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에곤 실레. 그의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인물의 강렬한 시선에 빠져들고 만다. 온몸이 강한 떨림에 휩싸인 듯한 몸의 선과, 강조된 손의 표정과 옷을 벗는 것으로 모자라 마치 피부를 거둬내서 내면에 꿈틀거리는 것들을 그대로 쏟아내는 듯한 몸들은 선명한 촉감을 전한다. 아름답거나 고운 것과는 거리가 먼, 거칠거칠한 수세미로 몸을 긁어대는 듯한 정체모를 불편함이 그의 그림에 눈을 잡아둔다. 왜 그는 이런 불편한 그림들을 그렸을까? 그게 궁금했다.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은 짧은 생애에 실레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 실레만이 구축할 수 있었던 예쑬세계를 꼼꼼히 짚어낸다.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에곤실레에게 그림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구성요소였고, 삶의 가장 중심에 있었으며, 그림이 한 복판에 깃든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었다. 에곤 실레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은 그림이었고, 에곤 실레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혔던 삶의 현장도 그림에 있었다. 


1. ' 새로운 예술가'

히틀러가 그렇게도 들어가고 싶어했던 독일 최고의 미술 교육기관, 미술아카데미. 17살의 어린 나이에 추천을 받아 입학한 에곤 실레에게 미술 아카데미는 오로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반가운 곳이었다. 그림 외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틀진 규율에 적응하지 못했던 실레가 뛰쳐나올 수밖에 없던 학교와 달리 미술아카데미는 그림으로 말하는 자신을 알아주는 소중한 곳이었다.
그러나 기대를 품고 들어간 아카데미는 실레의 바램과 달랐다. 그리스 조각의 아름다움을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가치 있게 여기고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시대의 현실에 등을 돌린 미술 아카데미와 실레는 화합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는 시대의 현실에 등을 돌렸고, 시대의 현실을 세밀하게 보려한 에곤실레는 아카데미에 늘 엇서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교수로부터 "자네는 악마가 내 교실로 보낸 학생이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자기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듯, 실레는 그림은 누구의 방식도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따랐던 것이다. 

열아홉살이 되던 해 실레는 그리펜케를 교수의 학생들과 13항목의 아카데미 개혁요구안을 학교측에 제시한다. 허나 요구안은 거절당하고 그만두지 않으면 퇴학당할 처지가 된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결성한다. 열아홉 살의 나이에 미술 학도의 신분을 버리고 시대의 한가운데로 나가 한 사람의 화가로 우뚝선다.
아카데미에 내민 13조항 가운데 '예술 작품의 질은 꼭 미술 아카데미에 의해서만 판정되는 것인가?', '청년들이 사랑하는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전 유럽의 예술 활동을 선도하는 위치에 서고자 하는 시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가'와 같은 요구는 실레 스스로 자신의 미술에 얼마나 많은 자부심을 품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

"혜안을 가진 열 명을 포함한 천 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한 명의 천재, 한 명의 발명자, 한 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천 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라 말할 수 있는 그의 당당함이 자신만의 미술에 대한 당당함으로 발현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는 '새로운 예술가'란 제목으로 실레가 쓴 글의 일부이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시대를 향해 나아갈 운명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 모두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시대의 자식들이다. 적어도 현대로 나아가는 길을 찾아낸 자들이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예술가다. 예술가라는 표현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칭호나 특성을 지닌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사명을 짊어진 인간에 대해서다.
예술은 항상 동일한 한 가지로서, 즉 예술로서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그 어떠한 '새로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가'는 존재한다. 새로운 예술가의 습작은 언제나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습작은 살아 있는 그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 중에는 개성이 결여된 사람도 있고, 개성이 풍부한 사람도 있다. 운명적으로 사명을 짊어진 자들이란 바로 후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가는 많지 않다. 지극히 소수다. 새로운 예술가는 무조건 그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창조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매개되는 것 없이, 즉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을 이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혼자서 자신의 내부에 자기가 발판으로 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는 새로운 예술가인 것이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이름은 '새로운 예술가 그룹'이 될 수 있다.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자는 오로지 혼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완전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는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의해 독자적인 창조를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예술가가 몇 명쯤은 존재한다. 정해진 처방전은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모든 새로운 예술가는 본래 자기 혼자서, 자신을 위해서만 창조하며,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을 창조한다. 그들은 모든 형태를 창조해 내고, 모든 형태를 그려낸다. 예술가는 한 시대를, 그 삶의 일부를 나타낸다. 언제나 존재 속에서의 위대한 한 가지 체험에 의해.


2. 가라앉힐 것을 가라읹히지 않는 실레

실레에게 '성(姓)'은 한 없이 이끌리지만, 격없이 다가갈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해석대로 아버지의 병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허나 굳이 아버지의 병력이 아니었을지라도 육체적인 성의식은 분명 무언가 불편한 요소를 안고 있다. 특히 청년기의 강렬한 욕구를 늘 안고 있으나, 이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실레 역시 그랬을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실레는 충돌을 빚는 자아의 단면과,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대상을 날것 그대로 그렸다는 것이다. 
수 많은 벗은 몸을 그렸으나, 아름답다거나 매혹적이다거나, 신비롭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의 그림들을 보면 실레가 느꼈을 감정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골몰해있는 듯 하나 불안해 보이기도 하며, 긴장하는 듯 하나 몰두해 있는 실레의 여러 자화상은 저자의 지적대로 어떤 '일기' 보다도 선명하게 청년의 실레를 기록한다.
많은 사람들은 가라앉히고 정화하는 것을 오히려 흔들고, 휘저어서 내면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그대로 화폭에 토해내는 실레. 만일 그 시선이 자신의 밖으로 확장될 겨를이 그에게 있었다면 20세기 초반의 격동하는 세상을 날것 그대로 담은 생생한 기록을 만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3. 실레 그 자체인 그림

"나는 다시 그림에 몰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림이 없었다면 참아내기 힘든 상황도 이젠 견딜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겸손한 태도로 나를 굽힌 채 이 그림도구들을 위해 걸식이라도 하듯 애원했다. 만일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들 앞에서 우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오오, 예술이여! 너를 위해서라면 이 몸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고작 3일이었다. 24일간의 구류생활 중에 3일 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던 실레가 4일째 되던 날 그림도구를 받고 쓴 일기이다. 예술가에게 예술이 밥만큼이나 꼭 필요한 일상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허나 실레처럼 단 사흘만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고통을 감당하겠다고 할 예술가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는 것으로 자신을 탐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내밀한 감정까지도 새삼스레 만나가던 실레의 예술 열정을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을 통해 깊게 새긴다. 스물 일곱의 짧은 그의 삶이 너무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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