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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평점 :
<누란>은 386 세대, '허무성'이 87년부터 2004년까지를 통과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간만에 소설 한 번 읽으려다가 정말 된통 당했다. 참 읽기 힘든 소설이다. 글이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집요하고 끈질긴 작가의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누란>은 허무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지만 지금을 사는 기성세대를 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음험하고 무겁고 공포스러운 역사 속에서 경험했던 고통의 감각을 작가는 집요하게 들쑤셨다.
소설의 첫 장면은 허무성이 남산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파시즘의 신봉자 김경장이 허무성을 1박 2일 고문하는 장면만 25쪽을 빡빡하게 채운다. 뒷 부분에서 김의원으로 진화한 세련된 파시스트 김일강과 허무성이 술집에서 나누는 대화는 166쪽부터 216쪽까지 꼬박 50쪽을 채운다. 둘의 대화에서 맡아지는 폭력과 좌절과, 마조히즘적인 분열증과 포식자의 피냄새 나는 언사를 50쪽에 걸쳐서 참고 읽어야 한다.
작가는 TV라면 리모큰을 들어서 끄고 싶고, 영상이라면 고개를 돌리고 싶은 장면들의 생생한 묘사로 386 세대가 공히 겪었음직한 트라우마를 후벼낸다. 읽는 동안 허무성의 통증이 내게도 옮겨와서 풀 곳 없는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미는 것을 수차례 참아 견뎌야 했다.
또, 이 사회 포식자들의 생각 층과 생활을 근거리에서 보는 것 역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작가는 후기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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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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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한다. 그의 의도대로 소설은 극한의 좌절, 그 밑바닥을 남김없이 훑는다.
다만, 허무성이 좌절의 극한에서 내리는 마지막 결정, 절실했던 사랑을 밀어내고, 도전하고 부딪히려는 다음 세대의 주자가 내민 손도 마저 놓으며 내리는 마지막 결정, 그 유약한 결정에서 희망에 대한 절절한 갈구를 읽을 뿐이다.
읽는 동안은 힘들었지만,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믿는다. 작가의 집요한 물고 늘어지기를 견딜 수 있는 한,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