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임 머신>은 캐시 오닐이 썼다. 서론에서는 수치심의 사회적 역할, 자기혐오와 수치심의 관계, 수치심의 친구, 낙인등을 설명한다. 그 중 “수치심이 타의에 의해 드러나는 과정”(p.12)에 대해 그녀는 주목한다. 어떻게 “이 징벌적 생태계에서 핵심 행위자들은 (...)‘수치심 머신The Shame Machine’이라고 부르는 것을 운영”(p.14)하는지 보여주며 수치심 산업 메커니즘까지 차례로 밝힌다. 그녀는 “일상에서 수치심이 어떻게 생기는지 자각하면, 막강한 기업과 기관이 어떤 식으로 수치심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지 보인다. 그러면 이제 하나씩 행동을 취해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p.23)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1부 ‘수치심은 돈이 된다’의 1장 ‘비만-뚱뚱하다는 죄’에서 수학자인 캐시 오닐은 그녀의 부모님도 학자 출신으로 비만 가정에서 자라온 것으로 보인다. 비만이라는 수치심이 그녀의 삶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자세히 이야기 해준다. 여기서부터 이 책의 몰입이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동시에 두 가지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던 터였다. 하나는 ‘아몬드맘’에 대한 기사이다. 몇 해 전 리얼리티쇼에 출연한 패션모델 지지 하디드가 모델출신 어머니와 통화 중 "기운이 없다, 오늘 아몬드 반 개밖에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하자 엄마는 "아몬드 몇 개만 더 먹되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한 것이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런 부모를 ‘아몬드맘’이라 부르며 자녀들에게 마른 몸이 아름답고 적게 먹는 것이 미덕이라고 주입시키는, 새로운 극성 부모 유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의 기사는 올해 초, 2023 FF에서 스키니가 다시 유행할 것이라는 기사였다. 그리고 며칠 전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생로랑, 루이비팅, 구찌, 프라다 등은 미드·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전혀 캐스팅하지 않았다”라는 뉴스를 보았다. 이에따라 패션 비평가들은 2023년 런웨이에서 사이즈의 다양성을 고려한 캐스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런던에서 일하고 있는 캐스팅 디렉터 엠마 마텔(Emma Matell)은 “업계는 항상 여성 신체를 트렌드에 맞춰 마케팅하고 판매되는 상품처럼 다뤘다”면서 “이는 결국 인종차별과 여성혐오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이러한 뉴스도 크게는 우리 사회에 녹아있는 수치심에 대한 것들이 아닌가.

2장 ‘약물중독-낙인찍기와 책임 회피’에서는 블라섬이라는 세 아이의 엄마가 등장한다. 블라섬은 크랙crack(코카인의 일종으로 중독성이 매우 강한 값싼 마약)에 쩌들어,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은 아니라지만)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마약으로 망칠 수 있는 모든 불행한 일들은 다 겪은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인은 크랙 확산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물었다”(p.62)라고 캐시 니어는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공정하다는 착각>이 떠올랐다. American Dream 이라는 단어처럼 누구나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식의 윤리는 승자를 오만으로, 패자들에게는 굴욕과 분노를 주었고 포퓰리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마이클 센델의 이야기. 여기서 패자들의 굴욕과 분노 사이에 이 ‘수치심’이 있지 않았을까. 지금의 미국 사회는 포퓰리즘도 진화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2부까지만 읽었지만 이런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캐시 오닐의 결론은 단 하나다. 서론 마지막 문장- “수치심은 우리를 괴롭히기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치심에서 이들에게 반격할 힘도 얻는다!!!”(p.23) 테드에 나온 그녀의 모습은 여전사 같았다. 비만 때문에 힘들어 한 인물 맞나 싶을 정도로 에너제틱한 모습이었다. 나도 스키니를 입을 몸매가 아니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태권도를 그만두고 배가 나온 아이에게 아몬드 반쪽을 꼭꼭 씹으라 소리는 안하는 그런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전에 이 책을 꼭꼭 씹어먹어봐야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 ‘옥탑방에서 보내는 세 번째 겨울’, 홀로 ‘살갗을 에는 듯한 한파’에 시달리는 30대의 남성이 있다. “이번 겨울은 춥지않다”는 공장 소장의 말을 되뇌이는 그의 이름은 정인수. 그는 우연히 동네 운전자에게 자해공갈을 하는 한 소년을 목격한다. 그 역시 가출팸을 경험한 시절이 있었기에 두 번째 자해공갈을 하려던 이호를 만류할 수 있었다. 이호 나이 즈음, 아버지의 폭력에 집을 뛰쳐 나온 인수는 성연이와 경우를 만난다. 인수가 가출해서 처음 만난 성연이는 거리의 생활에 본능적으로 적응을 잘 하는 아이였다. 훔칠 수 있었으면 훔쳤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행동했다. 경우역시 거리의 아이었지만 꾸준히 알바를 하며 가출팸이 함께 살게 된 집을 치우고 인수가 이가 아팠을 때 큰 돈을 내 주는 아이였다. 이 두 아이 사이에서 인수는 가출팸 생활을 하다가 이호처럼 자해공갈을 하던 A를 만난다.

