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1995년 6월말, 대학교 1학년을 마친 후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7월 6일 입영일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친한 친구와 함께 당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삐삐가 울렸습니다.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이 당구를 치던 친구도,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들 웅성거립니다.

‘집이네? 이 시간에 무슨일이지?’

모든 사람들이 게임을 중단하고 카운터에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다 집으로 전화하는 것 같은데....?’

그 때 TV에 커다란 자막이 보였습니다.

​

[속보. 삼풍백화점 붕괴]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 그 시간의 풍경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 날 그 당구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안위를 조급히 탐색하던 삐삐의 울림,

6시가 좀 넘어선 시간, 2층에 있던 당구장 밖으로 흔들리던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

그 사이로 보이는 건너편 커피숖, 노을이 지기 전 햇볕이 누렇게 보이는 시간

그리고, 그 날의 온도와 냄새까지.

그리고, 16년 4월 16일 월요일, 오전

본사 강의실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월간 모임을 하고 있을 때,

곁에 있던 후배와 함께 몰래 스마트폰을 켜고,

‘다행이네 다 구출됐다네요’라며 안도하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저자의 글밥은 여름날 시골 부엌,

미지근한 열이 남은 아궁이 한켠에

학교를 마치고 빈집에 들어설 큰 아이를 위해

엄마가 모셔 둔 찬 보리밥 같습니다.

볼품없고 초라하지만, 시원한 보리차에 훌훌 말아 김치 한 조각과

입 안으로 흘려보내고 나면

뱃 속에선 차가운 것들이 꾸르륵 거리는 묘한 포만감과

끼니를 적당히 잘 떼우고 다시 책상 앞으로,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생깁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 글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피를 내서라도 써야지요.”

진심이었으며, 진심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으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내내 많은 사람이 물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치유가 되었느냐고.

글쎄. 모르겠다.

이 질문은 늘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치유라기에는 글 쓰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괜찮겠지’하고 시작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잊고 살 때는 몰랐는데, 기억하려 드니 그날의 기억이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덥고 습하던 날씨, 사고 직후의 먼지 내음과 피비린내, 매캐한 연기까지.

나는 여태 무엇 하나 제대로 잊은 게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 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선의를 느꼈으니,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좋았다 나빴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

참사를 그저 주변인으로, 멀리서 한 줄 짜리 속보로 알게 된 저의 기억도 이렇게 선명합니다.

18년 4월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으로 읽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509310045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글이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속에서 살아나 마치 조용히 숨죽이듯 살다가 피를 토하듯 이야기하는 글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습니다.

그 글을 쓴 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 ‘산만언니’입니다.

그 글을 쓴 이후 편집자의 설득으로 딴지일보에 연재를 시작했고,

2년 만에 이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저자는 재수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 발생한 사고에서 살아남아

기억조차 희미하게 건너뛰어 버린 20대를 끝내고, 사고 발생 10년이 지나 PTSD가 터져나와 버렸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돌아가 손목을 긋고, 모아 둔 수면제를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가 실패한 자살시도만 세 번.

운 좋게 한 곳에서 20년이나 직장생활을 했지만, 그만두고 지금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의 저자는 아직 미혼인 여성으로, 여전히 심리상담을 해주는 정신과 의사가 가장 속편한 이야기 친구이고, 우울증 치료제를 비타민처럼 챙겨먹어야 하루가 편안함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저 일독을 권합니다.

찬란히 피어오르기 시작한 스무살부터 중년까지, 25년이 넘는 청춘을 꼬깃꼬깃 버리고 이제야 조금은 마음을 추슬러서 달관한 사람마냥 보일지도 모릅니다.

처참한 서사도 없으며, 처절한 절망이나 어색한 애도도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아무런 규칙이나 전조, 예고도 없이 눈 앞에서 수백 명의 사람의 생사가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을 보고 지독한 염세주의가 온 몸의 피를 시퍼런 색깔로 바꾸어 버린 것 같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찾아보았습니다.



​

저자의 글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삼풍과 세월호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과욕을 부리지 않고,

그렇다고 허무하거나 무른 모습이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계속 보고 싶습니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남겨둘 문장]

5P

나도 안다. 잘 안다.

타인의 불행과 내 불행은 철저히 별개라는 것을.

하지만 또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타인의 고통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6P

‘아니, 무슨 수로 내 마음을 알아? 뭘 어떻게 알아?’

그래서 꽤 오래도록 그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고,

세상이 모르면 없던 일이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27P

올해 일흔을 넘긴 우리 이모는 어려서 친구들이 다들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자기 혼자 막내 외삼촌을 등에 업고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눈물 훔쳤던 이야기를 하면서 여태 운다.

지금까지 나한테 열 번도 더 이야기했는데도 말할 때마다 매번 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상처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어떤 슬픔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덧나고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한다.

55P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

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서사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마.

그냥 바람이 불고 비가 오듯, 어떤 일들은 이유없이 일어나.

우리네 인생도 그래. 이해하려 애쓰지 마.

그냥 받아 들여. 깊이 고민하지마. 그리고 명심해.

네가 살아가는 동안 겪는 그 모든 일든은 전부 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잊지 마. 시작된 모든 일에는 끝이 있어.“

P57

“마음 굳세게 먹어. 약에 의지해서 좋을 것 없어. 운동을 해. 그러면 좋아질 거야.”

물론 저렇게 해서 좋아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니다. 입장 바꾸어서 생각해 보자.

