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설 속 역사 여행 - 개정증보판
신병주.노대환 지음 / 돌베개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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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소설이 다리를 놓은 생생한 역사 여행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허구의 소설을 매개로 활자 속에 있던 역사가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온다. 흥미진진하고 때로 놀랍고,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역사를 책 제목 그대로 여행하고 난 느낌이다. 노독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고전문학에 전에 없던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것과 화석과 같은 역사 속에 살던 선조들의 삶과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큰 성과이다. 다양한 사료와 자료를 통해 소설 속 사회를 생생하게 만나게 해 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싶다. 
시대와 불화를 일으킨 옛사람들의 삶은 마음을 끈다. 봉건의 냄새가 풀풀 나는 봉건 왕조시대이니 더욱 그렇다. 시대의 단면을 보려한 작가들과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준 역사 속 인물들의 시선으로 고전 소설 속의 역사를 톺아본다.

* 김시습이 임종 직전에 쓴 시 <아생 (我生)>

백세 뒤 나의 무덤에 표할 적에
마땅히 꿈속에서 죽은 늙은이라 써 준다면
거의 내 마음을 안 것이라
천 년 뒤에는 나의 회포를 알아줄까

세살에 지은 시로 세종에게 상을 받을 정도로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으나,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는 세상을 등지고 산 속을 떠똘았던 이. 성종이 즉위하자 유교의 도리를 따라 바른 정치가 서기를 기대했지만,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람들을 발고한 공으로 정창손이 영의정에 오르자 정창손의 행렬을 향해 "네 놈은 그만 두거라."일갈했던 사람. 자신의 마음 속에 세운 기둥을 꺽을 수 없어 세상과 등을 지고 기괴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으며 산야를 떠돌았으나 그 혹독한 외로움을 죽음 앞에서도 의연히 감당하던 그를 가슴에 담는다.


* 사헌부 금서 설공찬전

채수의 설공찬전은 실록에 6번이나 오를 정도로 조선사회를 들썩이게 한 필화사건을 일으킨 작품이다. 참수형에 처할 위기에 처했지만 중종의 사면으로 교수형만은 면했다고 한다. 당연히 설공찬전은 금서가 되었고, 지금의 국방부 금서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는 것처럼, 설공찬전은 세간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그러면 설공찬전이 금서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성리학이 전국에 걸쳐 퍼져있던 시대, 불교 사상이 배척을 받던 시대에 불교의 윤회화복사상을 담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은근히 시국을 비판한 것이라 한다. 시국을 비판하는 것은 오늘에도 이어지는 금서의 필수 덕목인가 보다.  실제로 설공찬전에는
 "비록 이승에서 임금을 하였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는 대목이 해석에 따라서는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중종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라도 글에 능한 사람은 관직이 오르더라는 내용, 이승에서 충언을 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은 관리가 저승에서는 귀인 대접을 받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무엇보다 염라왕을 중국의 황제보다 높은 최고의 지위로 파악한 점은 국왕 중심의 현실 정치, 나아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비판한 것일 수도 있다. 성리학을 하늘처럼 떠받들던 시대니 정말 앗 뜨거라 할 만하다.

* 나라는 백성을 뿌리 삼아야 한다. - 전우치전
6번의 사화로 수많은 인재들이 목숨을 잃어야했던 시대를 벗어나려한 지식인들은 도가사상에 몰두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은 시대에 민중들은 끝을 모를 핍박과 가난과 억울함 속에 살아야 했고,  신묘한 도술로 견디기 어려운 현실을 바꿔줄 도사를 기다렸다. <전우치전>은 도가사상과 민중들의 바램이 빚어낸 이야기이다. 문학적 완결성은 홍길동전에 이르지 못하고, 홍길동전처럼 율도국이라는 대안사회를 이야기 하지 못하지만 민중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다. 전우치가 황금들보를 팔아 백성들에게 곡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장면에서
"이번 곡식을 나눔으로 혹 나를 칭송하는 듯하나 이는 마땅치 아니한지라. 대개 나라는 백성을 뿌리 삼고 부자는 빈민이 만들어 준 것이어늘... 너희들은 이 뜻을 깨달아 잠시 남에게 맡겨 놓은 것이 돌아온 줄로만 알고 남의 힘을 입은 줄은 알지 말지어다." 말한다. 백성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것은 물론 백성의 의미를 이처럼 명쾌하게 밝히는 데 어떻게 <전우치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민중의 눈으로 재구성한 전쟁 - 임진록
임진록은 정치 없는 나라에서 난리를 치뤄야 했던 백성들의 마음이 빚어낸 이야기이다. 백성을 버리고 난리를 피해간 왕과 양반들. 그들을 대신해서 왜군을 막아낸 의병장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정부, 왜군을 물리쳐달라 청해서 들어온 명나라 군사는 민가를 습격하여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갖은 행패를 부렸건만 왕이란 자는
"명나라 군대의 히이 아니면 왜적을 어떻게 물리쳤겠는가? 강토를 회복한 것은 모두 명나라 군대의 공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한 일이 없다. 이는 내가 사실에 근거하여 한 말이다."라 하니 전쟁이 끝났다 한들 어찌 그대로 끝난 일로 둘 수 있었을까? 임진왜란의 치욕을 민중들은 그들의 시각에서 승리하는 전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임진록’ 꼭지를 읽으면서 나 역시 치미는 화를 진정하기 어려웠다. 

