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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혈액에 어둠이 퍼져있는’,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가 현재 감금 1,299일째임을 알리며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책의 화자는 특이하게 문어이다. 더군다나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문어. (문어 중에서 특별한 문어가 아니라 모든 문어가 다 이렇게 똑똑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문어가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300건이 넘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던지, 이렇게 지성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유럽 어디에선가 양식하려 한다는 뉴스를 보며 뜨아했다.) 이 문어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보고 자신의 수명이 4년이라는 것, 그래서 앞으로 160일만이 남았다는 것을 아는 ‘똑똑한 생명체’(p.14)마셀러스가 이 책장 사이사이마다 깊은 흡입력을 자랑하는 빨판으로 작용하여 독자를 쭉쭉 빨아들인다.
작가는 ‘한국독자들에게’ “문어가 화자로 등장해 종을 뛰어넘는 유대감이 개인의 어두운 과거에 어떻게 희망을 밝힐 수 있는지 말해주”(p.7)는 특이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주인공 토바 설리번과 캐머런에 대한 어두운 과거를 밝혀주는 ‘열쇠’로 화자인 문어, 마셀러스씨가 활약한다. 토바는 18살의 아들을 의문의 사고로 잃었다. 그 슬픔을 품은 채 아쿠아리움에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가 남편도 2년전에 죽었고, 오빠인 라스도 요양원에서 죽어 뒷정리를 해주는 상황이다. 또 다른 주인공 캐머런은 친엄마인 다프네가 남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자기를 가졌고, 이후 아마도 마약 때문에 9살에 진이모에게 맡겨졌다. 엄마의 상자에서 친부라고 여겨지는 사진을 발견하고 이 아쿠아리움이 있는 소웰베이로 향했다. 토바는 다리를 다쳤고 대신 이 아쿠아리움을 캐머런이 청소하게 되면서 우리의 미스터 마셀러스씨의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인간의 지문을 예술품으로 여기고 토바가 잃어버린 열쇠를 한번 촉수로 훑어본 것만으로도 바다에서 자신이 만져봤던 열쇠와 같은 것임을 알아보는 마셀러스씨는 이 비밀을 독자인 우리에게만 알려준다.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읽는 재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셀러스씨가 감금 1306일째의 소감이다.
“나는 비밀을 아주 잘 지킨다(...)
비밀은 어디에나 있다. 어떤 인간들은 비밀로 가득 차 있다. (...) 최악의 의사소통 능력, 그것이 인간이란 종의 특징 인 듯 하다. (...)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걸까?“
동물과 다르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 사피엔스들은 말을 할 줄 알지만 개개인은 비밀로 가득차 있다. 이것이 화자인 마셀러스 씨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이며 저자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아니었을까?
p.s 1) 이 책의 절반 정도만 본 셈인데 추리소설을 볼 때처럼 흥미진진했다. 뒷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간만에 더하기 빼기를 해가면서 결말을 추측해보았다. 토바가 현재 일흔살인데, 그녀의 아이인 에릭이 18살에 죽었고.. 이후 30년이 흘렀고.. 캐머런이 9살에 진 이모에게 보내졌고, 현재 서른살이고.. 이 정도 더하기 빼기만 해도 충분하다. (아 입이 간질간질)이 책이 진짜 이만큼만 출판되어서나오고 뒷부분은 영화로 공개되어도 좋겠다는 상상을 했을 만큼 간만에 즐거운 독서였다.
2) 표지도 참 멋지다. 자기만의 방에 비밀 문이 열려있는데 거기에는 심해가 보인다. 우리의 마셀러스씨가 저 위에 빛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 그가 스포해도 인간은 문어의 말을 못알아들으니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