그리고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도 연락이 되지 않아 보호증명을 받을 수 있는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척 하면서 시급을 반도 주지 않는 호프집 사장님이 등장한다. 책에 나오진 않지만 아마도 이 사람 역시 가출팸 출신으로 짐작된다. 아마 성연이가 어른이 되면 이런 사람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아이들은 사람들을 쉽게 믿었고 쉽게 당했다. 그렇게 배운만큼 남을 쉽게 속였고 쉽게 역이용하기도 했지만 이 아이들의 인생은 쉽지 않아보인다.

이 소설 내내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이 아이들의 운명과 길을 같이 한다. 특히 A가 그렇다. 인수가 집을 나온 후 몰래 집에 들어가보았을 때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하얀 고양이를 본다. 그리고 가출팸 아이들이 지내는 반지하에서도 본다. “길고양이가 창가를 어슬렁거렸다.(...) 같이 누워 고양이를 보고 있던 A가 말했다. “어차피 쟤네 금방 죽어.” ”(p.143)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어했던 A는 한 마리를 데려왔다가 사료값이 비싸 다시 내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 고양이는 죽었을 거라고 인수에게 얘기한다. “난 돈 많이 생기면 고양이 키울거야. 봐둔 애가 있어. 청류역 구두 수선집 근처에서 맴도는 고양이인데(...) 걔는 오른쪽 뒷발을 절어. 그런 애는 오래 못 살아.”(p.145) 라고 이야기 하는 A. 아무도 자기 같은 아이를 믿어주지 않기에 팔 다리에 시커먼 멍이 들도록 자해공갈을 해야만, 그래서 자신이 다쳐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A. 가출팸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혼자 떨어져 지내는 이 아이가 가장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세계. 경우없는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 밤 산책을 나갈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구김살없이 알바하며 도울 수 있는 아이는 돕던 경우. 그런 경우 역시 바리스타학원 앞에서 만난 엄마가 자신을 보고 크게 놀라자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따뜻함을 느끼는 인수였다. 경우는 인수에게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 삭막한 거리에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런데 성냥불이 태울 것이 없으면 금방 꺼져버리듯이 경우 역시 그랬다.

그렇게 경우없는 세계에서 한기를 느끼며 살아왔던 인수였던 것이었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책에는 어른다운 어른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단 한명의 어른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쓰렸고 저자 역시 어떻게 보면 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어른의 도움이 아니다 라는 것을 얘기하는게 아닐까라고 까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인수가 이호를 만날 때까지도 전혀 자라지 못한 모습이 그랬다. 이호가 뭘 물어도 같이 몰랐다 ㅋㅋ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부모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호를 만나면서 그제서야 듬직한 어른으로 읽혔다. A가 죽는 것을 지켜봤고 경우를 미성숙함으로 잃은 인수는 더 이상 이호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은 이호와 진혁이에게 경우처럼 기대고 싶은 어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남기며 이 소설은 끝난다.

난 그동안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지? 나는 이 책을 읽기 까지 아예 관심이 없었다. 공원에서 알콜중독으로 보이는 노숙자들은 몇 번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그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더해 조만간 미래에 큰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처럼 바라보는 내 눈이 읽혔고 부끄러웠다. 부모없이 떠도는 길고양이같은 저 어린 영혼들을, 어른으로서 도와주기는커녕 계속 그렇게 볼 것이냐는 작가의 질문이 내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힌다.





