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글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삼풍과 세월호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그렇다고 허무하거나 무른 모습이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계속 보고 싶습니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겨둘 문장]
5P
나도 안다. 잘 안다.
타인의 불행과 내 불행은 철저히 별개라는 것을.
하지만 또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6P
‘아니, 무슨 수로 내 마음을 알아? 뭘 어떻게 알아?’
그래서 꽤 오래도록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고,
세상이 모르면 없던 일이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27P
올해 일흔을 넘긴 우리 이모는 어려서 친구들이 다들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자기 혼자 막내 외삼촌을 등에 업고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눈물 훔쳤던 이야기를 하면서 여태 운다.
지금까지 나한테 열 번도 더 이야기했는데도 말할 때마다 매번 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상처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어떤 슬픔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덧나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한다.
55P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
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 들여. 깊이 고민하지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든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P57
“마음 굳세게 먹어. 약에 의지해서 좋을 것 없어. 운동을 해. 그러면 좋아질 거야.”
물론 저렇게 해서 좋아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니다. 입장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이가 아프면 마음 굳세게 먹고 약에 의지하지 않고 운동해서 해결할 것인가?
해서 가끔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내 찢어진 영혼을 충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91P
“안 그래도 우리끼리 그랬어. 어째서 애들이 선민 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애들이 어지간해서 낯선 사람을 잘 안 따르거든.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도 선민 씨도 이 세상에 배신을 당한 거잖아. 그리고 그걸 서로 알아본거야.”
91P
누군가 내게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만큼 오래 아팠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그렇다.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나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95년 6월 29일 이후로 내 세계관은 완벽하게 뒤바뀌었다고,
그런 이유에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해도 나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이런 슬픈 역사는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94P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의 비극을 보면 상대적으로 내 인생이 좀 평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며 위로받는다고 해서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라고 쓰는 글이다. 정말이다.
99P
요즘도 가끔 지하철을 타면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보통 사람들을, 순하고 무해한 그들의 표정을 본다.
보편적인 가정을 이루고 다정하게 사는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꿈을 꾸며 무슨 생각을 할지 미루어 짐작해본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권태롭고 지루한 일상이 부럽다.
103P
그 조그만 애가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젤리 아니야”라며 울먹였다.
해서 곁에 앉아 “그럼 뭐 줄까?” 물었더니 “안아줘”라는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얼음장처럼 차가운 놀이방에서 작은 항아리 단지만 한 아이를 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맞다. 아이 말이 맞다. 젤리가 아니다. 사랑이다.
109P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 사실 여태 시험 볼 때마다 커닝했어. 시험을 잘 보고 싶었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고, 점수를 잘 못 받으면 집에 가서 아빠한테 맞아.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잘못한 거 알아. 앞으로 안 그럴게.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놀자.”
친구는 자리에서 돌아앉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우리한테 매 맞은 등을 보여주었다.
113P
생각해보라. 이 일로 내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유명해진다고 치자. 그로 인해 무엇을 얻겠는가.
또 만약에 이것으로 무언가 얻는다 치자. 그게 돈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다.
그야 말로 같잖다. 불행과 맞바꾸는 게 또 다시 그깟 돈이라니, 불행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팔아 결국 돈 몇 푼을 번다니,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아 하는 일이 고작 이거라니.
155P
“별일 없겠지?”
저간의 사정을 듣고 보니,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여태 모르고 살던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어지간하면 타인의 불행을 우습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오로지 내 상처만 들여다보고 사느라 몰랐는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이유도 저마다의 각기 다른 얼굴만큼 다양했다. 어떤 날에는 내가 하는 말들은 어린애 투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해서 이날 이후로 가급적 나는 남의 일에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156P
‘안 다는 것, 특히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이지 큰일 날 일이구나.’
180P
또 이 무렵부터 정신 사납던 대인관계도 단박에 정리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피가 섞였건 아니건, 알고 지낸 지 얼마가 되었건, 그간 내 쪽에서 참고 만나던 관계들을 전부 정리했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던 나를 버리고,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어 하는 나를 선택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언제든 웃으며 만나고 손 흔들며 헤어질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웠다.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일, 새로운 모임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극적으로 했다.
183P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212P
별 생각 없이 화장실에 가다가 우연히 비보를 접한 엄마를 마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사람이 너무 슬프면 짐승처럼 우는구나’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울음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235P
“한 사람이라도 제 글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피를 내서라도 써야지요.”
진심이었으며, 진심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으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내내 많은 사람이 물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치유가 되었느냐고.
글쎄. 모르겠다.
이 질문은 늘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치유라기에는 글 쓰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괜찮겠지’하고 시작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잊고 살 때는 몰랐는데, 기억하려 드니 그날의 기억이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덥고 습하던 날씨, 사고 직후의 먼지 내음과 피비린내, 매캐한 연기끼ㅏ지.
나는 여태 무엇 하나 제대로 잊은 게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 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선의를 느꼈으니,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좋았다 나빴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238P
또 감히 유가족 분들에게 이런 말도 건네고 싶다.
더는 죄인처럼 살지 마시라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그러니 남들처럼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가시라고.
더 큰 죄를 짓고도 잘들 사는데
자식 앞세운 게 무슨 죄라고 소리내어 웃지도 못하냐고.
지금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라고.
‘자식새끼 목숨 값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속 편하게 산다’는 소리 들으시라고.
뭐 어떠냐고.
그런 말하는 사람들이 당신들 마음 알아주기나 할 것 같으냐고.
그러니 ‘세상아, 나를 좀 봐라. 살아남았으니 이렇게 산다’하고 외치시라고.
나 역시 그럴테니 당신들도 그러시라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억지로라도 우리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자고.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241P
슬픔이라는 감정은 초겨울 새벽 강가에 가볍게 맺히는 살엄음 같아서,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글로 옮겨오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243P
이 때 깨달았다.
‘나 역시 우리 수녀님처럼 앞으로 내 앞에서 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음믈 그냥 알아주기만 해도 되겠구나.
그냥 이렇게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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