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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양양(My Missing Aunt)-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광주항쟁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억을 다룬 <옥상자국>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던 감독 겸 저자는 어느날, 술취한 아버지로부터
“사실은 누나가 있었어.”(p.18)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으니까.”(p.19)
라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존재 조차 몰랐던 고모가 대학 졸업식 전에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제목이자 책 제목인 <양양>은 고모 양지영과 감독이자 저자인 양주연, 두 이름을 겹쳐 부르는 말이자 나아가 이 집안의 여성들을 일컫는다. 그렇게 저자는 장편 다큐멘터리 <양양>을 만들었고, 이 영화는 제 11회 부산여성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이후 여러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다. “이 책은 영화에서 다 말하지 못한 그 마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p.9)
고모인 ‘주인공을 촬영할 수 없는 영화’였기에 동생인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친할머니댁에 가서 가족앨범과 고모의 책들을 살핀다. 고모가 다니던 전남여자고등학교와 조선대학교를 찾아간다. 고모의 동창들과 친구들을 만나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간다. 그러면서 어린 아버지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알게 된다. 고모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와 이별을 고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 당시의 신문을 찾아 고모처럼 또 다른 교제살인으로 목숨을 잃은 익명의 여성들을 발견한다. 즉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가부장제라는 과거 속에 잊혀진 또 다른 양양들의 존재를 건져 올리는 과정이 담겼다.
주말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모이는 양씨네 가족들은 다른 집과 다를바 없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영혜네를 떠올렸다. 양씨네 가족들도, 영혜네도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우리나라의 흔한 가족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고모와 영혜처럼 숨기려했던 존재들이 있었다.
저자가 고모의 서사를 되찾아줄수록 저자와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새롭게 재정의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랑이 뭔지 정의할 수 없지만, 카메라 앞에 있는 게 잔뜩 긴장되고 불편하지만, 그런데도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고모와 할아버지와는 나눌 수 없었던 말을, 나는 아빠와 함께 영화 안에서 나누고 싶었구나.”(p.175)
2024년 10월, 용용이라는 태명의 아들을 낳은 저자의 이야기 역시, 남자와 여자로 이분화된 장벽이 더 이상 높지만은 않게 느껴져 더 반가웠다.
개인적으로는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에빙하우스의 망각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잊도록 창조된 존재라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책임을 정언명령으로 받아들인 누군가는 잊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길임에도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지 않던 연대와 사랑이라는 선물을 발견한다는 이 해피엔딩이 당분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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