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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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유년기를 지냈던 아멜리 노통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세 살 아이 '파이프'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식물처럼 말도 안하고 울지도 않는 특별한 신생아기를 보낸 파이프는 세 살 답지 않은 초월적이고 관조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어른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스스로의 '초성숙'을 파이프가 독자에게 미리 밝히면서 책은 점점 흥미로워진다. 

 

 파이프는 자신이 이미 글을 깨우쳤으며 외국어로 말할 수 있고 어른들이 너무 놀랄까봐 제 능력들을 숨겼다고 말한다. 이어서, 익사할 뻔한 사건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기도'였다고 회고한다. 또한, (원래 유모였던) 니쇼상과는 달리 친절하긴 커녕 매섭게 구는 카시마상을 단순히 악한 인물로 여기지 않고 그녀의 감정을 나름대로 추리하면서 '입체적인 캐릭터'에 대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하다 못해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던 파이프. 그러나 파이프는 곧 니쇼상과 영원히 지내지 못한다는 진실을 깨우치게 되고, 잉어 호수에서 빠져 죽을 뻔한 사건 등속을 겪으며 점차 세상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 

 

 파이프의 고백과 성장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그녀가 전혀 세 살짜리 같지 않다며 설정 자체를 의심하면서도, 보통의 아이와 파이프의 속내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보며 유머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더욱이 아멜리 노통브의 독특한 문체와 묘사가 듬뿍 담겨 있어 그녀의 입문작으로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영 재미가 없어 보였지만, 독서 속도가 붙을수록 발칙한 세 살에 매료되는 즐거움이 있더라.

우리들의 개성은 정말로 별 볼일 없다, 우리들의 취향도 하나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느끼는 혐오감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말해 준다.

세 살이 되어도 정말이지 하나도 좋은 게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이 나이부터는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맞는 얘기다. 뭔가, 벌써, 없어져 버렸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세상의 너그러운 영속성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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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과 프로파일러 김경옥의 프로파일링 노트
이수정.김경옥 지음 / 중앙M&B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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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정 범죄심리학자의 얼굴이 낯익고 책의 제목이 끌려 읽어보게 된, 나의 첫 범죄심리학 책이다. 크게 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한국형 범죄(묻지마 범죄, 가정폭력, 주취폭력)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각각의 사례를 제시하고 그 사례 속 가해자인 범죄자의 심리를 유년기부터 당시 체포되었을 시기까지 내밀하게 살펴보고 있다.


 범죄분석요원 일명 프로파일러의 필요성과 범죄심리학의 중요성이 우리나라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유영철 사건 이후부터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하고, 비슷한 범행에 대처하기 위해서 범죄심리학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범죄자들의 동기와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필자들의 말처럼 결국 우리의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읽는 내내 범죄자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범죄자 대부분이 불우한 가정환경과 폭력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어 있었고, 가장 중요한 사회화 시기에 보살펴줄 어른이 없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단 점이 마음에 걸린다. 선천적으로 잔악한 인간도 물론 있다. 하지만 범죄자 다수는 사회의 어느 미비한 구조의 그늘 아래서 양성되는 것이다.


 성격장애 카테고리와 가정폭력 카테고리에서 읽은 사례가 하나씩 기억난다. 전자는 임용고시 준비생이자 각기 경계선 성격장애와 연극성 성격장애를 앓던 여성 둘(따지자면 한 여성의 남자친구까지 합해서)에 의해 남자 학생이 구타 뒤 입은 화상에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고, 후자는 십수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아내가 잠든 남편을 넥타이로 목졸라 죽인 사건이었다. 성격장애가 지닌 비공감의 말로가 끔찍해서 놀랐고,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현행법 상 아직 정당방위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단 점에 놀랐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우리나라의 법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주취범죄를 무조건 심신미약 처벌로 때려박았던 옛날과는 달리, 근래는 오히려 가중처벌을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하니까. 검거율이 높은 편이고 치안이 좋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조금 더 안심을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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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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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은 김연수의 세 번째 장편 소설.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장편이라기보단 중편에 가까우므로, 따지자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두 번째 장편인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기준 최고로 좋았던 김연수 작가의 작품 순위가 바뀐 건 아니지만, 김연수는 역시 섬세하고 현학적인 문체로 원더보이의 세계 안에 나를 푹 빠지게 만들었다.


