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초라해지는 사랑의 진정성 

 

결국 다시 한번 들추어서 읽게 됐다. 광고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연애 소설 따위(?)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들추게 만들다니 짖궂다. 허나 작가의 의도가 '통과의례'적인 사랑에 대한 문제 의식과 성찰을 요구한 것이라면 적중했다. 끝 부분에 반전이 있으므로 스포일러의 요소가 될 만한 것들은 최대한 자제하고 리뷰를 써 보아야 하겠다. 

<이니시에이션 러브>은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향해 변화하고, 조율해 과정을 그린 연애 소설이면서, 사랑의 이면에 서서 독립된 자신의 욕구와 자신의 방식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미스테리 소설이다. 

작가가 선택한 방식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 첫 번째는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몰두라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다음에는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랑하는 감정에 흠뻑 빠져든다. 둘 사이에 등장하는 어떤 장애도,  둘의 사랑을 객관화 하는 어떤 엄정한 시각도 두 사람의 사랑은 미연에 차단한다. 종래에는 그 사랑이 일방의 순수로 끝날지라도 말이다. 이누이 구루미는 사랑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주관성을 연애소설의 구조를 잘 활용해서 담았다. 실제 1980년대에 사랑을 했던 나 역시, 보송보송한 설레임을 안고 연애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스즈키와 미유의 사랑에 빠져들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사랑에 빠져드는 당사자들은 알기 어려운 사랑에 빠져드는 이유, 상대의 환심을 사는 요소, 사랑하는 중에 남겨두는 자신에 대한 이기, 사람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사람과 사람간의 신뢰의 문제를 검토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겪고 있거나 지나온 주인공과 독자의 사랑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돌아보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사랑이 가진 양면성을 A면과 B면을 가진 레코드판을 빌어 그려낸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결국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한번 더 들추어 보는 수고를 했음에도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결국 내게는 연애 소설로 남고 말았다. 작가가 공을 들여 짜낸 장치들과 소설 속에 배치해 놓은 소품들, 80년대의 문화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 등의 미장센은 결국 '사랑 이야기'에 몰두하고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내밀한 감정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주변에 분포하는 사람들과 사회와 사건은 표정이 거의 없어 가짜임이 분명한 소품들처럼 보인다. 굳이 1980년 대라는 시간 배경을 선택하는 수고를 한 이유도 역시 찾기 어렵다. 그들의 사랑에 이미지를 더하기 위한 노래 가사가 1980년 대에 나온 노래들에 있어서 택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독특한 플롯과 구성을 선택해놓고도 인물들을 보다 생생하게 살려내지 못하고 장식품들 속에 묻히게 만든 것이 못내 아쉽다. 사건이 주는 긴장이 아니라 구성의 아이러니로 호기심을 끌려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좀 씁쓸한 맛이 뒤에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