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꺽정 3 - 양반편 홍명희의 임꺽정 3
홍명희 지음 / 사계절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임꺽정> 3권 양반편, 양반편답게 양반네들 이야기로 한참을 간다. 양반 세계는 확실히 재미가 덜하다. 캐릭터 고만고만한 등장 인물이 너무 많고, 얘기의 건정성이 확 떨어진다. 왕족과 조정이 ’소인배’의 활동 무대가 된 명종 초 ’옥사’의 르네상스를 보다보면, 오늘이 교차편집 되면서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하긴 양아치도 예전 양아치는 인간미가 ’좀’ 있었다더니, 같은 정치 소인배라 해도 옛 소인배들은 ’양심’이란 걸 갖고 있던 모양이다. ’유학’이라는 철학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봉건이 품고 있던 공동체적 미덕의 힘이라고 할까? 여튼 스스로 ’소인배’라는 자각을 잃지 않고 산다. 음모를 꾸미는 그 순간도, 성공 후에도 그들은 늘 실존의 고민에 부딪힌다. "난, 왜 이 모양으로 사는가?".  심지어, 양심의 가채그로 광인이 되어 식솔들 앞에 못 볼 꼴 보이다가 추한 모습으로 죽어가든지, 마지막 남은 양심에 기대어 욕된 목숨을 끊던지 하는 것이다.

소인배도 최소한 인간의 모습이었으니, 덕을 지닌 선비들의 모습이야 말 할 나위 없다.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모인 옥 안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웃고 말하는 모습은 기본이다. 간수들은 저마다 선비의 그릇을 두고 아까워 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고, 저마다 자기가 감명받은 사람의 됨됨이를 최고라 자랑한다. 가장 인상 깊은 이는 임형수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물론 농과 장난까지 하는 그의 의연함이 놀랍다.

사약을 받아 든 임형수. 약 기운이 빨리 돌라고 술을 섞어 안긴 사약을 받아 들고,

"이 술은 주인으로 손님에게 권하지 못하는 괴상한 술이라 나 혼자 먹소." 하고 허허 웃고 나서 한 숨에 들이 마시고, ... 상노 아이가 포쪽을 들고 우는 소리로 "안주나 잡수십시오." 하고 내어 놓으니

"에끼놈 저리 가져가거라. 중놈들이 벌주를 먹을 때도 안주를 먹지 못하거든 이 술이 어떠한 술이관대 안주를 먹는단 말이냐? 철없는 놈이로군." 하고 웃고서 도사를 향하여

"사정 쓰려고 약 분량을 적게 타지 않았소? 어째 이렇게 무령하오? 벌써 몇 사발을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구려." 하고 또 웃으니 도사의 악문 입술도 조금 터지는 것 같이 보였다.

단 잔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람에 따라 여러잔을 마시고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는 부득이 교살을 하기도 하는데, 임형수도 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밧줄을 들고 들어오는 나졸에게 ’사약은 전교에 있었겠지만, 교살은 없었을 텐데, 다시 한양 가서 전교를 물어 오라" 농으로 내 뱉고, 자기 목 조를 타락줄을 걸고 방 안에 들어 앉은 척 하곤 목 대신 목침을 묶어 놓고 껄껄 웃고, 화를 내고 따져 묻는 도사에게

   
  "처음 당하는 일이니까 잘될는지 몰라서 시험하여 보았소." 하고 한바탕 기탄없이 웃는 사람 임형수. / 임꺽정 3권 양반편 86~88쪽 중에서 추림  
   

눈 가리고 아웅하듯 흠 많은 인사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인선하고, 인선된 인사들은 국민들 다 보는 데 뻔 한 거짓말과 뻔뻔함(정치인의 미덕?) 앞 세워 고개 뻣뻣이 들고, 통과된 후에는 면죄부 받은 양 도덕의 가면을 하고 ’법치’를 큰 소리로 말하는 오늘의 사람들과 너무도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읽을 수록 제도권에 대한 실랄한 비판, 그것도 부족해서 민란을 일으킨 임꺽정의 무리를 미화하는 <임꺽정>을 쓴 홍명희 선생님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불경스런 글을 일제 시대 신문지상에 버젓이 연재하다니.

아무튼, <임꺽정> 참 깊은 맛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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