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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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이런 생각을 했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있지? 나라에서 돈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돼잖아?" 이 의문에 적절한 답을 얻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돈이라는 것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진정한 가치는 땀흘려 수고했을 때, 얻는 것’이라는 이야기에 ’나눠주는 것’에 대해 일정하게 포기했나 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돈이든, 땀흘려 얻은 대가로서의 돈이는 그 말에는 늘 가치가 섞여 있었다. 허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세계경제의 투기금융화의 다양한 폐해들 속에서 돈은 이미 어릴적 기억에 등장하는 ’가치’들과는 멀어지고 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달러>는 '나라'가 돈을 찍어낼 힘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서 출발한다. 조폐권을 둘러싼 외국의 금융과 정부간의 길고 긴 싸움을 역사적인 사건들을 예로 들어 상세히 다룬다. 어릴적 품었던 희미한 의문을 속시원히 풀어준 셈이다.
아울러, ’돈’이 왜 가치에서 이탈하게 되었는지를 ’달러’의 태생과 역사,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고나서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과도한 유동성을 얻어 증권, 금융화 되고나서 어떤 행보를 걸어왔는지를 두루 이야기 한다. 역사 속 다양한 실례들과, 금융시장의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정치나 법과 관련한 이야기, NAFTA나 WTO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실증적인 사례와 함께 싣고 있다.

신자유주의화 된 세계경제의 매개자인 ’달러’의 행보를 쫓아가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총체적으로 만나게 된다. 미국 국가주의의 시각을 갖고 있는 저자의 시각이 약간 거슬리는 점도 있지만, 달러의 태생지며, 주된 활약처인 미국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저자의 시선이 <달러>의 웅변력을 한층 높여준다.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동화로만 알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를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작은 성과이다. 미국이 영국의 금융세력으로부터 국가화폐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때에 태어난 <오즈의 마법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완본을 구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달러>가 가진 설득력을 배가시키고, 두꺼운 책이지만 몰입하게 만드는 데는 무엇보다 빼어난 번역의 힘이 큰 작용을 했다. 언론의 경제면을 보는 것보다 더 읽기 쉽도록 경제용어를 맞춤한 우리말로 풀어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어느 용어사전을 찾아본다고 해도 이렇게 친절한 해석은 만나기 어려울 듯 하다.

<달러>는 금융투기화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갖는 문제를 다양한 예시를 들어 지적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 속에 있었던 다양한 긍정적인 실험들과 현재, 세계의 나라와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는 달러의 빚거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걷는 사례들을 조명한다. 아직은 ’대안의 가능성’인 것들이지만, ’달러’의 고향인 미국의 경제마저 ’빚거미’의 포획에 녹아나고 있는 현재를 비추어 본다면 많은 희망의 요소를 전한다.

수많은 나라들을 실패의 늪으로 빠뜨린 변동환율제를 비롯해서, 자본시장 통합법의 발표, 각종 규제의 철회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말레이시아와 인도, 중국의 행보들을 비추어 보고, 짐바브웨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비추어 보는 것도 값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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