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음 : Howl - 그리고 또 다른 시들
앨런 긴즈버그 지음, 김목인.김미라 옮김 / 1984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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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는 <울부짖음>을 격렬한 저항의 시, 비트 세대의 대표적 시로 소개하면서 이 시가 '남루하고 고단한 겉모습 안에 담긴 신성을 다양한 풍경으로 표현하는 시'라고 덧붙인다. <울부짖음>과 더불어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주는 유명한 다섯 편의 작품, 그리고 그의 초기작 네 편 모두 인상 깊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는 (<울부짖음>외에) <캘리포니아의 슈퍼마켓>, <아메리카>, <아스포델>.

우리 시대의 광기 어린 행려와 천사 비트족들, 누가 알겠느냐만 죽음 이후에 다가올 시간에 할 말이 남아 있을지 몰라 여기에 적어둔다.
이제 장미는 밴드 관악기들의 그림자 속에서 재즈의 유령 같은 옷을 걸치고 환생했다. 그리고 아메리카가 발가벗은 마음으로 사랑을 하느라 겪는 고통을 힘껏 엘리 엘리 라마 라마 사박타니(*‘주여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 아람어) 색소폰 울음 속으로 불어넣었으니 최후의 라디오 하나까지 도시들을 전율시켰다.
더불어 인생이라는 시의 완벽한 심장을 그들 자신의 몸에서 도려내어 천 년은 먹기 좋게 해두었다.
_<울부짖음> 중에서.

지금 너에게 얘기하고 있는 거야.
계속 그렇게 네 감성적인 삶을 타임지가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둘 거야?
나도 타임지 중독이지.
매 주마다 읽고 있어.
귀퉁이 구멍가게 앞을 슬그머니 지나가면 그 표지가 매번 날 노려보더군.
난 보통 버클리 공공도서관 지하에서 읽어.
그 잡지는 언제나 내게 책임감에 대해 얘기하더군. 사업가들은 진지해.
영화제작자들도 진지하고. 나만 빼고 다들 진지하지.
내가 곧 아메리카란 생각이 떠오르는군.
나 또 내 자신에게 얘기하고 있어.
_<아메리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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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듯 너를 본다 J.H Classic 2
나태주 지음 / 지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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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친절히 안내하는 시인의 말처럼 인터넷 상 블로그, 트위터 등지에서 자주 언급됐던 시인의 시들을 모아 엮은 시 선집이다. 때문에 드라마 <학교>에서 인용되어 근래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풀꽃 1>부터, 자주 보고 쓰고 말했던 나태주 시인의 시들을 한 데 볼 수 있다.

 시를 다 읽고 수록된 '인터넷 시평'을 보며 웃음지었던 기억이 난다. 계정을 명시한 시평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애틋하게 떠올렸단 말부터 '나태주 시인 최소 덕질 해보신 분 같다'는 말, '시를 보다 울고 말았다'는 말 등속의 가감없는 감상들이 적혀 있다. 그러고보니 아이돌 직캠이나 아이돌 사진에 시가 함께 어우러져 기재된 글을 종종 본 적 있다. 나태주 시인도 자신의 시가 아이돌 문화에 적극적으로 쓰이는 문화적 현상(?)을 본 적이 있었고, 그 현상을 좋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를>, <사는 법>, <풀꽃 1>, <이 가을에>, <눈 위에 쓴다>, <행복>, <3월>, <지상에서의 며칠> …  좋았던 시가 너무 많다.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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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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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된 일명 ‘모지스 할머니’. 이 책은 그녀가 92세에 출간한 자서전(당시 미국에서 1952년 출간)과 그녀의 그림 67점을 엮어 만든 에세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그녀의 성장과정을 엿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어린시절 가족과 자연에서 뛰놀며 지냈던 시간들과 12살에 가정부가 되어야 했던 사정들이, 2부에서는 남편 토마스 모지스와 결혼해 남부 지역으로 이사를 하고 다섯 아이들을 키우는 나날들이, 3부에서는 자녀들을 모두 결혼시킨 뒤 그림을 그리게 된 모지스 할머니가 유명한 화가가 되어 라디오 출연부터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까지 행복한 유명인사로 보내는 하루들이 펼쳐진다.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단연 제목이었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현재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내게 이처럼 힘과 용기를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사실 이 책을 샀을 때만 해도 일을 하던 때였다. 일하면서 생각이 많아졌을 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소장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다.


