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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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은 은행에서 여신관련 업무를 맡은 주인공 ‘장’의 서사와 서해안에, 말뚝들이 떠내려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책의 제목이 <말뚝들>인 만큼 그 외형에 대해 발췌문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안색이 어둡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금 눈 감고 잠든 사람 같기도 했다. 눈을 감은 데다 뚜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 탓에 전부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혹은 모두의 얼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p.84)

분명 시체지만 잠든 얼굴처럼 보이는, 우리 모두의 얼굴로 묘사된다. 나는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 말뚝만 보면 판타지소설이다. 하지만 장의 서사로 따지자면 직장 암투이면서 스릴러 앤 서스펜스이자 거대권력에 맞서는 히어로물(?)이다. 블랙코미디에 막장 불륜(이 부분은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까지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눈물의 힘을 보여주는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맺는다. 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이 책을 선택했는지 알겠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음에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래서 재밌다.


이 말뚝들은 처음에는 서해안가에서. 도시 곳곳에 생겨난다. 독자들은 이 말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뚝이라는 건 본디 한 자리에 고정되고자 박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표류하다 후반부에 가서는 장의 베란다에, 그리고 광화문에 생겨난다. 이렇게 작가에 의해 우리 앞에 내던져진 말뚝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얼굴을 하고 독자에게 묻는다. 어디 아는 말뚝 없느냐고.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 입은 열리지 않았다.”(p.171)

이 말뚝들은 내가 그동안 보지 않으려 애쓰던 사람들이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고 나의 양심을 건드리는 최후의 보루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한편 나에게는 ‘빚’이라는 키워드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작은 부자를 큰 부자로 만들어주는 게 빚이고, 큰 부자를 계속 부자로 있게 하는 것도 빚이었다. 빚 때문에 망한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빚이었으니 빚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며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의 가난은 어디서 오는가? 사람들은 빚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가난해졌다.”(p.24)

빚으로 부자가 되는 인물은 대민그룹 둘째 아들이다. 그와 반대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장’은 큰 빚을 져야 결혼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두려워했고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던 오래 사귄 해주와 헤어질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장은 테믈렌과 해후한 후 빚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된다.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p.280)

나는 당신의 마음에 빚지고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백이 있을 수 있다니.

한 가지를 더 하자면 작년 12월의 일을 벌써 소설로 읽어볼 수 있다니, 한겨레문학상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백종원, 배철수 아저씨 특별출연. 아참, 배철수의 음악캠프 시그널 송을 글로 표현한 부분부터 나는 이 책을 홍홍홍 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으로 우동을 먹을 예정이고 판교에 가면 꼭 줄서서 먹는다는 마들렌을 사먹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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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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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The Red Decades: Communism as Movement and Culture in Korea, 1919-1945

냉전시대에 자라 정치를 청소년기에 읽은 <태백산맥>으로 배운 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같이 쓰일 수 없는 용어로 익혔다. 그러다 어느 책에선가 독일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의 당 이름이 ‘사민당’이라는 것을 읽었다. 어느 덧 영국의 노동당, 프랑스의 사회당, 스웨덴의 사회민주노동당 등 유럽에서는 이 두 단어를 함께 쓴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즈음에는 선진국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어슴푸레 깨달았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나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주의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1, 2차 세계대전 사이,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붉은 시대’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담긴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며 조선의 좌파운동을 전개하고 6.25 전쟁 이후 북으로 향한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통해 제 3자의 시선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던 박노자 저자의 이 책, <붉은 시대>는 올해, 광복 80주년이자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가 ‘빨갱이’로 치부하며 연루되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공산주의 운동을 연구한 책이다. 이 활동에 참가한 조선혁명가들 –지식인들과 학생들, 망명자,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1920년대의 당내 분파 논쟁과 그들의 강령, 전략, 실천이 이후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살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7장의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가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소제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떠올리는 챕터이기도 했다. 이 조선인 목격자들은 “1920년대 모스크바의 심각한 빈곤과 1930년대 스탈린주의 모스크바의 보수적 선회를 모두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붉은 수도’의 진정한 성취, 즉 인종차별을 척결하고 과거에 억압됐던 노동자들에게 고급문화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한 노력은 정당한 평가를 받았”(p.254)다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당시의 러시아를 부러워했을 조선인 목격자들이 상상되면서 동시에 지금의 러시아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목격자들과 반대의 행보를 걸어오며 푸틴의 나라를 벗어나 우리나라에 귀화한 박노자 저자의 이런 연구가 감사하면서도 그 사회주의의 원조격인 소련의 수많은 사라진 사회주의자들은 누가 연구해줄까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한 책이다. 그렇기에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스타일에 공감이 간다.