거문고와 노래 이것은 영웅의 일이 아니고
칼춤으로 모름지기 옥장(玉帳)에서 놀 것이다
다른 날 난이 평정되어 칼을 씻고 돌아온 뒤에
강호에 낚시질하는 외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
나라를 지키려는 맑은 충절 하나로 전장에 나선 김덕령 의장의 시이다. 결국 역모로 몰려 목숨을 잃은 김덕령 의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광주 거리에 ’충장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충장로’는 정치에 배반당한 의장의 역사와 80년의 역사가 교차되는 상징처럼 느껴져 더욱 아픈 이름으로 다가온다.

* 허균의 호민론
저자는 허균이 성리학의 철학 논쟁에 빠져 들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접한 것은 모순된 사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학문과 사상에 동등한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문과 사상에 대한 개방성은 당시 드러나고 있던 사회 모순을 과감하게 지적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호민론’에 관한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허균의 [호민론]은 그의 민중 지향 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글이다. 허균은 이 글에서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백성뿐이다."라고 전제한 후, 백성을 호민(豪民), 원민(怨民), 항민(恒民)으로 나누었다.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는 백성’을 말하며, 원민은 ’정치가에게 피해를 입고서도 원망만 할 뿐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백성’으로 지금 개념으로는 나약한 지식인을 뜻한다. 이와 달리 호민은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 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을 뜻하며 시대의 사명을 인식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다.
[호민론]의 주요 내용은 호민의 주도로 원민과 항민이 합세하여 무도한 무리들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호민론]은 ’국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엇??다. 허균은 중국 진나라 때의 진승 오광의 난, 당나라 때의 황소의 난과 같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호민이 백성을 규합하여 나라사례를 통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호민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국가의 건설이었다

* 병자호란의 치욕 - 박씨전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에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전쟁중에 가장 치욕을 겪은 이들은 여성이었을 것이다. 사대부가의 무기력한 남성들이 남한산성에 쫓겨들어가 40일 동안 암중모색할 때, 성밖의 백성들이 겪었을 고초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무기력한 왕과 신하들은 고통에 잠긴 백성들의 치욕을 풀어주기는 커녕, 청의 황제 앞에서 삼배구고두를 하는 창백한 왕의 모습을 보였다. 그 난리를 치루고도 앙상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정쟁을 치루던 왕을 보며 백성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박씨전을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백성들의 마음에서 씻어내리려는 씻김굿으로 읽는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허구의 세계에서라도 이루고 그 앙갚음을 하고 말리라는 백성들의 강한 의지를 마음에 담는다.

그 밖에 춘향전을 매개로 수령의 일곱가지 의무, 조선시대의 최소한의 복지제도를 살펴보고,  옹고집전이 조선의 불교 배척정책이 낳은 이야기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됐다. 배비장전에 드러나는 혹독한 신참례 관습이 조선사회 내내 문제로 지적되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장자 중심의 가족제도를 풍자한 흥부전을 보면서는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굴절된 봉건 문화를 안타깝게 새겼다.
문학예술은 시대의 단면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고전은 그저 옛 이야기로 읽었다. 고전과 시대를 종횡으로 촘촘히 엮어내어 생생한 역사여행을 하게 해 준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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