 처음에는 대단한 사건도 흥미로운 경험도 없이 누가 결혼을 했고, 농장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어디로 이사갔고 그런 일들만 나열되어 괜히 책을 샀다는 감상이었다. 영양가 없는 일기를 지켜보는 기분에 심드렁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모지스 할머니가 살았다는 마을의 푸른 벌판이나 숲, 썰매 타는 풍경, 마을 축제, 벌목의 풍경, 화이트 사이드 교회, 시럽을 만드는 풍경들이 그녀의 그림과 함께 차분히 펼쳐졌고 점차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유명해졌을 때도 유명세에 별다른 뜻이 없었고 그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삶을 즐겼던 모지스 할머니. 그녀의 낙관적인 삶의 태도가 그림에 그대로 묻어나 있어 감상자로 하여금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한다. 


 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죽기 전까지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 1600여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녀의 근성과 열정, 손재주를 지켜본 바 굳이 그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사람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직접 만든 버터, 감자칩, 털실 그림을 팔고 전시하던 사업 수완만 봐도 그렇다.(여동생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언급하는데 그 문장을 보면 유전적 손재주도 무시할 수 없다!) 모지스 할머니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했고, 부지런히 일했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생각하고 있던 차에 어느새 그녀의 아들딸들이 장성했고 손자 손녀가 생겼고 그녀가 할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문장이 나오자 참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함께 체감했다. 인생이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의 남편 토마스는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여겼고 못된 말을 하기도 했다. 허나 세상을 뜨기 몇 주전, <울타리 옆 파란 옷 입은 소년>을 보고 뜬금없이 그림이 좋다고 칭찬하더니, 그 후부터 그림을 그리는 모지스 할머니 옆에 딱 붙어 그림을 구경했다고 한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신은 남편 덕분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회상하면서, 그이가 걱정스레 했던 말처럼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 말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날 뻔했던 기억이 있다.


 책에서 보고 좋았던 그림 몇 점을 사진으로 첨부한다. 그녀의 그림처럼 호젓한 자연풍경이 펼쳐진 어린시절은 아니었지만 나의 옛날을, 고향을 자연히 떠올리게 만드는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인들이 왜 그녀의 그림을 좋아했는지 절절하게 알겠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내 삶의 스케치를 매일 조금씩 그려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며 그저 생각나는 대로, 좋은 일, 나쁜 일 모두 썼어요.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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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버려서 얻고 비워서 채우는 무위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노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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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말해질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 이름 지어질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_1장


 서평단에 당첨되어 줄곧 이름만 들어왔던 《노자 도덕경》을 읽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엔 내가 과연 도덕경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읽고보니 새로운 일과 새로운 목적을 찾는 현재 나의 상황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책이었고 큰 깨달음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최근 <알쓸신잡3>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언급하며 진정한 고전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느끼게 하는 책이라고 했다. 내가 《노자 도덕경》을 읽을 때 물밀듯 느꼈던 감정이다. 《노자 도덕경》은 나처럼 '길을 헤매는迷'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고전이다.