21세기가 되자,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유럽의 사민당들은 지지율이 바닥을 쳤다. 그러다 2016년 세월호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승격시켰다고 외신에서 전하자 우리는 감격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꿈꾸며 나아갈 수 있을까?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판을 친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 12월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언제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음을 배웠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로 근대를 맞으며 새로운 시대를 꿈꿨을 ‘그들’을 이 책을 통해 상상해본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난한 나의 모습과 ‘그들’을 비교해보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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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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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다2>
역사의 변곡점을 수 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대한민국 대표 지식 유튜브 보다(BODA)채널은 구독자 265만 누적 12억 뷰 채널의 초인기 시리즈인 ‘과학을 보다’와 ‘역사를 보다’를 메인으로 운영 중이다. 그 중 ‘역사를 보다’는 허준 MC와 ‘역사계 어벤져스’라 불리우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중동 지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출연하시는 박현도 교수님, 러시아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신 강인욱 교수님, 이집트 전문가 곽민수 교수님, 이 네 분이 <역사를 보다1>을 2024년에 출간하셨다. 이번 <역사를 보다2>에서는 한국 역사, 특히 고려사를 전공으로 하는 정요근 교수님까지 함께 하셨다. 이 책 역시 <역사를 보다1>과 마찬가지로 출간하자마자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놓여있다.

이 책의 묘미는 뭐니뭐니래도 역사에서 결정적인 장면들, 미스터리, 세계사 속 이야기들에 대해 뻔하지 않은, 전문가분들의 고견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이해되지 않는 역사 속 이야기들이 같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이라지만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중동지역 전문가와 이집트학, 한국사의 서로 다른 시선에 고고학이 더해져서 방대한 역사를 밥 한숟가락에 먹는 듯한 설명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역사서와 위서는 종이 한 장 차이다’라는 챕터가 인상적이었다. 허준 MC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교차 검증해 벗어나는 책은 다 위서다”(p.159)라는 주제를 던진다. 이에 대해 정요근교수님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통일 신라 때의 학자인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인용했는데, 오늘날 그 책에 대해서 진위 논쟁이 있”(p.160)다는 사실을 밝힌다. 덧붙여 일본 궁내성 왕실 도서관에서 근무했던 박창화라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학자를 거론한다. 그는 일본에서 <화랑세기>를 발견했으나 “국내로 반입할 수 없으니 근무하면서 필기했고 아무한테도 공개하지 않은 채 보관했다”(p.161)고 한다. 이 화랑세기에 대한 논쟁은 “김별아 소설가의 소설 <미실>이나 드라마 <선덕여왕>, 뮤지컬 <선덕여왕>으로 유명해졌지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고대사 학계에서 엄청난 논쟁의 대상”(p.164)이었음을 밝히며 이 필사본에서 새로운 향가까지 발견되었는데 근대적인 단어들이 많아 박창화의 창작 쪽에 의견이 몰리고 있다고 밝힌다. 이 교차검증이라는 주제에 대해 곽민수 교수님은 <구약성경>을, 박현도 교수님은 이슬람 세계에 <구약성경>과 비견되는 이븐 이스하그의 무함마드 전기를, 강인욱 교수님은 <손자병법>과 <손빈병법> 그리고 슬라브어로 쓰인 <이고리 원정기>의 책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정통’ 아니면 ‘이단’이라는 이분법적 재단이 너무 강하다”(p.172)는 의견을 박현도 교수님이 낸다. 이에 대해 강교수님은 “모든 걸 정통 아니면 이단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교차 검증하며 우리의 시야를 넓혀가는 게 진정한 ‘역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p.173)라고 덧분인다. 이 책의 핵심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대해 사실이다, 가짜 이야기이다라고 단정짓고 심판내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검증으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넓은 관점을 아우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의 스펙트럼대로 역사를 즐길 수 있는 또 한가지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세계사를 접하는 학생들이 위인명이나 세계지명에 지쳐갈 때 읽으면 좋겠다. 한국사, 세계사가 꼭 외워야 하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될 뿐더러 ‘실업자 양성소’(p.6)라는 것을 알면서도 역사라는 학문을 좋아해서 전공한 네 명의 덕후 교수님들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어떤 스파크를 던져줄지 나도 궁금하다.
#박현도#곽민수#강인욱#정요근#허준#믹스커피#역사를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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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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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나는 이 책 제목을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1부를 읽다가도 이 책 제목이 뭐였지, 다시 표지를 훑어보았다. 이상하게 한국어 제목은 ‘여름’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영어로는 “All I want for summer”겠네, 싶은 순간 내 머릿속에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재생되며 그제서야 이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부 연인들, 2부 감각들, 3부 장소들의 글들이 하나로 수렴하는 것은 겉으로는 여름이지만, 이 문장들이 찾아 헤맨 것은, ‘is you’, 바로 당신’이었다. 이런 부분이 ‘당신’을 향한 연애편지로 읽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우리’가 되기 전, 아니면 ‘우리’였던 지금의 ‘나’와 ‘당신’. ‘당신’을 생각하며 보내는 뜨거운 여름. 나 역시 간질간질한 마음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방어벽이 있으며 그것을 무너뜨리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으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좀 불편하더라도 바뀔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방어벽이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받을 수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고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p.67)