p.s 1. A는 이름도 없다... A를 종이에 그려보았다. 팔이 없고 가진 것은 떠도는 두 다리뿐인 A. 이름이 없는데 진짜 이름 너무 잘 지었다 A ㅜ ㅜ
2. 지민이의 이름이 원래는 혜연이었고 나이도 실제로 한 살 더 많았던 것처럼, 이호의 이름은 원래 일호였을지도 모를일이다. 인수와 이호가 이제 밤을 보낼 공간만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진짜 이름을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기를.
3. 지난 주 목요일에 이 책을 단숨에 다 읽고 TV를 틀었는데 엠넷에서 보이즈플래닛을 하고 있었다. 저 프로그램에 나오는 소년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경우없는 세계 아이들처럼 가출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의 이질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에 놀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다 빛 난다는 나의 늙어버린 마음에 더 놀래자빠져버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edagogy 2023-04-02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미처 깊이 생각지 못한부분인데 재독하며 그 운유들을 다시 따라가보아야겠네요. 깊이있는 서평 잘읽었습니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혈액에 어둠이 퍼져있는’,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가 현재 감금 1,299일째임을 알리며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책의 화자는 특이하게 문어이다. 더군다나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문어. (문어 중에서 특별한 문어가 아니라 모든 문어가 다 이렇게 똑똑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문어가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300건이 넘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던지, 이렇게 지성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유럽 어디에선가 양식하려 한다는 뉴스를 보며 뜨아했다.) 이 문어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고 자신의 수명이 4년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 160일만이 남았다는 것을 아는 ‘똑똑한 생명체’(p.14)마셀러스가 이 책장 사이사이마다 깊은 흡입력을 자랑하는 빨판으로 작용하여 독자를 쭉쭉 빨아들인다.


작가는 ‘한국독자들에게’ “문어가 화자로 등장해 종을 뛰어넘는 유대감이 개인의 어두운 과거에 어떻게 희망을 밝힐 수 있는지 말해주”(p.7)는 특이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 토바 설리번과 캐머런에 대한 어두운 과거를 밝혀주는 ‘열쇠’로 화자인 문어, 마셀러스씨가 활약한다. 토바는 18살의 아들을 의문의 사고로 잃었다. 그 슬픔을 품은 채 아쿠아리움에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가 남편도 2년전에 죽었고, 오빠인 라스도 요양원에서 죽어 뒷정리를 해주는 상황이다. 또 다른 주인공 캐머런은 친엄마인 다프네가 남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자기를 가졌고, 이후 아마도 마약 때문에 9살에 진이모에게 맡겨졌다. 엄마의 상자에서 친부라고 여겨지는 사진을 발견하고 이 아쿠아리움이 있는 소웰베이로 향했다. 토바는 다리를 다쳤고 대신 이 아쿠아리움을 캐머런이 청소하게 되면서 우리의 미스터 마셀러스씨의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문을 예술품으로 여기고 토바가 잃어버린 열쇠를 한번 촉수로 훑어본 것만으로도 바다에서 자신이 만져봤던 열쇠와 같은 것임을 알아보는 마셀러스씨는 이 비밀을 독자인 우리에게만 알려준다.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셀러스씨가 감금 1306일째의 소감이다.
“나는 비밀을 아주 잘 지킨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 (...)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 인 듯 하다. (...)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걸까?“
동물과 다르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 사피엔스들은 말을 할 줄 알지만 개개인은 비밀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화자인 마셀러스 씨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이며 저자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아니었을까?


p.s 1) 이 책의 절반 정도만 본 셈인데 추리소설을 볼 때처럼 흥미진진했다. 뒷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간만에 더하기 빼기를 해가면서 결말을 추측해보았다. 토바가 현재 일흔살인데, 그녀의 아이인 에릭이 18살에 죽었고.. 이후 30년이 흘렀고.. 캐머런이 9살에 진 이모에게 보내졌고, 현재 서른살이고.. 이 정도 더하기 빼기만 해도 충분하다. (아 입이 간질간질)이 책이 진짜 이만큼만 출판되어서나오고 뒷부분은 영화로 공개되어도 좋겠다는 상상을 했을 만큼 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2) 표지도 참 멋지다. 자기만의 방에 비밀 문이 열려있는데 거기에는 심해가 보인다. 우리의 마셀러스씨가 저 위에 빛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 그가 스포해도 인간은 문어의 말을 못알아들으니 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 비행 - 2022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박현민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 그림책에서 민들레는 꽤 유서깊다. 넘사벽 권정생슨생님의 <강아지똥>(주인공은 똥이지만)과 김장성 작가님의 <민들레는 민들레> 이 대표적인 민들레 그림책 두 권만 보더래도 국내외 그림책대회에서 수상을 휩쓸고.. 민들레에게서 뽑아낼 것은 더이상 없을 것 같았는데! 이 흔한 소재인 민들레를 또 이렇게 그려낸 작가님 진짜 리스펙한다.