 《노자 도덕경》은 도가의 시조로 알려진 노자의 어록을 모은 책이다. 초기에는 정확한 명칭이 없어 《노자》로 불렸다가, "우주의 본질이 '도道'이며 천지만물이 '도'에서 탄생한다"는 '도'의 이론과 기둥을 다루는 상편 <도경>과 '도'의 작용이자 '도'의 드러냄이 '덕德'이고 그 운용을 말하는 하편 <덕경>의 앞 자를 따서 지금까지 《도덕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자 도덕경》은 5,000여 자의 비교적 짧은 글 속에 우주론, 인생론, 정치론, 통치론, 병법론 다방면의 철학을 간단명료하게 담은 고전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이 처음 쓰인 춘추전국시대 백가쟁명의 장에서 정치와 도덕을 회복하려 노력했던 군주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평범한 우리도 쉬 '자기계발서'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고통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해법이 그만큼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롭게 하고 다툼이 없고 남들이 싫어하는 곳에 먼저 처하는 물의 속성을 강조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너무 분별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현덕玄德', 유有의 집착을 비판하고 없음無의 역할과 효용의 강조(11장), 인간의 허례이자 겉치레인 '오색五色' '오음五音' '오미五味' 비판, 실속 중시(12장), 자신이 아는 것을 어떤 지식의 틀로 끌여들어 생각하지 않는 '부지不知' 비판 같은 문장들이 바로 내가 바라던 해법에 해당했다.


 물론, 도가도 '완전한 철학'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연(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도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했으나, 삶의 정도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벌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들이 별 탈 없이 살기도 하는 불공정한 세태를 바라보면 하늘의 이치가 과연 오른 것인지 의심이 간다.(79장, 사마천) 게다가 노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는 '소국과민'으로 인위적인 문화와 문명이 없고 소박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융화되어 욕심없이 인위없이 살아가는 세계였다. '소국과민'의 기틀 위에 세워진 정치론은 현대 정치에 적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우민정책'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허나, 공자의 유가 사상에 익숙하고 그렇게 가르침 받아온 내겐 낯설고 새로운 가르침이 많았다. 이를테면, 유가에서는 인仁을 기본 개념으로 삼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기초로 하여, '효孝'와 '제悌' '충忠' '서書' '예禮' '악樂'을 실천 방법으로 말했다. 허나, 노자는 인仁을 '치우침'이자 '편애'라고 부정한다. 가족에서 출발하여 사회와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차별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니 편견이 있게 되고 천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인仁과 의義를 인위적이고 일탈된 가치라고 보는 점, 여성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언급하고 '항상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긴다'고 높이면서 남성 못지않게 긍정하는 점, (학문이 입신양명의 수단이므로 그에 따른 보상과 제약에 철저한 유가와는 달리) 앎은 순간적으로 얻어지며 학문은 인간의 본성과는 멀어지게 만든다고 판단하는 점, (개인의 덕을 천하의 덕으로 확장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가와 달리) 저마다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국가와 사회 혹은 가족보다 자신의 몸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점(54장), 세속의 시선으로 대립항을 설정하면 획일적으로 사유하게 되니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공존하여 조화로 다루는 점, (유가의 덕치와는 달리) '백성이 통치자의 존재만 알 뿐 그가 무엇을 하든 관심도 없고 존재 자체를 알 수 없는' 무위無爲의 정치를 최고의 정치로 일컫는 점, (겉과 속 모두 중시하는 유가의 물질빈빈과 달리) 속만을 강조하는 점 따위의 확연히 배치되는 가치 설정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유가와 도가를 비교해서 보면 《노자 도덕경》의 독서가 더욱 즐겁게 다가오리라고 장담한다. 내가 여태껏 세상의 신념이자 진실이라고 여겼던 철학이 부정 당하고 깨부수어지는 걸 지켜보면서 색다른 사상을 받아들이고 나만의 철학을 세우는 재미가 있다.