‘내 것이 아닌’이라는 제목의 산문 중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나’와 ‘당신’의 방어벽에 대해 떠올렸다. 나중에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옷을 입고도 땀 흘리는 계절, 그러다가 입은 옷을 벗어 제끼고 시원한 물로 뛰어드는 그런 여름에 대한 글들이기에. 이 책은 이런 방어벽이 1도 없어보이는 저자가 쓴 글이다. 그러기에 그가 남긴 오차즈케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고, 음악하는 사람의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나’는 그를 질투하는 대신에 ‘사랑의 맛’(p.83)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

“과잉 자체가 여름이다. 살아 있다는 것의 실감이 겨울에는 아득함으로 온다면, 여름에는 탄성으로 온다. 물에 뛰어들 듯한 인간에게 빠져들 때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p.176)

물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저주에 가까운 계절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한나씨의 여름에 대한 이 산문들은 탄성으로 다가온다. 한나씨의 뮤즈로 보이는 ‘열무’씨 역시 여름에 먹을 수 있는 김치라는 디테일에 감탄하며.

“나는 지나간 여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좋아하고,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p.193)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그런 영화가 하나 있었다. 사막이 배경이라 계절을 알 순 없지만 여름처럼 뜨거운 <바그다그 카페>가 그랬다. 황량한 여름이라는 한 복판에서 만난 한나씨의 이 글들이 야스민처럼 느껴진다.

내가 걱정한다고 온도가 떨어지지 않을 테지만 내년은 또 얼마나 더 더워질 것인가, 예보받지 않은 폭우에 기상청에 들리지 않을 짜증을 내며 닫지 않고 나온 창문에 불안하던 여름이 지나간다. 음력 상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습하고 더운 날, 한나씨의 여름 한철이 담긴 글들을 읽으며 내년 여름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어쩌면 내년 여름엔 나 혼자 떠난 치앙마이나 하와이의 어떤 펍에서 이 책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며.

#여름에내가원한것#하니포터11기#한겨레출판#하니포터#서한나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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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 -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김석재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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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은 ‘뇌와의 협상법’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

오늘날의 뇌과학 책들을 읽고 있자면 그동안 이성으로 밝혀온 철학의 영역에 반전카드를 내민 것 같이 읽혀 흥미로웠다. 철학이 답한 질문들에 뇌과학이 MBTI 중 T의 느낌으로 대답했달까?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쓴 이 책 중 1장, ‘알고도 왜,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까?’ 챕터를 읽으면서는 역사서처럼 읽혔다. 과거의 인류가 충동과 욕망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철학가들 뿐 아니라 불교, 그리고 공자, 노자,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까지,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해 써놓았다. 현대의 뇌과학에 이르러서는 편도체, 전전두엽,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이 뇌 속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즉 ‘조종당하는’ 일들이 쉬웠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뇌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감정 뇌 이론, 듀얼 프로세스, 자아 고갈 이론 등을 지나 도파민을 통해 뇌의 보상을 받는 시스템까지 읽다보면 지난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얼마나 충동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투쟁해왔는가, 알수 있다. 이후 2장부터 6장까지 작심삼일, 충동 구매, 중독에 이어 사랑과 자녀에 대한 챕터까지 읽다보면 이것들은 뇌의 자동반응으로 인한 것이기에 컨트롤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작고 구체적인 변화”(p.106)와 같은 소소한 루틴처럼 내가 유독 약한 충동적인 행동에 대해 뇌와 협상을 하는 방법이 각 챕터마다 기록되어 있어 실용적이다.

“체중 감량을 위해 ‘위고비’라는 주사를 맞은 후, 놀랍게도 그렇게 끊기 힘들었던 술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오늘까지만 마시고 다음 주부터는 진짜 술 끊는다’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막상 그날이 와도 여전히 술잔을 들고 있었어요. 신경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환자들의 뇌를 치료해온 저 역시, 뇌가 만들어낸 충동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습니다.”(p.6)
저자 역시 이렇게 고백하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보내는 신호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하니 평범한 독자들의 마음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이 책에 마음을 더 빨리 열어주는 편이기도 하다. 실제로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p.59)이었고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으로 재탄생해 다이어트 약물의 대표주자”가 되었다는 것과 “지금 이 약은 ”식욕 억제제’를 넘어 ‘욕망 억제제’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종당하는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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