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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
김희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작가는 <탱크>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라는 극찬을 받으며 2023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서는 외롭고 절박한 인간의 심리묘사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이번 신작 <우리는 한때 같은 성에 살았고>는 전작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연작소설이다.
소설은 서로 연결된 네 개의 단편으로 신영, 이소, 성희, 주연의 삶을 교차시킨다. 첫 번째 제목이자 이 책의 표지인 <우리는 한 때 같은 성에 살았고>에서는 요양병원에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조카 이소의 이름만을 끝내 붙잡고 있는 신영, <돌들을 주우러>는 흐릿한 과거의 기억을 알루미늄판에 새기며 존재의 윤곽을 그리는 예술가 이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곳에 두고 온 사람은>에서는 신영의 뒤섞인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상처를 겹쳐 보는, 간병인 성희, 그리고 마지막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방법>에서 이소를 지키기 위해 성을 불태워버렸지만 이후, 딸 이소에게 자신의 부모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와, 아빠에게 맞은 엄마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성에 들어간 엄마 주연의 고백이 엮인다. 이들은 폭력적인 과거라는 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트라우마에 담긴 기억을 잊어버리려, 잃어버리려 애쓴다. ’성이라는 감옥’이라는 은유는 보호의 공간이자 동시에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인 기억의 구조를 형상화한다. 트라우마라는 소재에 대해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폭력으로 부서진 기억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끈질기게 지키려 애쓰는 네 명의 여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신영, 주연, 이소, 성희, 각각의 예민한 감각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신영은 방통대에서 음향녹음 기술을 전공하여 소리를 수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방에서 일어나던 폭력의 소음을 닫힌 문 하나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던 신영의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주연은 작은 바다마을 출신으로 그녀의 이야기에는 물이 빠지지 않는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생수병을 건네 준 것, 아이를 낳았을 때, 벽지를 ’바다를 닮은 파란색‘(p.44)으로 칠한 것, 진단을 받고 이소를 데리고 바다로 떠난 것이 그렇다.
이소는 아버지의 화 속성과 어머니의 물 속성을 다 가진 아이로 보인다. 준은 화를 내는 듯한 인상을 가진 이소에 이끌린다. 그들의 관계에서 이소는 불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소의 작품에는 알루미늄 조각이 콜라주되어 있다. 물은 불을 끄는 상극이며, 불은 철을 녹여 강하게 만드는 상생임을 생각해볼 때, (이소의 이야기는 여기서 너무 짧다고 생각되지만) 이소는 이 네 명의 여자들 중, 강한 사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이야기를 신영의 목소리로 듣는 간병인 성희는 달리는 감각에 대해 민감하다. 그녀가 요양원으로 출근하면 만나는 장노인은 아침마다 달린다. 그런 장노인을 바라보며 그녀의 어린시절, 키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억지로 뛰게 시켰으며 후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달리고 싶어했던 마음을 떠올린다. 이들 넷의 감각은 각자의 서사에서 때로는 고통을 증가시키기도, 잊게 하기도 한다.
신영과 주연은 다소 비극적이지만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치환한 성희와, 성희의 연락에 응답한 이소의 마지막을 보며 그래도 이 작품은 온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옥같은 기억의 성을 버리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끝까지 해. 그걸 붙잡고 살아.”(p.115)라는 주연의 말을 기억하며 앞으로 작품활동으로 계속해서 이어나갈 이소의 모습을 상상한다. 또한 요양원이라는 삶의 마지막 공간에서 함께 계속해서 달려나갈 성희의 삶도 응원하고 싶다.
잊고 살면 안되는데 다 잃어버리고 잘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사람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우리는한때같은성에살았고#김희재#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