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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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 마음 열고 고백 한번 못 해본 곱디고운 첫사랑 해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했다. 그리고 사랑과 상실의 아픔이 가라앉기 전 녹음테이프 일곱개로 다시 찾아왔다. 테이프를 통해 해나는  "내 죽음의 이유가 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너에게도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이렇게 시작한다.

해나는 자살을 결심하게 만든 사람들과 사건, 그 일이 벌어진 장소를 이야기 한다. 테이프를 받아 든 클레이는 테이프 속 해나의 목소리를 따라서 잔인한 추억이 담긴 곳들을 돌며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비로소 해나가 그토록 보여주고 싶고 들려 주고 싶어 한 해나의 진심을 마주한다. 해나는 사람들이 허위로 만들어 놓은 '루머 속의 해나'에 갇혀 지냈고, 그런 자신에게 벗어날 깊을 찾지 못했다. 해나의 주변 사람들은 해나의 진심을 알려 하지 않았고, 해나는 사람들이 루머로 만들어 놓은 자신을 깨뜨리지 못하고 굴복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읽는 사람의 감정을 끌어 당긴다. 클레이가 해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여행하는 동안, 덩달아 안타까움 속에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한 사람의 자아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능멸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나열된다. 그렇지만 매 장면은 자극적이지 않다. 미국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이야기들이 오히려 우리를 소름이 돋게 한다. "아, 나도 그때 저렇게 맞장구 치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할 만큼 과거의 어떤 경험과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나쁜 습관보다 나쁜 말보다 더 나쁜 것은 나쁜 이해다.'라고 써 놓은 글을 봤다. '나쁜 이해'. 사람들의 '나쁜 이해'는 해나의 경우처럼 한 사람의 자의식을 파괴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긴다.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의 진심에 주목하며 사는가?'

   
  "해나가 아직 살아있을 때. ... 해나에게 말을 걸기가 너무 두려웠다. 선뜻 다가서려니 가슴이 떨렸다. 그런데 그녀는 죽었고, 기회는 영원히 사라졌다." - 본문 337쪽 -
 
   

아는 사람이 자살 했을 때, 무척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만큼 화도 났다. 무력감 때문이었다. '난 뭐였지?', '남은 사람은 뭐야?" '난 왜 그 절망을 모르고 있었지?', '귀띔이라도 해줘야지?' 혹은 '관계라는 게 이렇게 허망한 건가? 무의미한 거야?' 같은 생각 따위가 부글부글 올라오고, 그런 만큼 미안해지고 후회가 되고, 속상해서 자신에게 퍼붓는 화풀이였다. 쓰고 아프고 아려서 가슴이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불쑥 가슴 한 구석에 통증을 일으키곤 한다. 클레이가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사람과 손을 잡고, 가까이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든 절망에 빠진 사람은 어떤 신호를 보내온다. 그리고 그 신호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끊기고 만다. 가슴을 열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를 내게 재촉한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고등학생들의 세계를 다룬 소설이지만, 우리들이 살며 부딪히는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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