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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코로나 확진자로서 세 번 자가격리를 해야만 했던 우식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 번째 자가격리에 우식은 격리 브이로그 영상들을 보다가 ‘격리 전문가 조기준’이란 단어에 꽂혀 휴먼북 라이브러리라는 사이트에 연결, <휴먼북 조기준>을 읽게 된다. 그렇게 우식의 서사와 기준의 서사는 교차하며 이 소설이 진행된다. 우식이 기준의 격리에 가장 가깝게 이입될 때,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건가’라고 독자가 살포시 결말을 예상해볼 바로 그 때 이 소설은 방탈출을 위한 절정으로 치닫는다. 나는 이 책에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이야기의 힘을 이 책에서 느꼈다. 그 이야기는 가해와 피해로 얽혀있는 인물들을 통해서 그려진다.
주인공은 아마도 우식, 기준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우식과 디지털 세탁소를 운영하던 마태공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격리 전, 같은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던 그는 우식에게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제안한다. 개인 SNS나 딥페이크에 이용되거나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을 지워주는 선의의 일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반대의 상황이 더 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식과 함께 세번째 자가격리되었던 마태공은 돌아오지않는다.
“어쩌면 더러움은 더러움으로 남겨둔 채 강력한 처벌을 하고 인간은 빨아 쓸 수 없다는 말을 진리로 믿으며 죄를 죄로 박제해두는 것이 악의 재발을 막는 데, 정당한 사회를 만드는 데 더 도움이 되는 일인지도 몰랐다.”(p.84)
이후 우식은 전직장 동료로부터 마태공이 전국 사과투어를 하는 모습이 찍힌 영상을 공유받는다. 디지털 세탁소가 처음에 마태공이 생각했던것 같지 않았음을 유추할수있는 대목이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나가고 싶은 자기만의 벽장이 있다. 마태공에게는(...) 죄의식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벽장이 되어 그를 가두고 있었을 것이다.“(p.91) 이 책을 다 읽은 후, 그래서 마태공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예전에 은으로 된 가느다란 사슬형태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한 부분이 꼬여버렸고 그것을 풀기 위해 애를 쓰다 더 꼬여버려 화장대 구석에 던져놓았던 목걸이였다.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은 그 꼬인 줄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가해와 피해로 얽힌 사슬들은 하나의 얽힘을 풀고 나면 한 명의 서사라는 밧줄이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식, 기준, 근태, 안나, 마태공의 서사가 각각의 줄이 되어 하나의 동아줄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에 매달려 이 어두움으로 가득 찬 벽장을, 상자를 탈출할 계획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