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도시 그 깊은 이야기 - 역사도시, 이희수 교수의 세계 도시 견문록
이희수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다.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계를 여행하다니. 그러나 드문 사람이다. 소위 문명의 중심, 세계 패권과 힘의 중심의 나라에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주목하지 않는 세계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말이다. 

대서양 시대를 연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칼 _ 리스본 /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의 무대,  에스파냐 _ 그라나다 /
중세아프리카 이슬람의 자존심, 모로코_ 페스 /
클레오파트라와 피로스 등대의 도시, 이집트 _ 알렉산드리아 /
기독교를 끌어안은 최초의 이슬람 수도, 시리아 _다마스커스 /
난공불락의 암벽도시, 요르단 _ 페트라 /
셀주크 투르크의 수도, 이슬람 수피의 고향, 터키 _코냐 /
세상의 절반을 품은 도시, 이란 _이스파한  /
뜨거운 혁명의 도시, 러시아 _상트페테르부르크 /
교황 바오로 2세의 고향과 아우슈비치의 슬픈 역사, 폴란드_크라코프 /
발트 해안에 깃든 우랄문화의 숨결 애스토니아 _탈린 /
칭기즈 칸의 말발굽으로 다져진 몽골의 수도, 몽골 _울란바토르 /
티무르가 남긴 찬연한 문화유산, 우즈베키스탄 _사마르칸트 /
블랙과 이슬람이 만나는 아프리카 인도양의 진주, 탄자니아 _잔지바르 /
유카탄 반도에서 되살아난 마야 문명의 금자탑, 멕시코 _ 치첸이트사 /
신비로운 잉카 제국의 숨결, 페루 _ 쿠스코 / 

<시간이 머무는 도시>에서 담고 있는 도시들의 목록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이 나라와 도시들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가물가물했다. 지도에서 찾아 보았다. 지도를 놓고 찾는데 단박에 찾아지지 않았다.  깊은 역사를 감추고 있는 도시들이며,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과 정신을 낳은 도시들이지만 이름들을 찾아 보기 힘든 도시들도 있다.

기원전 수십 세기 전에 거대한 도시를 일구기도 하고, 현대의 천문학보다 더 정교한 발전을 15세기 이전에 이룬 나라들이 있건만, 현재 그들의 자취는 지도에 표기된 만큼이나 희미하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이상 사회의 꿈과 그들이 실현하려 했던 삶의 방식은 저자의 성찰을 담아 <시간이 머무는 도시>를 통해 인상 깊게 전해진다. 역사는 현재를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다가서는 희망의 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기를 넘기며 교류하고 단절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하고 명멸한 흔적만 남기고 자취를 찾기 힘들기도 하지만, <시간이 머무는 도시>들은 현재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룰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시간이 머무는 도시>는 여행지의 사진을 곁들였다. 허나 그 사진은 눈으로 보고 싶은 장면을 담기에 부족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이다. 책 한 권에 담아내기에 열 여섯 곳이나 되는 도시들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고 너무도 많은 곳을 보여 주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펼쳐 놓고도 상상 속 여행을 해야만 했다. 지식이 짧아 상상 속에 펼쳐지는 장면은 모자이크 같거나 앙상한 줄기를 닮아 있었다. ㅠ ㅠ

그럼에도, 책 속에서 만난 몇 몇 장면들은 아주 인상 깊게 남는다.
시리아 정교회에서 만난 하얀 히잡을 쓴 소녀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왜 이슬람 교도들의 히잡을 쓰고 있는가 묻는 저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지만, 우리는 똑같은 아랍 인이고 시리안 인이다. 나의 모국어는 아랍 어이고 나의 조국은 시리아다. 무슬림은 나의 형제이고 나의 이웃이다. 그래서 정숙을 상징하는 이슬람의 히잡은 나에게도 정숙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 주류 기독교가 가진 배타성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위의 지도에 보는데로 오랜 세월에 거쳐 찬란한 문화를 일구었던 이들 도시들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곳이며 나라와 나라가 만나는 곳이었으며,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이었다. 서로 다른 민족과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인류에게 의미 깊은 역사를 일구었다는 얘기다. 물론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침략과 약탈의 역사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것은 더 나은 것으로 발전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칭기스 칸이 만들었다는 법전 <야사 Yasa>에 담긴 내용은 전 세계에 걸친 대제국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엿보게 한다.
   
  "어떤 민족이든 간에 학식 있고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라. 모든 종교를 존중하며 어느 것에도 편중됨이 없도록 하라."  
   


다른 나라의 예술사나 전통 예술을 볼 때면 우리 나라에 새겨진 중국, 일본, 미국의 지배와 문화의 이식이 뭉개 놓은 우리 전통 문화가 떠올라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지배하고 부수고,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열고, 포용하고 교류하는 것이었다면 하는 아쉬움 지울 수 없다. 지금은 흔적이 흐릿해진 역사 속 도시들에서도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이다. 아우슈비츠의 슬픈 역사를 담은 폴란드의 크라코프에서도 그 그림자를 보았고, 멕시코의 치첸이트사에서도 보았으며, 페루의 쿠스코에서도 보았고, 터키의 코냐에서도 탄자니아 잔지바르에서도 보았다.

허나 여전히 그 도시를 역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아름다운 세계들이 어우러지는 꿈을 꿔본다. 단일한 화폐나 단일한 경제시스템이나 패권을 장악할 군사력이나 세계를 석권할 독점적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이룬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열린 눈으로 서로를 대하는 세계를 말이다.

c.f> 돋보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극장에 대한 인상을 하나 덧 붙인다.
   
  "네바 강에 어둠이 찾아오면 겨울 궁전은 불을 밝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을 극장을 찾는다. 오페라나 연극은 물론 서커스를 공연하는 극장 앞에서도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처럼 1년 내내 공연장은 자리를 잡기 어려울 만큼 관객들로 가득 찬다. 옛 소련의 화려함은 사라진 지 오래인 지금, 생활고에 시달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어쩌면 예술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술은 창조의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삶의 호흡이다. 예술은 화려한 장식이라기보다 삶의 일부인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러시아의 미술관과 극장, 도서관의 문턱은 어느 나라보다 낮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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