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 경제적 불안을 권하는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법
다우치 마나부 지음, 김정환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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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이라는 표지의 글자가 흥미롭다. 흔들리는 모양의 글씨체다. ‘돈이라는 숫자에 미친 사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질식하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기에 이런 제목이 만들어졌구나, 싶다. 내가 저자라면 ‘돈이면 다 된다는 착각’이라고 지었을 것 같기도 하다. 집이 자가여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더라도 노후에 돈이 모자랄까, 우리는 전전긍긍이다. 이렇게 ‘돈’에 대해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그 실체를 하나씩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 다우치 마나부는 졸업 후 2003년 골드만삭스 증권 주식회사에 입사해서 16년간 트레이더로 종사했다. 2007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본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겪은 셈이다. 퇴직 후 책 집필과 강연활동 중이다. 2019년 일본 금융청은 “2017년 기준으로 평균적인 무직 고령 부부 세대의 경우 매달 약 5만 엔의 생활비 적자가 발생한다. 따라서 노후 기간을 30년으로 가정하면 약 2,000만 엔의 자금이 부족할 것”(p.17)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후 ‘노후 2,000만 엔 문제’가 화제가 되어 돈에 대해 모두가 불안한 사회 분위기가 가속화됨을 느낀다. 한국도 IMF와 2007년을 통과하며 비슷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문제로는 먼 나라지만, 에너지를 수입하는 상황이나 인구감소, 고령화 같은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에, 일본의 오늘날 사회문제는 한국의 미래이기도 한, 매우 가까운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더 몰입해서 읽었다.

4부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간의 불안을 어떻게 팔고 있는지를 먼저 이야기한다. 실물경제시대에서 일본은 잘 나갔지만 화폐경제로 이행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이후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진 사회에서 노후에 돈이 모자랄 수 있다는 불안은 초등학생에게까지 투자 교육이 필요하다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돈으로 문제가 해결가능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서비스와 노동집약점 물품을 제공할 노동력이 없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다. 노동력이 없다면 비용은 더 비싸질 뿐이고, 그렇게 되면 그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있는 노후를 준비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결국 돈 자체에는 힘이 없으며 사회를 움직이고 가치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노동과 연대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투자에 성공한 사람을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다.
“(...)성공은 다르다. 우연성, 특수한 상황,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노력 등이 겹친 결과일 때도 많기에 성공의 원인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노력을 따라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SNS에서 “00년 만에 1억 엔을 벌었다”라는 투자이야기에는 많은 사람이 달려든다며 “따라 하기 쉬워 보이는 성공 사례일수록 성공에 필요한 요소가 빠져있다. 그래서 재현성이 낮고, 실패하기 쉽다.”(p.66)라고 말한다.

또 저자는 1990년대 일본이 만들어낸 워크맨을 들고 다니던 세계인들이 지금은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으로, 대여비디오는 유투브와 넷플릭스로 대체된 오늘날을 짚으며 “도전하는 사람을 키우지 않고 투자 상품의 지식만을 가르쳐서는 진정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손에 넣을 수 없다.”(p.225)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공대에서 창업의 아이템을 찾기보다 안정적인 의대진학을 더 선호하는 우리나라 기존 정서에 꼭 필요한 조언으로 들린다.

마지막 부분의 “서로 빼앗을 것인가, 함께 나눌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인상적이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단순히 개개인의 ‘돈에 대한 불안’으로 인식하면 협력은 어렵다. 자신의 돈이나 일자리를 지키자는 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일손 부족’이라는 사회 전체의 과제임을 알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이런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면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하기 시작한다.”(pp.232-233)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매일 밤, 잠 못 이루는 2030세대와 노후 자금의 압박에 시달리는 중장년층에게 추천한다. 돈의 지배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진짜 경제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현대인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돈때문에불안하다는착각#부키#다우치마나부#코스피#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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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아포리즘 -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당신에게 괴테 철학
김민준 지음 / 자화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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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83세에 영면하기까지 문학, 과학, 정치 등 다방면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아간 사람이었다. 그의 바쁜 삶을 관통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완성해 나간 '성장형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20대에 쓴 ‘베르테르의 슬픔’, 30대 후반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전 생애에 걸쳐 82세에 마무리한 <파우스트> 저술까지 삶의 모든 방황과 실연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영적인 성장 역시 멈추지 않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파우스트의 말처럼,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욕망하고 방황하나, 파멸하지 않고 자신을 완성해냈다.

