세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일어서게 되면, 중간에 그게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도 그냥 그 기세에 눌려 일을 저지르게 되는 수가 많은 법이오. 더군다나 자신은 현명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데 주위에는 멍청한 자들뿐이라고 믿고 함부로 말 떠들기 좋아하는 놈이 한둘만 섞여 있으면 일이 험악해지는 것은 더 쉬워지게 마련이오."


- 『신라 공주 해적단』 中 

 

모든 갈등을 풀어나가는 주도권은 언제나 똑똑하고 순발력 있는 장희가 가지고 있다. 물론 한수생의 우직함이 중요한 순간에 한몫하기도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하는 것은 대부분 장희다. 이야기 안에서 2명의 공주가 등장한다. 한 명은 다른 사람에게 공주라는 이름으로 이용당하는 허수아비고, 또 다른 쪽은 협상을 통해 살생 없이 바다를 평정한 해적에게 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각각 누구인지는 작품에서 확인하시길...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치 알려지지 않은 장보고 부하에 관한 구전 설화를 읽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줄 알지만 왠지 이랬을 거 같기도 한 이야기였다. 혼란한 시기에 사람들은 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 목적이 일치하면 무리를 이루어 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짓밟기도 한다. 한수생을 약탈하고 죽이려 한 마을 사람들이 그랬고, 장희와 한수생이 만난 해적들이 그랬고, 해적들과 결탁한 관군들이 그랬다. 장희와 한수생은 그런 상황에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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