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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움을 향한 집요함은 예술의 고유한 특성이라 생각했다. 예술, 맞다. 집요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실체. 허나 또 하나의 범주가 있었다. 아름다움을 골방에서 추구하느라 가리워진 집단이 있으니 바로 수학자들이다.
20C 초반, 세계는 쌍차대전을 치루느라 혼란 속에 잠겼고, 쌍차 대전을 치른 후에 주변을 돌아보니 각 분야를 호령하던 내로라하는 인재들 중 절반이 목숨을 잃어 사라졌다. 19C 문명의 한복판에서 호령을 하던 프랑스도 프러시아의 침략으로, 나치의 공략으로 먹고 사는 것 그 자체가 ’미증유’인 때에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로덴티크 ____ 천재 수학자.
전쟁과 혁명의 아수라장에서 태어난, 이주민 부모들 사이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살아남기 위해 수용소를 전전하고, 공인하는 교육기관이라고는 겨우 문턱을 밟아본 정도였다.
그저 혼자 놀았다. 혼자 노는 아이들은 종종 있지만 특이하게도 수학을 가지고 놀았다(공부를 가지고 놀다니...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랬단다). 이미 12세에 19C 수학자들이 수십년 걸려 성취한 정리를 혼자 놀다가 발견한다.(이런 사람 참 맘에 안 든다.). 허나 헛점은 있었으니, 수십명의 유수한 수학자들을 제자로 길러낸 자가 초보 수학자의 질문 "소수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오답으로 답했다. "소수는 57이죠." 그런데, 57은 소수가 아니다. (57= 19*3 이므로) 개별요소에는 둔감했으나, 그 개별요소를 제거하기 위한(무시할 수 있었으므로) 치열한 노력 끝에 개별 요소를 제거하고 난 후에도 본질을 품은 채 남아있는 진리를 구하려 했고, 그 결과 세기가 지나도 변치않는 ’구조’를 밝혀냈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의 첫 단원이 ’행렬’, ’집합’, ’순열’, ’벡터’였다. 단순 명쾌함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노동인지를 몰랐던 때라, "이게 수학이야? 국어의 가나다 잖아? 방정식 풀고 고등학교 입학했더니, 겨우 초등학교 때 배웠던 집합, 수, 자연수, 초월수, 완전수, 무리수, 유리수, 소수...들의 집합을 고등 수학에서 가르치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습게 봤던 집합, 순열들이 19C 놀라운 성과인 유클리드 수학을 넘어선 새로운 수학의 지평이었단다. <수학이 사랑한 예술>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기의’를 제거한 후에 남는 ’기표’에 주목한 수학자들의 대표주자 그로덴티크의 연구 성과이며 그 동료들의 공동 성과이다. 그로덴티크로 인해 철학과, 문화연구와, 대중문화와, 정신분석학과, 경제학은 범주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를 읽을 수 있었고, 구조를 해명해 낸 성과로 저마다 연구와 분석, 학문적 성취에 있어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대표적 주자로 레비-스트로스가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양한 분야를 매개하는 언어를 찾아내어 사조로 일구었다. 아담스미스가 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좌표상에 나타낸 수요-공급의 그래프를 위상수학을 도입해서 그려내어 경제학을 구조화 해내고, 추상에서 출발한 다양한 법칙을 구상할 힘을 제공했다.
그로덴티크의 경쟁자, 지음, 질투의 화신 - 앙드레 베유
그로덴티크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났으나 앙드레 베유는 귀족적인 가족 가운데(멘델스존 처럼) 온갖 교육과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태어났다. 천재이고, 직관적이며, 온갖 예술과 여행을 다 경험했으나 그로덴티크의 탁월한(비인간적이기까지 한) 천재성을 보면서 열패감과 질투를 품고 살았다.
허나, 행복을 아는 사람은 진정 놀 줄 아는가 보다. 베유는 수학에 빠져들면서 세기를 뒤흔들 놀이를 꾸몄다. 바로 "블루바키’의 탄생을 만들어낸 것이다. ’블루바키’는 개인성을 갖지 않았으나, 베유에 의해 개인으로 창조됐다. 베유가 망명하다가 연행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때, ’간첩’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던 허위의 인물 ’블루바키’는 수학자들의 공동연구를 집대성 하여 논문으로 발표할 때마다 등장했던 인물이다. 실존의 ’블루바키’ 는 프랑스 19C의 가장 많은 승전보와 가장 많은 패전보를 전하던 전천후의 군장교였다. 그 역사속 인물의 이름을 빌어 베유를 비롯한 수학자들은 ’새로운 정리’를 발표했다. 놀라울만치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기존의 수학으로 해명하지 못한 수학적 분석을 내놓던 ’블루바키’는 20C 프랑스 수학을 이끈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는 장난이 빚은 허위의 인물이다.
그래도 참 아름다운 장난이었다. 고루한 수학자들이 지순한 사랑을 바칠정도로 하염없이 빠져들게 하는 창조적인 놀이를 개발하고 이어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허위의(가상의) 블루바키는 여동생의 결혼 청첩장을 뿌리기도 하고, 지도에 없지만 버젓한 고향과 고향의 문화, 가족과 고유의 문체를 가진 수학사회 안에서 독보적으로 인정받는 인간이다. 그러나 ’블루바키’는 실존하지 않았고, 블루바키의 크고 작은 성과를 ’블루바키’라는 이름을 빌어 발표한 수학자 그룹만 있었다.
자크라캉, 소쉬르, 푸코, 프로이트, 피카소, ___ 시니피앙(기표)를 사랑한 선구자들
’블루바키’의 출발이며, 최고의 성취인 ’구조주의(다다이즘)’이 20C에 꽃피웠다. 소쉬르가 시작했으나 수학자 블루바키로 인해 깊어지고 풍부해진 구조주의의 등장과 부흥이다.
’구조주의’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을 형식으로, 관계로 해명하려한 수학이며, 과학이며, 응결이며, 은유이며 환유이다.
구조주의가 문학으로 옮겨가면,
글을 쓰는 시인에게 모음 중 ’a’만 허용하는 시를 쓰게 했고,
행마다 단 하나의 모음만이 반복되는 시를 쓰게 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시를 쓰게 했으며,
하나의 알파벳을 정한 후에 그 알파벳이 문장 안에 결코 들어오지 않게 하는 시를 창조하게 했다.요소를 제거한, 혹은 요소가 없어도 성립되는 단 하나의 구조를 찾아, 부야별 천재들이 모여서 연구했고, 결실을 맺어 ’구조주의’를 낳았다.
예술은 총화점인 동시에 발화점이다.
출발과 마지막에 예술이 있다. 때론 놀이처럼, 때론 심오한 연구논문처럼, 때론 형식을 향한 교조같기도 했던.... 많은 예술가들에게 시니피앙(기표)에 주목했던 성과를 넘어선, 그것의 변형, 그것의 풍부함, 그것의 자유로움에 대한 밀도 있는 고백이다..
<수학이 사랑한 예술> 수학자들의 삶은 그로덴티크처럼 고단했으나, 3대에 걸친 블루바키로 인해 하나의 산맥을 이루었고, 그 건실과 순수가 빚어낸 구조주의는 20C에 살던 각 분야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했다.
’구조주의’ 참 이해하기 어려운 사조였으나 <수학이 사랑한 예술>을 통해 내게는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남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