200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넘쳐나는 정보와 불확실한 시대에서 불안한 미래와 무기력한 과거의 후회에 묶여있다. 이런 생각들의 과잉은 우울을 동반한다. 우울은 사람을 가라앉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 <괴테 아포리즘>을 추천한다. 괴테 철학의 핵심은 관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실천적 역동성'이다. 이 책은 '이제는 행동이 필요한 당신에게 권하는 괴테 철학'이라는 부제 아래, 현대인에게 유용한 60가지 핵심 정수를 담았다. "두려움을 실천으로 변화시킬 때 내면이 성숙한다"라는 표지 문구처럼, 책은 삶을 움직이는 실천적 철학을 전한다.

책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총 60개의 아포리즘으로 전개된다. 방황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행동의 중요성, 고독의 활용, 관계의 미완성성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을 다룬다. 삶의 권태와 불안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조율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아포리즘 3, 행동하는 사람만이 경험을 소유한다'와 '아포리즘 18, 고독은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부분이 인상적이다. 괴테는 젊은 시절의 갈증과 혼란을 고독 속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명작으로 승화시켰다. 이 글들에서 고독을 단순히 단절이나 부정적 감정이 아니라, 외부의 소음을 끄고 비로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자기 인식의 출발점'이자 선물로 바라본다. 괴테는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만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p.71)라며 고독의 순간을 비관적 두려움이 아닌 내면의 각성으로 이끌며 이것은 외부 세계로 이어지는 끈이 된다는 통찰을 전한다. 또 “인간은 인생을 완주한 뒤에 무엇을 남기게 될까요.”(p.196)라는 마지막 질문에 저자는 “자신이 끝까지 지켜 낸 삶의 방식으로서 영원히 기억됩니다.”(p.197)라고 대답한다. 나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지켜낸 인간으로 기억될까?

"두려움이라는 감각을 실천이라는 행동으로 변화시킬 때 인간은 내면의 성숙을 맞는다."
이 책은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결국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여정과 닮아 있다. 무수한 선택지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청년들과, 아는 것은 많으나 실행력이 부족해 늘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괴테아포리즘#김민준#자화상#괴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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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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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혁란씨는 자신에 대해 책표지에서 "불문곡직, 용띠"라고 소개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는 이 사자성어는 세상이 정한 복잡한 잣대나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나만의 방향과 자리를 찾아 거침없이 걷겠다는 주체적인 선언으로 들린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일하며 잡지와 책을 만들었고,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등의 책을 써내왔다.

'인간에게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는 인문 에세이다. 저자는 이름이 단순한 호칭을 넘어 개성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특별한 관계성이 교차하는 정체성의 집약체라고 말한다. 소설, 영화, 시, 노래 등 장르를 넘나드는 20편의 작품을 통해 호명되지 못한 자들의 슬픔과 이름을 찾으려는 열망을 톺아보며 이름이 남긴 자국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있다.