박현민 작가님의 전작 <엄청난 눈>을 본 독자라면 한 장 한 장 펼쳐질 때마다 눈에 파묻히는(!!) 경험을 해봤을 터! 그림책의 물성을 활용한 공간감을 잘 써먹는 작가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도시비행> 역시 그렇다. 이 그림책을 다 보고나면 아주 멀리서 이 길쭉한 직사각형판형의 그림책 뒷모습만 봐도, 높은 도시 빌딩이 연상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땅바닥에 딱 붙어있는 로제트 식물이 저 높은 빌딩과 가로수와 가로등을 바라보는 그 느낌, 그 마음이 느껴진달까.

그런데 의외로 이 책에는 노란 민들레는 단 한번, 앞쪽 면지에서만 나온다. 분명 주인공이 노란 민들레인데 표지의 존재감 커다란 민들레는 노랑 빨강 파랑 녹색이 혼합된, 형태만 민들레다 ㅋㅋ(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은데 사실이다) 나의 문장력으로는 더이상 표현이 안되니 표지사진 한번 봐주시기를.

이 작품은 민들레 1인칭시점으로, 민들레가 보는 시야가 그려졌기에 후반부에 아이가 꺾어내었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홀씨로 존재를 나타낸다.
제목이 민들레가 아니라 <도시비행>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듯하다. 홀씨들이 날아오르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 주인공의 소원이기 때문.. 그래서 민들레 입장에선 생의 마지막이지만 슬픔은 1도 없고 그 홀씨들이 비행을 할 때 (내 귀에는 팡파레같은 이명이 들리며) 다채로운 색깔의 민들레 꽃가루들이 터져날아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축제다! 민들레들이, 이 한 번의 비행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자신이 쳐다보기만 했던 도시위를 비행한다.

꺾을 때도 허리를 굽혀야 딸 수 있는 이 꽃이, 저 멀리 비행기를 보며, 나뭇잎 위에서 버텨낸 송충이들이 번데기가 되고 노란 나비로 다시 태어나 이 도시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많이 꿈꿔왔을까? 반대로 저 위에 나무잎에서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지는 송충이를 보며 (아마도 그들은 밟혔을 것이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은 이 장한 민들레를 응원하고 싶지 않은 독자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은 사람들 발에 밟히고 자전거 바퀴에 짓밟히고 개똥밭에 구르는 것 같은 마음에 괴롭지만 내 마음 저 낮은 곳, 아직 시들지 않은 민들레 하나씩 품고 견뎌내는 이 도시인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LiPE 2 : 튤립의 여행 팡 그래픽노블
소피 게리브 지음, 정혜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은 튤립이라는 이름의 곰이다. 튤립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특기이다. 크로커스는 녹색 뱀으로 인생은 짧다며 한순간도 허투루 써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성향이 다른 이 둘은 서로에게 영향받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생활방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각자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하고, 그것을 들은 캐릭터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격렬한 사건은 없지만 읽으면서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아주 신기한 책이다.


이 둘 외에도 조약돌, 미모사, 달리아, 바이올렛, 코스모스 등등 (조약돌 빼고는 모두 꽃이름이다!)은 모두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같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은 조화, 양보, 헌신 이런 개념들과는 거리가 멀다. (튤립과 크로커스 성향만 봐도 그렇지만) 항상 툭탁거리고 좌절하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평화롭고 이 동물들이 사는 숲은 조화로워보인다.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캐릭터들의 소소한 대화사이의 행간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어떻지?"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1권 <튤립의 날들>에 이어 2권 <튤립의 여행>에서는 무엇으로 태어날지 모르는(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 모두가 궁금해하는)'알'이 새로 등장한다. 사춘기아이를 둔 부모라면 세상에서 가장 반항적인 알(이보다 더 반항적일 수 없다 알 덕분에 많이 웃었다 나는 ㅋㅋ)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알이 어찌나 사춘기 아이같은지 ㅋㅋ

철새이지만 떠나지 못하고 튤립과 겨울을 보내는 바이올렛(심지어 태양을 사랑하는 캐릭터이다)에게 질문을 던져 주는 철새 로즈도 2권에 새로 등장한다.

이 책은 부모에게도, 사춘기 아이에게도, 그림책에서 더 많은 글밥으로 넘어가는 아이에게도, 늘 E성향에 둘러싸여 피곤해하는 I들에게도(그 반대의 경우라도) 모두에게 추천해야만 하는 아주 묘한 매력의 책이다.


P.S. 이 책의 1권 맨 뒷 표지는 기후위기와 관련되어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에게 뼈 때리는 이야기여서 인상적이었는데 2권이 나와주니 너무 반갑다!! 곧 이어 나올 3권<튤립의 결심>과 4권<튤립의 겨울>도 너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