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박민정 작가의 신간을 읽었다. 처음 읽어본 박민정 작가의 소설이다. 《미스 플라이트》는 딸 '유나'의 자살로 인해 유나의 아빠 '정근'이 유나의 죽음 뒤에 숨겨진 회사와 노동 조합 간 악력 차이, 그 자신이 군인 장교 시절 저질렀던 잘못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유나가 장교 딸로서 부족함없이 자라온 환경 밖에 얼마나 불합리한 사회적 구조가 존재하는지 알게 되고 스스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을 정체화하는 성장을 볼 수 있는데, 전라도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고향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에 반기를 들거나 환경을 해치는 건설 사업에 도보순례로 훼방을 놓는 등의 행동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나가 정근이 연루되었던 부대 방산 비리를 비난하다가 정근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는 등 슬픈 회상도 뒤따른다. 따라서 이 소설은 유나의 성장 소설이자 정근과 유나의 세대를 잇는 사회 소설이다.


 정근은 유나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전까지, 이혼한 유나 엄마 지숙과 그리고 딸 유나를 십 여년 동안 만나지 않고 살아왔다. 유나가 정근에게 이의를 제기하자 유나가 크게 폭행 당한 것이 이혼의 가장 큰 발단이 되었다. 머리가 커진 유나가 자연스럽게 정근의 뜻에 반대하고 이에 세대 차이가 덧붙여져 둘의 사이가 멀어진 것이라고 추측했으나, 그보다는 더 큰 사건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사건에는 정근의 운전병으로 일했었고 유나와 같은 항공사에서 부기장으로 일했던 영훈과 그의 아내 혜진이 얽혀 있다. 정근이 출장을 갔던 과거 어느 날, 영훈은 정근에게 앙심을 품고 현장학습길에 데려다주려 했던 유나를 납치한다. 유나를 혜진과 자신이 살던 기숙사로 데려간 영훈은 3일 동안 유나, 유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아팠던 혜진과 함께 보낸다. 유나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이 영훈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그 이유에는 아빠가 있다고 짐작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땐 엄마에게 그저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유나로 하여금 현실을 깨닫게 한 첫 사건이자 더 이상 불합리한 사회의 방관자로 존재하지 않겠다고 첫 발을 대딛게 한 사건인 셈이다. 이후 유나는 줄곧 사회 저항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자신을 비도덕한 소문의 주인공으로 몰아간 항공사 엑스맨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음을 알게 된 후 자살을 택한다. 친구의 배신이 유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온전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유나가 변치 않는 사회 구조를 지켜보며 무기력을 느꼈을 배경에는 분명 회사의 엑스맨 제도가 유나에게 준 압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유나를 유부남 부기장과 불륜을 저지르는 승무원으로 몰아가고 상처 입혔던 B항공사의 엑스맨 제도와, 과거 내부고발자 윤대령을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정근 부대의 방산 비리는 대응된다. 또한 노조 일원으로서 피해자의 위치에 선 운전병이자 부기장 영훈과, 그런 영훈을 도왔던 유나도 세대를 넘어 대응되는 모습을 가진다. 방산 비리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적은 없지만 침묵한 사람 중 한 명이었고 혜진이 유산하던 날 명목상의 이유로 영훈을 붙잡아두고 무시를 일삼았던 정근은 가해자의 위치에 섰던 사람이다. 그런 정근이 딸 유나가 남겨놓은 기록을 더 파헤져보리라 결심하는 엔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물림되는 사회의 악력 차를 끊어보리라 저항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정근을 응원하고 싶은 한편 씁쓸하게 지켜보게 되기도 한다.

정근은 실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상황을 견뎠다. 유나가 죽었다. 유나의 친구들이었다. 지숙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나보다 유나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유나에 관해 자격이 없다.
화내고 싶은 충동을 참게 해 준 유일한 이유였다.

아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상처를 주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상처를 줄 수조차 없죠.

아저씨, 당연하다고 했잖아요. 노동자로서 싸우는 건. 어떤 거대한 이상도 없는 거라고. 노동자는 신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고.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더 나빠지니까 살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라고. 이제 나는 아저씨의 본의도 모르겠어요. 아저씨가 기장이 될 수 없었던 까닭도 본인의 능력 부족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왜 모두를 위해 앞장서서 싸우는 건지. 아저씨는 회사가 사원에게 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몰라요. 아저씨가 노조 간부이며 내가 그런 아저씨와 어울려 지낸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를 더러운 사람들로 얼마든지 몰아갈 수 있다는 걸 아저씨는 몰랐어요. 꾸며 내지 않은 진짜로 일어났던 비극을 이용해서, 하나의 허름한 인생과 그 사람의 진심을 이용해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10년간 꼼짝없이 경비실에 앉아 ‘KF-16 태스크포스 출범 기념‘이란 글자를 강제로 응시해야 헸던 날들을 갚아 나가듯 유나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근은 다짐했다. 오래전 운전병이었던 부기장과 그 부인을 만나 사죄하는 일도 유나가 원한 것일 터였다. 정근은 선뜻 병실을 찾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짐작이라도 한 듯 다가오는 영훈을 보며 다짐했다. 옛날의 자신으로 물러서지 않겠다고. 그러는 와중에도 정근은 유나를 때리던 날 쓰러져 있는 지숙의 곁에서 유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 저주에 가까웠을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