이름이 특이해서 학창시절 선생님들에게 자주 이름을 불렸던 나로서는, 이름이 없는 1부 무명의 존재들이 그저 비극으로만 느껴졌다. 그렇게 이름을 빼앗기거나 부여받지 못한 존재들의 고통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2부에서 스스로 이름을 짓고 호명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세상 만물에 이름을 짓고 이름을 붙여주고 부르고 불러주는 행위란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의미 부여이자 애정표현이다. 이름을 지어 호명하고 지칭하면서 관계가 결속된다. 마음의 밀도를 보여 줄 수 있는 고도의 정성이 깃든 의례이기도 하다.”(p.54)

3부에서는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남겨진 이들의 상실감을 다룬다. 김소월의 시 <초혼>을 인용하며 “나는 선채로 이대로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죽어도 좋을 이름이, 어디 있기는 했던가.”(p.138) 자조한다. 그러면서 “산 자는 죽은 이의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부를’뿐이다. 부르다가 죽을 이름을, 어쩌면 부르다가, 부르다가 내가 살 이름을.”(p.139)이라며 흩어지고 사라질 것들을 붙잡아 이 책에 남긴다. 4부는 타인이 준 이름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고 마지막 5부에서는 이름과 존재가 일치하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 책과 함께하는 동안 김춘수 시인의 ‘꽃’이 맴돌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랑이 존재에 마법을 거는 시, 정도라고 해석했던 나는 이름에 천착해온 글들이 처음에 그렇게 의미있게 다가오진 않았음을 고백한다. 무명의 슬픔과 고통, 호명하는 사랑, 죽음을 넘은 이름의 의미, 근원으로서의 이름, 그리고 그 이름으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책의 구성을 따라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주체성, 정체성, 온전한 내 자신에 이르러 있다. ‘엄마’와 ‘아내’라는 타이틀에 빼앗겨 갈 곳을 잃은 ‘나’를 찾는 여정의 첫 걸음을 이 책과 함께 하기를 추천한다.

#이름의빈자리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한겨레출판사#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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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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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은 비주얼이 중요한 아이돌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는 케이팝에 대해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을 구분하자는 나의 주장은 (...) 그저 내 삶에 대한 울분이자 자학”(p.13)이라고 솔직하게 시작하는 복길의 일기이자 대중문화비평서이다. 한마디로 케이팝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 모순에 상처받은 한 개인의 애절한 자기고백이자 생존 전략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들은 신나는 비트에도 불구하고 애절한 가사를 가진 케이팝처럼 전체적으로 ‘슬픔’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저자가 2019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선보인 케이팝 디제잉 공연의 기획 역시 ‘슬픔의 케이팝 파티’였다. 케이팝, 그러니까 아이돌 산업, 소속사 자본의 논리와 환상을 소비하는 팬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감정을 그 당시 시대의 맥락과 함께 녹인 글들이다.

문장 중에 은어가 제법 많아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응답하라 1997’에서 정은지 배우가 HOT 콘서트장에 가서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읽히는 책이다. 적어도 초반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음악이라는, 큰 감성의 맥락으로 퉁쳐버려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신세계 영역의 글로 읽히기도 했다.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라 친다면 “이 복길 연습생, 나에게 인지도도 없었고, 뭔가 기본이 없는 B급 같았는데 뭔지 모를 매력 터지는데?”
아무튼, 저자의 전작 <아무튼, 예능>을 통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문법을 선보인 글쟁이이기도 하다. 이 책은 6년만의 신간으로 2023년부터 3년간 〈씨네21〉에 연재했던 칼럼을 바탕으로 쓰였다.

총 4부에 걸쳐 익숙한 케이팝 가사들을 소제목 삼아 저자의 자전적 경험 속 케이팝의 기억을 서술한다. 저자가 선곡한 음악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경험까지도 함께 편집하여 독자와 교감하는, 글로서 케이팝을 디제잉하는 글이랄까. 예를 들어, 아웃사이더의 ‘외톨이’ 가사를 읽으며 쓰레기가 쌓인 집에서 은둔하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청하의 롤러코스터를 선곡하며 같이 알바하던 B가 “언니 저 이제 죽고 싶을 때마다 ‘후렌치 에볼루션’ 탈거예요.”(p.133)라 말하는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아가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운영하며 겪었던 분투기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연대기를 요약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케이팝 문화를 '철저히 설계된 사랑의 볼모'로 규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팬들이 느끼는 감정만큼은 결코 허상이 아닌 '진짜'라고 긍정하는 대목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뒤통수 맞아가며 자책과 회피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끝내 음악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케이팝을 즐기는 모든 리스너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특별한 BGM이었던 케이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케이팝을 들으며 현타 오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 날, 새로운 케이팝을 흥얼거리는 케이팝 덕후들에게는 더욱 추천한다. 케이팝에 대한 의리를 계속해서 다짐하며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될지도.

