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삶 사이에서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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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붉지도 푸르지도 않은, ‘어중간한’ 두 가지 색의 줄무늬가 수채화 질감으로 그려져있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밑부분에는 그 사이에 오고가는 흐릿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들어가며’에서 “어중간하게 살아왔다”라며 냅다 고백부터 지르는 저자의 첫문장에서 느껴진다. 이 어중간한 사람들, 즉, ‘소시민’인 저자와 나, 우리를 그린 표지다.

나는 이 책을 편하게 읽지 못했다. 글의 가독성은 좋았음에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세상을 바꿀 재력도, 권력도, 능력도 없는 소시민이 가진 양심의 파도가 요동쳤고 색이 붉든, 푸르든 좀 진해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옅어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자신이 뼛속까지 어중간하며 연약한 소시민이었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저자 역시 그렇다. 그래서 우리 손을 잡자고. 좀더 용기를 내보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마을 생활을 하며 깨달은 앎을 삶으로 녹여보자고 이 책을 냈다. 이전 책,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에서는 피해와 가해가 혼재한 역사에 연루되어있음을 보여줬다면 이 책에서는 우리가 소시민으로서 책임져야 할 연루에 대해, 그리고 그 연루를 넘어 연대로 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1월 말, 다보스포럼에 처음 참석한 일론 머스크가 래리 핑크와의 대담에서 한 발언들이 SNS상에서 뜨거웠다. 자칭 낙관적 모험가라는 그는 “지구라는 단일 행성에 인류의 의식을 묶어두는 것이 위험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공개적으로 열 네명의 아이의 아버지인 일론 머스크가 화성이주프로젝트에 열심인 것과, 무자식의 저자가 지구의 소시민들에게 권하는 작은 책임에 대해 설파하는 이 텍스트와의 간극이 큰 데서 오는 아이러니에 나는 시달렸다. 어쩌면 작은 어떤 한 국가보다 훨씬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고, 자본주의를 종교로 환원했을 때 그 어떤 신보다도 더 추앙받을 일론 머스크의 머리에 소시민은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다.

어떤 외국인이 검은 롱패딩을 입고 전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한국인에 대해 정말 개미처럼 보인다는 쇼트를 본적이 있다. 국내주식을 사는 한국인에 대해 동학개미라고 우리 스스로를 부르기도 한다. 저자와 일론 머스크 둘 중 어느 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이 두 갈래길에 선 개미같은 소시민인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는 이 책, 당신에게 권한다.

#앎과삶사이에서#하니포터#하니포터12기#한겨레출판#조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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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F 투자의 기술 - 내 월급을 자산으로 바꾸는
최창윤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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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월급을 자산으로 바꾸는 ETF 투자의 기술, Exchange Traded Fund

책표지를 넘겨 저자의 이력을 보니, 오늘날의 경제학부 대학생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증권투자 동아리에 들어가 선후배들과 어떤 자산을 어떻게 투자할 것인지 스터디한다. 투기가 아닌 분석을 통한 투자의 시작은 이 분야의 전문성이라는 아웃풋을 남긴다. 대학을 낭만으로 다니던 나때와는 사뭇 다르다. 한편으로 뭔가 아쉬우면서도 그만큼 오늘날의 청년들이 대학생활을 즐기기에 물가는 너무 올랐다. 그래도 이들이 야무지게 자신의 자산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저자는 현재 상장법인의 자금운용팀에 재직중이다. 현장에서 터득한 기업분석 노하우 및 투자전략을 유튜브 채널, ‘퇴근후몰빵’에서 공유하고 있다.

주식을 투자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들어봤을 법한 ETF에 대한 책이다. 세계의 정세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관세정책이나 지정학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AI 산업의 투자 지속, 노동 시장 안정,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성장 저하를 방어하고 있다. 국내 경제는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코스피 5000선을 넘어서는 등 강세를 보이는 오늘날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주식을 투자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미국에서 ETF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때를 짚어주고 싶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적으로 자금이 ETF로 넘어오는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 ETF의 성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2011년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에서도 ETF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이 ETF에 주목해왔다. 갑자기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우리나라에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초보자에게 ETF 투자는 매우 적합한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 성장 이면에는 ‘좀비 ETF’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많은 ETF 가운데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상품과 그렇지 못한 상품을 구분해내는 안목을 <내 월급을 자산으로 바꾸는 ETF 투자의 기술>에서 길러낼 수 있다.