 정훈은 간첩과의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순식간에 열다섯 고아가 된다. 정훈은 프로파간다에 의해 '원더보이'라는 별명을 얻는데, 이 과정에는 더 큰 진실이 있었다. 정훈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진짜 '원더보이'가 됐다는 것. 정훈을 출세 도구로 사용하려는 권대령의 휘하 정훈은 고문 받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가려내는 일에 투입되지만, 엄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정부기관에서 탈출하기에 이른다. 이후 정훈은 초능력 소년 이만기, 강토 형, 무공 아저씨, 선재 형, 재진 아저씨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 사이에서 엄마의 행방과 아버지를 잃은 고통, 자신의 삶을 마주하면서 성장하고, 점차 원더보이가 아닌 진짜 정훈이 되어간다.


 <원더보이>의 독특한 점은 단순 판타지 성장 소설처럼 끌고 가던 소설의 전개를 군사 독재, 언론 탄압, 상계동 철거, 광주항쟁, 남북 분단 등의 실제 역사적 사건과 엮어 원더보이가 살던 80년대의 슬픔을 상기시키고 현재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시선을 선사하는 것에 있다. 강토 '형'으로 분장했던 인물 희선 씨가 정부에 의해 잃은 연인 이수형의 사연을 말해줄 때와, 기억력이 뛰어났던 수형이 고문으로 모든 기억을 잃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광주에서 투쟁할 때, 정훈이 발견한 엄마의 편지에서 엄마가 북에 있을 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목소리를 보게 될 때가 그러하다.


 와중에 김연수 특유의 현학적 우주론은 뜬금없이 사진이란 비주얼로 등장해 '우리의 1초가 별빛으로 가득하다'는 것과 '아직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밤이 어둡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독자들의 가치관을 재정립한다. 더욱이, '미친'과 '엉?' 소리를 달고 다니던 이만기가 양복 쌍둥이 누나를 좋아하게 됐다는 설정 등 곳곳에 흩뿌려진 유머로 슬그머니 짓게 만드는 웃음까지 놓치지 않는 소설이다. (희선 씨를 좋아하게 됐던 정훈에게는 가혹하지만) 분신을 하겠다는 다짐을 접고 현실의 빛을 받아들이기로 한 희선과 맹렬히 사회과학서에 매진하는 재진 둘의 결혼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돌고래쇼를 감상하게 된 정훈까지 그림 같이 행복한 결말도 참 마음에 든다.


아 이래서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층 충만해진 기분이다. 책 속의 수없이 많은 문장들이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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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 1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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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심플한 그림체 속에 철학적인 공감을 담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혼자 감당했다면 쓰라릴 정도로 아팠을 일면들은 그녀가 함께 공감하며 어루만져주는 순간 소중하고도 행복한 일상으로 치환된다. 이러한 장점이 십분 발휘된 부부일기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이다. 이 리뷰는 1권에만 해당되는 리뷰이지만, 현재 총 4권으로 완결 출간되었다.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의 주인공은 비서 치에코씨와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하는 사쿠짱. 마스다 미리는 특유의 장기로 캐릭터를 부담스럽지 않게 내비추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한 편 두 편 에피소드를 읽어나가다 보면 독자의 마음 속엔 어느샌가 치에코씨와 사쿠짱이 원래 알고 있던 친구마냥 곱게 품어져 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보는 부부, 명절은 각자 서로의 집으로 귀성하는 부부, 술에 취해 애플파이가 그려진 키친시트를 사온 사쿠짱, 가끔 혼자 있고 싶어하는 치에코를 이해하는 사쿠짱, 사쿠짱을 생각하며 뒷단추 있는 원피스를 사는 치에코. 이런 가볍게 일상에 붙은 예쁜 모습들을 보면 그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권을 읽자마자 나머지 권도 서둘러 도서관에서 빌려 바로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절대 시간이 아깝지 않은 만화였다. 마스다 미리의 대부분의 책이 그러했듯!

"사쿠짱. 사쿠짱한테 행복이란 뭐야?"
"치에코가 있고 일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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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은
안녕하신가영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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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가수 안녕하신가영의 에세이. 안녕하신가영의 노래를 원래 좋아하고 많이 듣는 편이다. 목차도 안녕하신가영의 노래 타이틀로 이루어져 있어서 술술 읽으며 안녕하신가영, 좋아서 하는 밴드 노래도 오랜만에 원없이 들었던 기억. 책에서는 '그리움에 가까운', '겨울에서 봄' 파트가 특히 인상 깊었고, 행복의 정의에 고개 끄덕여 가며 공감했다. 역시 그녀의 예쁜 가사들은 이 수많은 감성, 여행, 생각들에서 왔던 거였나 보다.

행복 : 현재 맛있는 걸 먹으면서 다음에 어떤 맛있는 걸 먹을지 고민하는 것.

잘 타지도 않는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한강으로 갔다. 입구에 도착해서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왼쪽으로 정하고 핸들을 돌리는데 그가 동그란 눈을 하고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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