《도덕경》에 최초로 주석을 단 사람은 한비자라고 한다. 때문에 이 책에서도 설명이 부족한 문장이나 이해가 어려운 문장에서 종종 한비자의 주석이 인용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역자 김원중 교수의 친절한 해설에는 그러한 인용과 다양한 판본과의 비교, 관련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어 《노자 도덕경》을 이해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역자의 능력에 이토록 감탄한 경우는 드물었는데  《노자 도덕경》을 읽고 나서 김원중 교수의 번역이 너무 좋아서 다른 번역서도 더 볼 수 있을까 싶어 따로 찾아보았다. 이 책 《노자 도덕경》이 포함된 휴머니스트의 명역 고전 시리즈에서 《한비자》나 《손자병법》, 《논어》 등을 이어서 읽어볼 예정이다. 이렇게 보면, 《노자 도덕경》은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 시각이 전환되는 계기를 선사해주었다. 동양 철학에 대해 갖고 있던 '무작정 어렵고 심오한 사상'이란 편견을 버리고, 이제는 '세대를 뛰어넘는 삶의 정수'라고 먼저 주창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노자 도덕경》을 읽는 내내 어쩌면 도가 사상은 '미니멀리즘'의 원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리즘'은 익히 알려진 대로,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을 가리켜 칭하는 용어다. 《노자 도덕경》에서는 언어가 존재의 파악을 가로막고 왜곡한다고 여겨 '침묵'을 권유하고, 교묘한 지식이 날로 더해지므로 학문을 끊으라고 하며, 감각적인 향락이나 물질생활을 멀리하고 소박하고 욕심 없이 생활하고, 일거리를 제거하고, 자연처럼 물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함에 따르라고 가르친다. 이 모습은 마치 최대한 짐을 줄이고 덜어내고 '심플'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 비슷하지 않은가. 패션과 유행이 시대를 넘어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 철학도 돌고 도는 모양이다. 역시 머릿속이 복잡하고 가득찰 때 답은 미니멀리즘, 무위無爲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고 있으므로 도에 가깝다.
(……)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게 된다.
_8장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어, 그 없음으로 해서 수레의 쓰임이 있다.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면, 그 없음으로 해서 그릇의 쓰임이 있다.
창과 문을 뚫어 집을 지으면, 그 없음으로 해서 집의 쓰임이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은, 없음이 [그들에게] 쓰이기 때문이다.
_11장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이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지만, 힘써 행하는 사람이 뜻을 얻는다.
그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지만, 죽더라도 [도가] 없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
_33장

나의 말은 매우 알기 쉽고 매우 행하기 쉬운데도,
천하에서 누구도 알지 못하고 누구도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종지宗旨가 있고, 일에는 중심 되는 것이 있으나 [저들은 무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것은 [곧] 내가 귀한 것이니,
이 때문에 성인은 베옷을 걸치고도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
_70장

사람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그가 죽게 되면 딱딱하고 굳어버린다.
만물이나 초목이 살아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여리지만 그들이 죽게 되면 마르고 시들게 된다.
그러므로 딱딱하고 굳어버린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이 때문에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게 되고, 나무가 강하기만 하면 부러진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거처하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위에 거처한다.
_7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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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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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박민정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 처음 읽어본 박민정 작가의 소설이다. 《미스 플라이트》는 딸 '유나'의 자살로 인해 유나의 아빠 '정근'이 유나의 죽음 뒤에 숨겨진 회사와 노동 조합 간 악력 차이, 그 자신이 군인 장교 시절 저질렀던 잘못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유나가 장교 딸로서 부족함없이 자라온 환경 밖에 얼마나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을 정체화하는 성장을 볼 수 있는데, 전라도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고향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에 반기를 들거나 환경을 해치는 건설 사업에 도보순례로 훼방을 놓는 등의 행동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나가 정근이 연루되었던 부대 방산 비리를 비난하다가 정근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는 등 슬픈 회상도 뒤따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유나의 성장 소설이자 정근과 유나의 세대를 잇는 사회 소설이다.