총 6장으로 1, 2장에서는 어떤 ETF를 사야 할지에 대해 알려준다. 워런 버핏이 추천하는 지수추종 ETF, 안정형 성향을 가진 투자자에게 적합한 배당형 ETF, 동학개미들이 선택하는 반도체 등 핫한 ETF들을 1장에서, 2장에는 위기에 강한 헬스케어나 인플레이션에 강한 MOAT ETF, 액티브, 양자컴퓨팅 등을 소개한다.
3장과 4장에서는 “핵심은 적립식 투자에 있다”(p.114). 그러기 위해 어떻게 투자를 할 것이냐라는 전략에 대해 적었다. 3장에서는 투자성향과 레버리지 ETF, 그리고 볼린저 밴드, RSI, MACD등의 보조지표를, 4장에서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매수·매도 전략으로 장기 적립식 투자나 절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룬다.
5장에서는 ETF에 투자해야 할 이유, 특히 해외상장 ETF vs. 국내상장 ETF, ETF와 공모펀드의 차이점, ETN과 ETF의 차이를 설명한다.
6장에서는 코스닥에 집중된 ETF 투자외에 가능성 있는 국내 산업소개나 산업별 사이클에 민감해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그런 것들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지를 담았다.

반도체가 시크리컬 산업으로 호황일 땐 좋지만 불황일 때, 다른 산업대비 크게 꺾이는 분야라는 점, 그래서 “핵심은 수요와 공급의 함수를 파악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특히 세계 수요처와 공급처의 물량싸움에 의해 기업들의 주가가 결정된다.”(p.29) 그리고 보통 주가가 실적을 6개월 이상 선행한다는 것. 그리고 자본적 지출이 일어날 때 산업의 성장이 만들어진다는 것. 당연한거 아냐, 라고 남들은 받아들였을지 모르지만, 나의 한계로 이를 챠트와 연결짓진 못했던 나에게 이 부분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헬스케어 ETF의 경우, 우리나라와 미국의 건강보험체계가 크게 달라 역시 다르게 봐야한다는 점도 새로 배운 사실이다.

