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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 -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김석재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7월
평점 :
조종당하는 인간은 ‘뇌와의 협상법’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
오늘날의 뇌과학 책들을 읽고 있자면 그동안 이성으로 밝혀온 철학의 영역에 반전카드를 내민 것 같이 읽혀 흥미로웠다. 철학이 답한 질문들에 뇌과학이 MBTI 중 T의 느낌으로 대답했달까?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쓴 이 책 중 1장, ‘알고도 왜,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까?’ 챕터를 읽으면서는 역사서처럼 읽혔다. 과거의 인류가 충동과 욕망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철학가들 뿐 아니라 불교, 그리고 공자, 노자,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까지,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해 써놓았다. 현대의 뇌과학에 이르러서는 편도체, 전전두엽,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이 뇌 속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즉 ‘조종당하는’ 일들이 쉬웠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뇌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감정 뇌 이론, 듀얼 프로세스, 자아 고갈 이론 등을 지나 도파민을 통해 뇌의 보상을 받는 시스템까지 읽다보면 지난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얼마나 충동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투쟁해왔는가, 알수 있다. 이후 2장부터 6장까지 작심삼일, 충동 구매, 중독에 이어 사랑과 자녀에 대한 챕터까지 읽다보면 이것들은 뇌의 자동반응으로 인한 것이기에 컨트롤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작고 구체적인 변화”(p.106)와 같은 소소한 루틴처럼 내가 유독 약한 충동적인 행동에 대해 뇌와 협상을 하는 방법이 각 챕터마다 기록되어 있어 실용적이다.
“체중 감량을 위해 ‘위고비’라는 주사를 맞은 후, 놀랍게도 그렇게 끊기 힘들었던 술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오늘까지만 마시고 다음 주부터는 진짜 술 끊는다’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막상 그날이 와도 여전히 술잔을 들고 있었어요. 신경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환자들의 뇌를 치료해온 저 역시, 뇌가 만들어낸 충동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습니다.”(p.6)
저자 역시 이렇게 고백하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보내는 신호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하니 평범한 독자들의 마음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이 책에 마음을 더 빨리 열어주는 편이기도 하다. 실제로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p.59)이었고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으로 재탄생해 다이어트 약물의 대표주자”가 되었다는 것과 “지금 이 약은 ”식욕 억제제’를 넘어 ‘욕망 억제제’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종당하는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