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
이유리.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를 읽고 한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가 진보예술 교양도서의 20세기 버전이라면,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은 그 21세기 버전이다.

표지부터,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모습과 작품들이 풍성한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사실, 기회가 되면 나도 이런 책을 써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늦었군" 하는 안타까움이 살짝 스치기도 했다. 그만큼 맞춤하게 반갑고 반가운 책이었다.

일단, 저자들의 면모를 보면 소위 예술계의 전문가 층이 아니다. 작가와 작품들을 안내할만한 지식은 있되, 무언가 빈틈을 노리고 해부해야 한다는 식의 사명감은 없어보인다. 마음으로 작품을 이야기 하는 이들의 시선 덕분에 책은 한결 부드럽고 친절하다. 게다가 책읽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어려운 말표현도 없다. 그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듣는 것처럼, TV  속 문화산책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책 속 작품들로 빠져들게 하는 따뜻한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찰리 채플린의 영상들을 찾아서 보고, 밥 말리의 노래를 찾아 듣고, 핑크플로이드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았고, 뱅크시의 홈페이지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쿠르베가 살던 시대를 다시 찾아 보았고,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찾아 들었으며, 인상 찡그리며 들었던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도 여유롭게 다시 들었다.

자신만만하고 당당하게 출산 후의 모습을 그리던 쉬잔 발라동이 씩씩한 여성주의 작가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르느와르의 초상에 등장하던 직업모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레게 머리와 마리화나가 자메이카 민족의 문화적인 의식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으며, 쿠르베가 말년에 예술적인 혁명성을 잃고 풍경화를 그리며 보냈다는 것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예술은 세상을 보는 눈과 가슴을 주는 것이라 여기는 내게, 이 책의 예술가들과 작품들은 더욱 소중하고 풍부한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정성과 수고가 그득한 책이다. 군더더기 없이 알맹이로 채우고도 체온을 잃지 않는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책 본문 중에서>

   
  도미에는 말했다. "만화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질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을 추구하면서 고뇌에 허덕이는 인간의 압박된 정신에, 별안간 나타난 통풍구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본문 35쪽 -  
   

   
 
20세기 실랄한 풍자만화가, 게오르게 그로츠  / "나에게는 이른바 위대한 미술이라고 하는 것은 무용하다. 호가스나 도미에 같은 사상적인 그림만이 나의 흥미를 끈다"고 말하며 예리한 풍자화에 대해서만 미술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을 진실주의자라고 불렀다.
"진실주의자는 동시대 사람들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보게 한다. 내가 유화나 판화를 그린 것은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서고 나의 작업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세계가 추악하고 병들었으며 거짓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 본문 33족 -
 
   


케테 콜비츠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틀리에 예술은 실패한 예술이다. 일반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 관객을 위한 예술이 평이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소박하고 참된 예술을 알아본다는 것이다."  
   


   
  마이크 곤살레스에 따르면 "모든 혁명은 자신의 예술가를 갖는다." 혁명은 자신의 과정을 역사로 기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혁명의 대의에 공감한 예술가들은 혁명의 이상을 포스터와 혁명적 그래피티 등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소개해왔다. 멕시코 혁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멕시코 혁명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1886~1957)를 자신의 예술가로 선택했다. -본문 117쪽-  
   


   
  멕시코 혁명이 무엇이었던가. 라틴 아메리카 출신 백인 지배자에 대항하여 인디오와 메스티소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일어난 저항의 움직임이었다. 멕시코 혁명은 인디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인디오 전통부흥운동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전통적인 원주민문화에 기초한 새로운 민중예술을 구현해야 한다는 바람으로 나타났다. 예술도 민중의 것, 민중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 본문 119쪽 -  
   


   
  음악으로써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 - 밥 말리 Bob Marley -  
   


   
  최병수 작가는 그의 그림 <장산곶매>를 볼 때마다 "나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내가 죽을 곳은 어디일까" 가늠해 보곤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의 길이 어디에서 끝날지를 생각해본다고 한다. "혁명의 정상을 밟아보고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간 어디쯤 쓰러지겠지. 그렇다고 패배할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라며. 왜냐하면 "변혁의 과정 어디쯤에서 멈추었다고 실패한 거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는 아니 자본주의는 엄청난 물질과 문명을 축적해놓고 있지. 그것을 향해 내가 정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개인적으로 보면 미술의 역할이란 아주 미미하잖아. 나는 이 사회의 이 문명이 저질러놓은 현상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어. 그게 투쟁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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