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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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문화가 지위를 말한다

십여 년 전, 한 노동조합에 위원장으로 출마하는 사람이 "우리 자녀들도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 우리 사회는 좀 호들갑을 떨었드랬다. 노동귀족이 등장한거라느니, 배들이 불렀다느니, 아직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에 노동자들이 욕심이 너무 많아졌다느니 하고 말이다. 물론, 한 편에서는 우리 경제가 그 만큼 나아진 증거니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IMF가 온 사회를 뒤짚어 엎고, 구조조정, 난리굿을 한 판 벌인 다음에는 비난의 목소리가 태산만큼이나 커졌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다느니, 밥그릇 욕심에 나라 경제를 생각지 못했다느니, 대공장 노동자들의 이기심이 문제라느니 아이들에게 바이올린 한 번 가르쳐 보겠다는 바램 같은 건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불순한 경제위기의 주범 취급을 받았더랬다.

물론, 그 시간 베벌룬의 효과를 드러내며 초고가의 호화 상품에 몰리는 소수 상층의 소비는 언론의 비난 홍수 속 작은 물방울 정도로만 다뤄졌다. 

여하튼, 시간은 흘렀다. 부자 정부, 1% 정부, 강부자 정부, 부동산 투기꾼 정부로 표현되는 새로운 정부가 키우는 거품은 현재시각에도 부풀어 오른다. 감세, 탈규제가 부른 양극화의 심화로 중간층은 지속적으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다양화 되어 있다. 경제적인 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만큼 벌여놓은 차이 속에 중층화된 계층이 미분되어 자리를 잡는다.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차이가 빚어 놓은 스펙트럼이다.

달라진 스펙트럼은 새로운 공간에 모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광장, 블로그, 트위터, 커뮤니티, 등등에서 새롭게 확인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한 곳으로만 몰리지 않는 정체성은 확장하고 확산되지만 아직 어떤 경향성을 확연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치 직조 방식이 다른 옷감이 무수한 겹을 이룬채 쌓여 있는 듯한 모습이다.

지위는 불안해도 아이덴티티는 필요하다.
오쿠다 히데오가 <오 해피데이>에서 그린 인간군상은 겹겹이 다른 층을 이룬 문화 다양성 안에 사는 미립자 같은 사람들이다. 새롭게 형성되고 사그라졌다가 부활하는 문화적인 사회. 즉, 온라인, 매니아, 인테리어, 생태 환경 등 별세계에 자신의 진지를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려는 사람들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역시 21세기 신자유주의의 인간희극을 그려내는 작가답다. 단편 소설로 구성된 <오 해피데이> 속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인물들은 촉감이 느껴지는 피부와 뼈와 근육이 느껴지는 행동을 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지금껏 오쿠다 히데오가 경제, 사회, 정치적 지위 안에 놓인 인간 군상을 그려왔다면, <오 해피데이>를 통해서는 다양한 문화 세계 안의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를 쏟아낸다.

찬 밥으로 살던 아줌마의 온라인 정체성 획득기, 서로 다른 문화에 진저리 치던 부부의 자기 문화 사수 체험기, 새롭고 도전적인 것은 긍정해야 한다면서도 경험과 습관이 된 문화적 이성으로는 용서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싸움기 등등 양상도 다양하다.

연착륙을 시도하려는 것인지, 날을 버린 것인지.

<오 해피데이>는 오쿠다 히데오의 책 답다. 가볍고 경쾌하고, 속도감 있다. 하지만 읽고 나선 조금 갸우뚱하게 된다.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날카롭고 시니컬한 필체가 부드러워졌다. 문제는 드러내지만 일일이 대립하고 달려들지 않는다. 아주 여유롭게 웃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마는 중년기를 넘기는 아저씨를 보는 것도 같다. 약간 맥이 빠진다.

오쿠다 히데오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다양한 군상들이, 해괴하고 요상한 세상에 대처하는 자세인 것인데 말이다. 물론 불협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말하다가 말고 '이쯤 하면 알겠지.' 접어버리는 듯한 투는 좀 아닌 것이다.

겹겹이 다른 세상에 미세한 공간을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을 읽어낼 줄 아는 그의 작가적 날카로움이 세월에 깎이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된다. 그의 다음 작품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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