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2010-01-20  

뷰리풀말미잘님. 

왜 가끔 그럴때가 있잖아요. 그냥, 아무 이유없이 불러보고 싶은 그런때요. 오늘이 저한테는 그런 날이네요. 그래서 .. 그냥 불러봤어요. 

덧. 근데, (말미잘님의 서재에는 비밀 댓글이 참 많은데) 저는 비밀 댓글 안쓰니까 신선하죠? 후훗 :) 

음..저 살짝 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뷰리풀말미잘 2010-01-21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지하철을 타고 맨 마지막 역 까지 갈 일이 있었는데, 마지막 역에서 그 칸에 탄 사람은 저 밖에 없었고, 제 건너편 선반에는 주인 없는 우산이 하나 있었어요. 저는 그 우산의 운명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분실물 센터로 옮겨졌다가 주인을 찾게될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저는 저도 모르게 우산을 끄집어내려 면면을 살펴봤습니다. 대한화재보험 마크가 찍혀있는 평범한 녹색 체크무늬 우산이었어요. 우산 듣는데 할 말은 아니지만 솔까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디자인인거에요. 잃어버리면 당장이야 아쉽지만 그렇다고 찾으려고 전전긍긍할만한건 아니었지요. 저는 다시 우산을 잃어버린 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습니다. 혹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창밖을 보니 좀 맞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 비가 아니지 않겠어요? 사실 지하철 선반에 우산을 두고 내릴 만큼 그렇게 부주의한 사람이라면 비 좀 맞고 정신 차려야 할 필요도 있겠다 싶어서 별로 동정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 순간 지하철 도어가 무슨 모세 홍해 가르듯 양쪽으로 좍 열렸고, 저는 그게 다시 닫힐세라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종착지로 들어가는 지하철에 혼자 같히는건 제법 난감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떠밀리듯 개찰구 앞까지 왔을 때 제 어깨에는 보스턴 백이, 왼손에는 제 까맣고 늘씬한 장우산이, 오른손에는 대한화재 녹색 체크무늬 우산이 나란히 들려 있었어요. 큰 문제였죠. 제겐 교통카드를 찍을 세 번째 손이 없었고, 그 많은 짐을 들고 뛰어넘기에 개찰구는 꽤 높은 편이었으니까요. 염력으로 우산을 공중에 띄워볼까 생각했지만 9.8N이나 되는 지구의 중력가속도를 커버하기에 오늘의 포스는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장고 끝에 보스턴백에 체크무늬 우산을 잠시 넣기로 했죠. 장우산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백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게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을 한 칸 내려왔는데 세상에. 10분에 한 대씩 오는 그 버스가 마침 출발하려고 엔진을 움찔거리고 있더라고요. 어쩌겠어요. 뛰어야지. 그게 대충 9시간 전이었고, 지금 다락방님 방명록을 읽다가 문득 생각났는데, 저는 아직까지 백을 열어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주인없고 디자인 평범한 대한화재 초록색 자동우산에 관심없으세요?

다락방 2010-01-2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아뇨, 저는 주인없고 디자인 평범한 대한화재 초록색 자동우산에는 관심 없어요. 그보다는 그 우산이 들어있는 보스턴백과, 그 보스턴백을 들고 있는 사람쪽에 더 관심이 많죠. 그리고 우산에 대해서라면,

저는 우산을 주는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음,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군요. 그러니까 내가 만났던 남자들-그러니 좋아하는 남자들이었겠죠-중에 두명이 내게 우산을 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둘다 내게서 그 우산을 다시 가져갔고, 이상하게도 그런 남자들과는 연이 닿질 않더군요. 물론 아직까지 그들과 저는 연락하는 사이이고 여전히 아는 사이이지만 우산을 주었다가 다시 가져가기전보다 그 관계가 희미해졌어요. 그래서 나는 우산같은 거,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말미잘님과 더 친해지고 싶고, 또 더 친해진다면 그 관계를 오래오래 가져가고 싶거든요. 그러니 나는 우산보다는 차라리 비를 맞는쪽을 택할래요. 사실 비는 어제 맞은걸로도 충분하지만.

덧붙이자면, 말미잘님의 위(↑) 댓글은 멋져요. 그 어떤 방명록의 댓글들 보다 으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