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10 - 화적편 4 홍명희의 임꺽정 10
홍명희 지음 / 사계절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을 끝냈습니다. 소설책 10권 읽기가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별 일처럼 읽었습니다. 중간에 다른 책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7권 들어서부터는 곧 끝나게 될 걸 아쉬워하면서 아껴 읽었습니다.

미완인 걸 알고 시작한 읽기지만, 막상 끝장을 대하니 아쉬움이 더욱 물컹 밀려듭니다.

<임꺽정>은 작가 홍명희가 10년에 걸쳐서 써내려간 소설이며, 일제시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입니다. 소설을 쓰며 한 차례의 구속과, 한 차례의 신문 폐간으로 공식적으로 두 번 중단이 되었답니다. 이렇게 불온한 소설을 일제시대에 써내려간 작가의 긴 노정을 상상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임꺽정> 읽기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박재동 화백의 삽화가 실린 최근 개정판으로 읽고 싶었지만 여건이 닿지 않아서, 9책에서 10책으로 개정되었던 사계절 개정신판으로 읽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박재동 화백의 삽화가 실린 책으로 한번 더 읽고 싶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한자말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읽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서산대사>를 읽을 때도, 고문(古文)을 읽는 것 같아 어려웠는데, 문체로 보면 임꺽정은 조금 더합니다. 물론, 임꺽정과 그의 결의형제들인 두령이 나오는 질펀한 삶의 우여곡절 속에는 한자나 한자말들이 등장할 일이 별로 없어 좋지만, 양반들만 나왔다 하면 말의 절반 정도가 남의 나라 말로 보여 읽는 눈이 금방 뻑뻑해지곤 했습니다.

작가 홍명희 선생님을 생각해봅니다.

이광수, 최남선과 비교하여 천재로 꼽혔던 작가라고 합니다. 이광수와는 절은시절 무척 가까운 사이로 지냈던 모양입니다. 젊은시절에는 오스카와일드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심미주의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었다고 하며, 사실주의적인 문학예술관을 갖게 된 것은 3.1운동 후라고 합니다.

"좋다! 그러면 이른바 신흥문학은 유산계급문학에 대항한 문학일 것이며, 생활을 떠난 문예에 대항한 생활의 문학일 것이며, 구계급에 대항한 신흥계급의 사회변혁의 문학일 것이다. 그러면, 플롤레타리아 문예는 즉 신흥문예의 별명이 아닌가. 그리하야 지금 신흥문예는 조선의 문예계에 있어서 새로운 기운을 진작하고 있다. ... " 이 글은 1925년 카프가 발행하던 문예운동에 실린 글이랍니다.

하지만, 최남선이 소년이나 청춘을 발간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일 때도, 이광수가 무정을 발표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 때도 홍명희는 작품으로 자신의 문예관을 드러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이광수가 '무정'을 발표할 때, 싱가포르 등지를 여행하던 홍명희는 이광수의 작품을 "'무정'을 보았으나 신통치 않다."는 의견을 내어 신흥문학에 대한 견해가 이광수와는 다른 것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탐미주의에 대한 심취, 무산계급에 이해 주도되는 신흥문예, 사실주의적인 문예를 주창하던 작가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은 '가운데 길', '제3의 길'로 평가됩니다. 카프의 성향과는 다른 소설인 셈입니다. 문체에 있어서도, 중국이나 서구의 것과는 다른 우리 민족의 말 글과 색체를 찾아 살리려는 노력을 깊이 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문예이론과 당시 문학적 경향, 앞으로의 문학을 고민하는 과정에 <임꺽정>이라는 봉건과 계급적 신분질서에 극도로 항거한 인물, 안 팎 문화의 침윤이 덜한 조선의 천민의 말과 생활을 취해서 '제3의 문학'을 실천한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임꺽정

사계절이 임꺽정을 출간하면서,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을 책에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남북을 통털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라지요. 실제 앞의 세 권에 임꺽정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 당시 시대상을 일가의 역사와, 갓바치란 인물의 역사, 양반들의 이전투구를 독립된 권으로 엮은 것을 보면 임꺽정 속의 다른 소설, '액자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앞의 세권에 대한 이해가 임꺽정이란 인물이 가진 정신세게를 이해시키는 결정적인 배경이 됩니다. 앞의 세권이 없었던들, 임꺽정은 그저 기운 무지막지하게 세고, 칼 잘 쓰며 의리 좀 지킬 줄 아는 성질 포악하고 급한 도적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임꺽정이 대항하고자 한 시대, 임꺽정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해, 도적으로 나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이어질 일 없이 툭 끊겨진 소설이 어찌보면 우리 현대사가 남긴 단절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북으로 올라가 부수상을 지냈다지요? 어쩌면 소설을 마무리 못할 만큼 바빴겠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소설의 끝을 보고싶은 마음이 작가로서의 홍명희에게 원망을 하게도 됩니다.

한편으로 미완의 소설이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뒤를 엮어보는 맛을 즐기고도 싶습니다.

심정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두령들, 곽오주나 배돌석,... 그 인물들 마저도, 배신하고 살 길 찾은 서림이 같은 인물, 비루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는 노밤이 같은 인물 마저도 애정을 깊이 담아 그린 작가의 손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가 임꺽정을 통틀어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긴 시간 더듬어 온 책을 다시 한번 몰두해서 읽을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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