이 책의 포인트는 주식을 분석하거나 관련 기사를 볼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에게 ‘게으르게 투자해서 확실하게 수익’을 낼 수 있으면서, 수많은 ETF들 중 ‘옥석을 고를 수 있는 시각’을 이 책이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월급을자산으로바꾸는ETF투자의기술#최창윤#원앤원북스#E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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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돈의 시대, 스테이블코인 - 경제 현장에서 본 달러 이후의 돈, 디지털 화폐 이야기
김신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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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신영씨는 경제 섹션을 담당하는 기자로 2011과 201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유증, 미국 국가 신용 등급 강등에 대해 취재했다. 현재 AI, 가상화폐라는 신기술을 대하는 미국 학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제부 기자로서의 지난한 경험은 ‘돈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렇다면 달러 이후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대안 수단으로 유력해보이는 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1,2장에서는 돈, 즉 그동안 사용해왔던 법정화폐와 2000년대 생겨난 가상화폐에 대해 서술한다. 그리고 오늘날 등장한 스테이블코인을 소개한다. 한 개의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라는 가치를 지녔다는 이 코인은 은행계좌가 없는 외국인이 쉽게 살 수 있으며 온라인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3장에서는 은행의 절차없이, 국경과 전혀 상관없이 송금가능한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한 이유를, 4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인으로서 위험성이 없지 않기에 그 부분에 대한 경고를 적었다. 5장에서는 코인투자자라면 잘 알고 있듯 트럼프의 인기와 함께 올랐다가 떨어지는 코인의 주가와 특히 대통령 임기를 맡자마자 밀어붙이는 ‘지니어스 법’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다양한 페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환경에 굳이? 일 수는 있지만 원화에 기반한 스테이블 코인이 가시화된 상황과 우려를 함께 적었다. ‘나라 밖 원화’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과연 한국은행이 컨트롤할 수 있을지. 7장에서는 중국, 유럽의 상황과, 금 코인을, 8장에서는 현재로서는 위험해보이기도 하지만 초반이라 기회가 될수 도 있는 이 양면적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연준, 테더, 한은 등의 글로벌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들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비트코인 시세는 알아도 가상화폐가 어떤 시스템으로 생겨난 것인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던 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잡는 격으로 가상화폐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미리 밝힌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휴지조각이 되버리는 실물 화폐와 멀쩡하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인이 목격한 2007년도의 악몽이 만들어낸 불안감은 가상화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변동 폭이 크고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이를 대처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다.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 탈중앙화된 디지털 경제의 기축통화 역할 대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나 발행사(테더)가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에 따라 뱅크런(대규모 인출)이라는 위험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지니어스법’으로 법제화 진행 중이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국가별 규제 강도에 따라 위험도가 다를 수 있다. 또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려는 모델에서 제 2의 테라/루나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스테이블코인의 장점과 단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스테이블 코인을, 단지 투기로 여기기보다 '디지털화된 달러'의 연장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화폐 질서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새로운 돈의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오늘날, 당장은 위험성은 내포하고 있으나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편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장점은 기존의 금융 질서를 대체할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어 보인다. 미래의 금융 지형도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비트코인의 몇 년간의 등락을 지켜보며 정말 많은 나라가 서로 전쟁 진행중이며, 생각보다 더 많은 독재자들과 빼돌린 기업가들의 검은 돈들이 많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만 해왔다. 요즘 상황을 보면 꼭 그런 물리적인 위험이 아니더라도 경제위기는 국가가 보증할 수 있는 가치일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법정화폐의 붕괴로 이어지고 결국 달러패권을 지닌 미국이 화폐 주권을 지키지 못한 다른 국가들을 흡수할 수 있는, 정말 트럼프다운, 미국다운 코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앞날이 베네수엘라와 이란보다는 아니겠지만 무수한 가시밭길이겠구나. 씁쓸하지만 그럴수록 새로운 돈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의 필독을 당신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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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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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먼저 떠오르기도 했지만 중국 런민대학교 철학과 교수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공산주의는 국가와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하며 경제적 토대를 더 중요시하는 체제로서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을 다룬 학문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기도 하여 책을 펴들었다. 막상 읽고보니 공산주의 국가의 중국인이든, 자본주의 체제의 미국인이든,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크라테스든 빈부격차 상관없이 죽음 앞에 인간은 모두 평등했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오로지 철학자가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시선뿐이었다. 그는 철학과교수로서 지내다가 쉰 여섯이 된 2024년 7월 12일, 의사로부터 치료 중단 선고를 받는다.
”한 철학자의 정신적인 힘이 그의 생명을 얼마나 자유롭고 또 두려움 없는 경지로 끌어올렸을까? (...) 그의 철학은 어떻게 그의 정신적인 자아가 아무런 손상없이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존될 수 있도록 해주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기록이자 증명이다“(p.41) 서문의 한 구절이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거울삼아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주루이는 처음부분에서 독배를 받아든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p.48)라고 전한다. 주루이 본인은 철학을 공부하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p.48)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은 우리의 손발을 묶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가 느낄 수 없는 것이다라며 두려워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선을 확실히 그어준다. 그래서 그는 산에서 길을 잃어 도랑에 굴러떨어졌을 때도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산을 무사히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그는
”과학자나 철학자,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이 미지의 것들을 개척한다네.“(p.67)라고 말하며 삶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책에서 한 학생이 대학원 진학을 해야할지에 대해 주루이에게 묻는 장면이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자네만 찾을 수 있네.(...) 무슨 일을 하든 ‘진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네. 만일 자기기만에 빠져 산다면 그건 자기의 생명을 낭비하고 또 자기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네. ‘진실’은 심오한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다네. 자네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pp.190-191)
김연수 작가는 청춘에 대해,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만이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고 말했다. 청춘의 그림자가 영혼에 그늘을 드리울 때, 찾아오는 너무도 많은 자기기만의 함정은 우리의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나에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이 책을 새로운 인생 단계의 진입을 앞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중 고3을 콕찝고 싶다. 이제 기나긴 미성년의 터널을 지나 청춘의 봄날을 맞이할 아이들에게 죽음을 들이미는 것에 대해 누군가 부적절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메멘토 모리를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인식한 삶은 더욱 소중하고 그만큼 찬란하기에.