 정근은 유나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혼한 유나 엄마 지숙과 그리고 딸 유나를 십 여년 동안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 유나가 정근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유나가 크게 폭행 당한 것이 이혼의 가장 큰 발단이 되었다. 머리가 커진 유나가 자연스럽게 정근의 뜻에 반대하고 이에 세대 차이가 덧붙여져 둘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그보다는 더 큰 사건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사건에는 정근의 운전병으로 일했었고 유나와 같은 항공사에서 부기장으로 일했던 영훈과 그의 아내 혜진이 얽혀 있다. 정근이 출장을 갔던 과거 어느 날, 영훈은 정근에게 앙심을 품고 현장학습길에 데려다주려 했던 유나를 납치한다. 유나를 혜진과 자신이 살던 기숙사로 데려간 영훈은 3일 동안 유나, 유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아팠던 혜진과 함께 보낸다. 유나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영훈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그 이유에는 아빠가 있다고 짐작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땐 엄마에게 그저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유나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한 첫 사건이자 더 이상 불합리한 사회의 방관자로 존재하지 않겠다고 첫 발을 대딛게 한 사건인 셈이다. 이후 유나는 줄곧 사회 저항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자신을 비도덕한 소문의 주인공으로 몰아간 항공사 엑스맨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음을 알게 된 후 자살을 택한다. 친구의 배신이 유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온전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유나가 변치 않는 사회 구조를 지켜보며 무기력을 느꼈을 배경에는 분명 회사의 엑스맨 제도가 유나에게 준 압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유나를 유부남 부기장과 불륜을 저지르는 승무원으로 몰아가고 상처 입혔던 B항공사의 엑스맨 제도와, 과거 내부고발자 윤대령을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정근 부대의 방산 비리는 대응된다. 또한 노조 일원으로서 피해자의 위치에 선 운전병이자 부기장 영훈과, 그런 영훈을 도왔던 유나도 세대를 넘어 대응되는 모습을 가진다. 방산 비리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적은 없지만 침묵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혜진이 유산하던 날 명목상의 이유로 영훈을 붙잡아두고 무시를 일삼았던 정근은 가해자의 위치에 섰던 사람이다. 그런 정근이 딸 유나가 남겨놓은 기록을 더 파헤져보리라 결심하는 엔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물림되는 사회의 악력 차를 끊어보리라 저항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정근을 응원하고 싶은 한편 씁쓸하게 지켜보게 되기도 한다.

정근은 실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상황을 견뎠다. 유나가 죽었다. 유나의 친구들이었다. 지숙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나보다 유나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유나에 관해 자격이 없다.
화내고 싶은 충동을 참게 해 준 유일한 이유였다.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아저씨, 당연하다고 했잖아요. 노동자로서 싸우는 건. 어떤 거대한 이상도 없는 거라고. 노동자는 신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고.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더 나빠지니까 살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라고. 이제 나는 아저씨의 본의도 모르겠어요. 아저씨가 기장이 될 수 없었던 까닭도 본인의 능력 부족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왜 모두를 위해 앞장서서 싸우는 건지. 아저씨는 회사가 사원에게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몰라요. 아저씨가 노조 간부이며 내가 그런 아저씨와 어울려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더러운 사람들로 얼마든지 몰아갈 수 있다는 걸 아저씨는 몰랐어요. 꾸며 내지 않은 진짜로 일어났던 비극을 이용해서, 하나의 허름한 인생과 그 사람의 진심을 이용해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10년간 꼼짝없이 경비실에 앉아 ‘KF-16 태스크포스 출범 기념‘이란 글자를 강제로 응시해야 헸던 날들을 갚아 나가듯 유나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근은 다짐했다. 오래전 운전병이었던 부기장과 그 부인을 만나 사죄하는 일도 유나가 원한 것일 터였다. 정근은 선뜻 병실을 찾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짐작이라도 한 듯 다가오는 영훈을 보며 다짐했다. 옛날의 자신으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그러는 와중에도 정근은 유나를 때리던 날 쓰러져 있는 지숙의 곁에서 유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 저주에 가까웠을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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