#펑펑#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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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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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탱크>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는 극찬을 받으며 2023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는 외롭고 절박한 인간의 심리묘사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이번 신작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는 전작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연작소설이다.

소설은 서로 연결된 네 개의 단편으로 신영, 이소, 성희, 주연의 삶을 교차시킨다. 첫 번째 제목이자 이 책의 표지인 <우리는 한 때 같은 성에 살았고>에서는 요양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조카 이소의 이름만을 끝내 붙잡고 있는 신영, <돌들을 주우러>는 흐릿한 과거의 기억을 알루미늄판에 새기며 존재의 윤곽을 그리는 예술가 이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곳에 두고 온 사람은>에서는 신영의 뒤섞인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겹쳐 보는, 간병인 성희, 그리고 마지막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방법>에서 이소를 지키기 위해 성을 불태워버렸지만 이후, 딸 이소에게 자신의 부모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아빠에게 맞은 엄마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성에 들어간 엄마 주연의 고백이 엮인다. 이들은 폭력적인 과거라는 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트라우마에 담긴 기억을 잊어버리려, 잃어버리려 애쓴다. ’성이라는 감옥’이라는 은유는 보호의 공간이자 동시에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인 기억의 구조를 형상화한다. 트라우마라는 소재에 대해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폭력으로 부서진 기억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끈질기게 지키려 애쓰는 네 명의 여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영, 주연, 이소, 성희, 각각의 예민한 감각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신영은 방통대에서 음향녹음 기술을 전공하여 소리를 수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방에서 일어나던 폭력의 소음을 닫힌 문 하나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던 신영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주연은 작은 바다마을 출신으로 그녀의 이야기에는 물이 빠지지 않는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생수병을 건네 준 것, 아이를 낳았을 때, 벽지를 ’바다를 닮은 파란색‘(p.44)으로 칠한 것, 진단을 받고 이소를 데리고 바다로 떠난 것이 그렇다.
이소는 아버지의 화 속성과 어머니의 물 속성을 다 가진 아이로 보인다. 준은 화를 내는 듯한 인상을 가진 이소에 이끌린다. 그들의 관계에서 이소는 불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소의 작품에는 알루미늄 조각이 콜라주되어 있다. 물은 불을 끄는 상극이며, 불은 철을 녹여 강하게 만드는 상생임을 생각해볼 때, (이소의 이야기는 여기서 너무 짧다고 생각되지만) 이소는 이 네 명의 여자들 중, 강한 사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이야기를 신영의 목소리로 듣는 간병인 성희는 달리는 감각에 대해 민감하다. 그녀가 요양원으로 출근하면 만나는 장노인은 아침마다 달린다. 그런 장노인을 바라보며 그녀의 어린시절, 키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억지로 뛰게 시켰으며 후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달리고 싶어했던 마음을 떠올린다. 이들 넷의 감각은 각자의 서사에서 때로는 고통을 증가시키기도, 잊게 하기도 한다.

신영과 주연은 다소 비극적이지만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치환한 성희와, 성희의 연락에 응답한 이소의 마지막을 보며 그래도 이 작품은 온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옥같은 기억의 성을 버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끝까지 해. 그걸 붙잡고 살아.”(p.115)라는 주연의 말을 기억하며 앞으로 작품활동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갈 이소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한 요양원이라는 삶의 마지막 공간에서 함께 계속해서 달려나갈 성희의 삶도 응원하고 싶다.

잊고 살면 안되는데 다 잃어버리고 잘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사람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우리는한때같은성에살았고#김희재#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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