”평범함이야말로 진짜이고, 행복이고, 또 기쁨이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어.“(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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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태 켈러 지음, 제랄딘 로드리게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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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냉장고 너머의 왕국

아이를 키우면서 전래동화의 권선징악, 인과응보라는 전형적인 틀에 갇힌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이후 어떤 독서교육 강의 중, 취학 전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혀야 아이가 선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고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 이후에 읽혔다. 하지만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고 그와 척을 지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 이분법적인 도식화의 결과가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4는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태 켈러 작가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이야기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민을 이 분은 이렇게 풀어냈구나 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으로 2021년 뉴베리 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바로 이 책을 내셨다.

메사추세츠주 에서 ‘박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박씨 부부의 딸, 미희 완 박이 주인공으로 넓적한 얼굴과 120센티미터라는 작은 키의 한국계 소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공주는 뮬란 뿐이라는 것이 별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희는 공주를 추앙한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 제네비브와 함께 공주 놀이를 해왔으나, 요즘 들어 공주 같은 외모를 가진 이 친구조차 더이상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느낀다. 백설공주 놀이를 하기 위해 가져와야 할 사과를 깜빡한 미희에게 “어차피 넌 공주 같은 아이도 아니잖아.”(p.14)라며 친구는 떠나간다. 미희에게 공주란, 엘사와 라푼젤처럼 “어딘가에 나만을 위한 ‘오래오래 행복한 결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야 해”(p.18)같은 의미였기에 계속해서 “모험을 추구했고, 꿈을 이루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p.18)가기 위해 교정 안에 있던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기 위해 오른다. 백설공주에게는 사과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걸려 점심시간에 외부활동을 금지당하고 대신 도서관으로 가게 되는 벌칙을 받는다. 그곳에서 교실 등이 나가 고쳐보려고 의자에 올랐다가 훔치는 것으로 오인받고 벌을 받게 된 흑인 리즈와 노래를 부르다가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스스로를 꽁꽁 묶은 사바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셋이 ‘냉장고 너머의 왕국’, 공주들이 사는 무지개 왕국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 왕국은 미희가 꿈꾸던, 공주들이 사는 세계였다. 하지만 공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인물인 버사가 시키는 대로 공주 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의 결과는 점수로 환산되어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다. 또 진짜 공주를 만난 다음에는 “공주가 되는 건 미희의 가장 큰 꿈이었지만 정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름답지만 새장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 꼭 동물보호소에 있는 새들 같았다.”(p.111)와 같이 느낀다. 절대 이야기를 바꾸어서는 안된단 불문율, 그러니까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클리셰에 질문을 갖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정해진 틀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공주답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지?’ 다른 사람 눈에 공주처럼 보일지 아닐지를 걱정하느라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pp.208-209)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색과 맛이다. 냉장고 너머의 왕국에 들어가게 해준 도서관 사서선생님의 사탕 맛은, 먹는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맛이다.

“엄마가 만든 팥떡 맛이야.” 미희가 말했다. “버터크림 케이크 맛이 나.” 리즈가 말했다. “난 엄청 맛있는 소고기 육포 맛이 나는데.” 사바나가 말했다.(p.31)

오두막집에서 만난 검은 곰이 끓여주는 죽, 역시 종류는 하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그 맛을 다시 느낀다. 각자가 집을 떠올렸을 때 그리움을 맛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미희라는 이름의 ‘미’는 아마도 아름다울 ‘미’로, 공주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도 하지만 맛 ‘미’자를 쓰는 미각의 ‘미’일 수도 있으니 여러가지 맛에서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그리움의 맛이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위험 천만한 모험 끝에 다시 돌아온다. 미희가 품었던 질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주머니 속 묵직한 나침반도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미희가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책 속 주인공 미희처럼,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나, 이제는 공주놀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처럼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얼마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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