이가 아프면 마음 굳세게 먹고 약에 의지하지 않고 운동해서 해결할 것인가?

해서 가끔 생각한다.

어째서 사람들은 내 찢어진 영혼을 충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91P

“안 그래도 우리끼리 그랬어. 어째서 애들이 선민 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야. 애들이 어지간해서 낯선 사람을 잘 안 따르거든. 이제야 알겠다. 아이들도 선민 씨도 이 세상에 배신을 당한 거잖아. 그리고 그걸 서로 알아본거야.”

91P

누군가 내게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만큼 오래 아팠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그렇다.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나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95년 6월 29일 이후로 내 세계관은 완벽하게 뒤바뀌었다고,

그런 이유에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해도 나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이런 슬픈 역사는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94P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의 비극을 보면 상대적으로 내 인생이 좀 평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며 위로받는다고 해서 나한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라고 쓰는 글이다. 정말이다.

99P

요즘도 가끔 지하철을 타면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본다. 아무 일도 겪지 않은 보통 사람들을, 순하고 무해한 그들의 표정을 본다.

보편적인 가정을 이루고 다정하게 사는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꿈을 꾸며 무슨 생각을 할지 미루어 짐작해본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권태롭고 지루한 일상이 부럽다.

103P

그 조그만 애가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젤리 아니야”라며 울먹였다.

해서 곁에 앉아 “그럼 뭐 줄까?” 물었더니 “안아줘”라는 아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 얼음장처럼 차가운 놀이방에서 작은 항아리 단지만 한 아이를 안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맞다. 아이 말이 맞다. 젤리가 아니다. 사랑이다.

109P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 사실 여태 시험 볼 때마다 커닝했어. 시험을 잘 보고 싶었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고, 점수를 잘 못 받으면 집에 가서 아빠한테 맞아.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잘못한 거 알아. 앞으로 안 그럴게. 그러니까 이제 나랑 같이 놀자.”

친구는 자리에서 돌아앉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걷어 올려 우리한테 매 맞은 등을 보여주었다.

113P

생각해보라. 이 일로 내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유명해진다고 치자. 그로 인해 무엇을 얻겠는가.

또 만약에 이것으로 무언가 얻는다 치자. 그게 돈이라고 해도 달갑지 않다.

그야 말로 같잖다. 불행과 맞바꾸는 게 또 다시 그깟 돈이라니, 불행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팔아 결국 돈 몇 푼을 번다니,

그렇게 힘들게 살아남아 하는 일이 고작 이거라니.

155P

“별일 없겠지?”

저간의 사정을 듣고 보니,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여태 모르고 살던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내가 어지간하면 타인의 불행을 우습게 여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만 해도 오로지 내 상처만 들여다보고 사느라 몰랐는데,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었다.

이유도 저마다의 각기 다른 얼굴만큼 다양했다. 어떤 날에는 내가 하는 말들은 어린애 투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해서 이날 이후로 가급적 나는 남의 일에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156P

‘안 다는 것, 특히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이지 큰일 날 일이구나.’

180P

또 이 무렵부터 정신 사납던 대인관계도 단박에 정리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피가 섞였건 아니건, 알고 지낸 지 얼마가 되었건, 그간 내 쪽에서 참고 만나던 관계들을 전부 정리했다. 말하자면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던 나를 버리고, 관계가 주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싶어 하는 나를 선택한 것이다. 대신 그 자리는 언제든 웃으며 만나고 손 흔들며 헤어질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웠다. 전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일, 새로운 모임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극적으로 했다.

183P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212P

별 생각 없이 화장실에 가다가 우연히 비보를 접한 엄마를 마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사람이 너무 슬프면 짐승처럼 우는구나’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울음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235P

“한 사람이라도 제 글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피를 내서라도 써야지요.”

진심이었으며, 진심이다.

나는 그 일에 대해 말할 수 있으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내내 많은 사람이 물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치유가 되었느냐고.

글쎄. 모르겠다.

이 질문은 늘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치유라기에는 글 쓰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괜찮겠지’하고 시작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잊고 살 때는 몰랐는데, 기억하려 드니 그날의 기억이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덥고 습하던 날씨, 사고 직후의 먼지 내음과 피비린내, 매캐한 연기끼ㅏ지.

나는 여태 무엇 하나 제대로 잊은 게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그 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위로와 선의를 느꼈으니,

그 일에 대해 여전히 좋았다 나빴다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238P

또 감히 유가족 분들에게 이런 말도 건네고 싶다.

더는 죄인처럼 살지 마시라고.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그러니 남들처럼 소리내어 웃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가시라고.

더 큰 죄를 짓고도 잘들 사는데

자식 앞세운 게 무슨 죄라고 소리내어 웃지도 못하냐고.

지금보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말하라고.

‘자식새끼 목숨 값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속 편하게 산다’는 소리 들으시라고.

뭐 어떠냐고.

그런 말하는 사람들이 당신들 마음 알아주기나 할 것 같으냐고.

그러니 ‘세상아, 나를 좀 봐라. 살아남았으니 이렇게 산다’하고 외치시라고.

나 역시 그럴테니 당신들도 그러시라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억지로라도 우리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자고.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241P

슬픔이라는 감정은 초겨울 새벽 강가에 가볍게 맺히는 살엄음 같아서,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글로 옮겨오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243P

이 때 깨달았다.

‘나 역시 우리 수녀님처럼 앞으로 내 앞에서 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마음믈 그냥 알아주기만 해도 되겠구나.

그냥 이렇게 마음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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