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왼손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 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에스트라벤 읊조리던  ’토르메의 노래’
 / 298 쪽
 
   

’어슬러 K 르귄’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남성을 생각했다. 남성작가의 소설이라 생각하고 책을 열었는데, 여성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내 성인지적 관점을 돌아봤다. 누구를 만나든지 심지어는 지면에서 만나든, 그저 어떤 행위를 한 사람이라는 얘기로 만나든 인간 그 자체로 인식되기 보다는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은연중에 가르고 본다. 너무 당연하게 배어버렸다.

허나, 지구인 겐리 아이가 찾아간 행성 ’겨울’은 그저 인간의 별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냥 인간들이 사는 별. 물론 ’겨울’ 행성의 위성인 달의 공전 주기에 따라 일정 기간 남성 혹은 여성성을 갖는 케머 상태에 들기도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그저 인간 그 자체로서 존재를 인정받는다.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역할을 하든 인간 그 자체로의 평가만 작용한다.

겐리 아이는 에큐멘이라는 ’우주 연합’의 사절(엔보이)이다. 그는 겨울 행성이 에큐멘에 가입하기를 제안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겨울’ 행성에 발을 디딘다.  지구와 필적한 문명을 가진 인류가 사는 ’겨울’ 행성은 물론 단일한 국가는 아니다. 처음 겐리 아이가 발을 디딘 카르하이드와 그가 추방됐던 나라 오르고린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구성된 행성이며, 빙하기를 경과하는 별이다.

겐리 아이는 그 행성 사람들의 정치와 도덕과, 사람을 대하는 격식, 우정, 관계, 종교, 식생활, 노동, 감옥 등등의 문화들을 본다. 우주 속 별 나라인 카르하이드나 오르고린에도 지구의 유수한 나라들처럼 정치적인 입장 차이와 종교의 차이와 관계 사랑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외계인 겐리 아이의 눈에는 그 대립각이 뚜렷하게 보인다. 객관화된 별나라 인류의 모습은 지구에 사는 우리들이 안고 있는 그림자와 비슷한 면모를 보여주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어떤 것이 맞냐 그르냐를 구분하는 구별점이 아니라, 다양한 사고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달까?
인상적인 것은 외계인인 에스트라벤과의 우정이다. 진심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기까지와 그것을 서로 존중해가는 과정은 아름답다.

처음부터 몰입하기 쉽지는 않다. 문장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낯선 ’별 나라 용어와 낯선 이름들’ 때문이다. 단어들에 대한 기억력 떨어지는 나로서는 앞 장을 다시 넘겨가며 읽었던 부분이 수두룩하다. 허나, 어슬러 K 르귄은 그 모든 요소들의 구성을 치밀하게 엮아냈을 뿐 아니라, 문학적인 아름다움들을 요소 요소 배치했다.

과학, 권력, 사회, 관계에 대해 철학적인 물음들을 깔아 놓으면서도 SF의 상상력과 우화적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버무린 어슬리 K 르귄에 대한 문단의 높은 평가는 적절하다. 별나라에서 벌어지는 한편의 서사를 만나는 재미를 <어둠의 왼손>은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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