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하고는!)

 

 

#. 1

 

꿈을 꿨다.

 

나는 루리와 어느 한적한 시골 강가에 있었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의 바구니에는 큼지막한 먹빛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신학을 주제로 두런거렸다. 이적(異跡)에 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오래전, 그러니까 한 10년 전 쯤 루리는 이적에 경도된 바 있다. “맹인이 의안으로 사물을 구분 할 수 있게 되고, 팔목이 절단된 자리에서 다시 살이 돋아난다면 믿겠어?” 교회를 옮겼다는 직후였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 2

 

부모님은 두 분 다 사업을 했기 때문에 늘 바빴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타입이라 초딩 때부터 혼밥을 즐겼다. 놀이터 그네에 앉아 KFC치즈버거와 콜라 한 캔으로 저녁을 때우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덕분에 부모님은 자식을 돌보는 방법을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반면 루리는 평범한 타입이었다뭘 잘 내색하는 성격이 아니라 무던해 보였을 뿐. 부모님은 루리도 방조하고 말았다. 실수였다. 외롭고 소외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게 기적이 필요했던 이유였겠지.

 

#. 3

 

시점은 내 방으로 옮겨졌다. 책장이 방 가운데 놓여 있었다. 도서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불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를 꺼내 뒤적거리며 말했다. 기적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을지라도 성서의 본질은 아니야. 기적을 추종하는 태도는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불트만 이후에 우리는 비신화화라는 올바른 성서의 독법을 알게 됐잖아?

 

루리는 오히려 그렇기에 이적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이 실존하고, 실존함을 이해한다면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실상 우리의 논쟁은 접점이 없었다. 물 없이 주무르는 반죽이 뭉쳐질까. 나는 기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시작했고, 루리는 아예 기적의 존재를 전제하며 시작한 탓이다.

 

그렇다면 너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적교인인가. 하고 논박하자. 루리는 묵묵하게 수긍했다. 그 지점에서 나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날카로운 어휘들을 손톱처럼 세웠다. “독사의 자식아. 네 생각은 회칠한 무덤과 같구나!"(이건 심지어 이럴 때 쓰는 말도 아니다.) 무슨 엑소시즘이라도 시작할 태세로. 루리도 지지 않고 마주 퍼부어댔는데, 결국 우리의 언쟁은 몸싸움으로 번졌고 책장을 가운데 두고 쫓고 쫓기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누가 누구를 쫓는 상황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 4

 

..  올해의 워스트 드림으로 임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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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12-1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하나 마나 한 이야기 그 자체구먼요.ㅎㅎ

즉, 내 스타일. 그런데 문득, 무종교성의 기독교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출처를 모르겠네요. 짜증....

(질문: 혹시.... 누드치즈 님이 루리.....는 아니지요?)

뷰리풀말미잘 2016-12-16 22:03   좋아요 0 | URL
왜 한수철님 스타일이냐 하면 제가 한수철님의 글을 자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흉내낼 때도 있죠.

누드치즈님은 루리가 아닐겁니다. 루리의 노트북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고요 또 그걸 전혀 불편해하지도 않아요. 여담인데, 오늘 아침에 ‘비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저를 깜짝 놀라게 했답니다. 그런 단어도 아냐고 물어보니까 사실 본인은 비단뱀이라고 고백하더군요. 여하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타입의 인간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먹으로 정리하는 타입이긴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