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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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를 만나다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어릴적을 뒤적거리는 이야기나 글들을 편히 읽지 못한다. 어린 시절이 내게 견디기 어려운 무엇이었다기 보다는 아직도 내 안에 어린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해는 떨어지고 같이 숨바꼭질 하던 아이들은 술래가 모두 찾아내어 왁자하게 떠들썩 웃으며 집으로 떠나갔는데, 내 안의 아이는 아직 내 안에 웅크리고 앉아 ’못 찾겠다 꾀꼬리’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친구들의 발 소리는 벌써 골목을 벗어났고, 발걸음은 우렁해졌다가 바빠졌다가 가끔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붕붕 뛰거나 하는 일 없이 바닥과 안정된 호흡을 유지하는 걸음으로 바뀌어갔다. 

좁아진 골목에서 떠오른 시선이 <꽃 피는 고래>를 만나 부웅 떠올라 고래마을 처용포로 옮겨갔다. 파리하게 앉아서 ’고래가 신화처럼 숨을 쉰다는 건 어떻게 숨쉬는 걸까?’ 생각하는 니은이가 보인다. 정작 마주해야 할 일들과 관계에서 눈을 돌리려고 꺼내든 질문으로 보이지만 ’신화처럼 숨쉬는 것을 궁금해 하는 것’ 마저 없다면 파리하게 앉아 있는 것도 어려울만큼 빈 눈을 하고 있다.

온 몸이 아프도록 무거운 설움을 자는 동안도 토해낸 아이 앞에 암시랑 안하게 갖다 놓는 왕고래집 할머니의 밥상. 뭐라 묻지도 않고 ’그저 먹어야지.’ 하며 돌아 업드려 꽁꽁 힘주어가며 바둑판 공책에 글씨를 써내려가는 왕고래집 할머니의 굽은 등을 니은이의 눈을 따라서 쳐다본다.

삶을 공동체 안에 그냥 널부러지게 펼쳐 놓았던 옛날에는 자신이나 관계에서 생겨난 아픔을 그저 느긋하게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던 소리가 곳곳에 있었을까? 요즘은 시대가 흩어놓은 거리만큼을 자기 가슴 앞에 두고서, 잘 만져지지 않는 누군가를 찾아 손을 휘젓는 걸까? 

잘은 몰라도 세월을 바닷 바람과 파도와 고래 앞에서 시난고난 살아낸 할아버지나, 녹록치 않은 딸 무던히 품으면서 넉넉한 마음 함께 키워온 왕고래집 할머니같은 분은 쉽사리 만나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니은이는 ’신화처럼 숨쉬는 고래’에 대한 질문을 품고 곳곳을 돌면서 그토록 피해 온 자신과 부모와의 이별장면을 새삼스럽게 대면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난 고아로 살기 보다는 어른이 될 거야.’

큰 아픔에 소용되는 약은 특별한 이벤트나 소란스런 위안은 아닌가 보다. 그저 각자의 삶을 무던히 밟아가면서 자기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려 놓고 ’누구든 때를 걸르면 안되는 게야.’  그저 수더분하게 한 울에 사람을 품는 그런 손길인가 보다. 새삼스럽게 유난하게 굴지 않고 그냥 그대로의 사람들을 끼워 앉혀 내미는 보잘 것 없는 밥상의 따뜻함 같은 거 말이다.

니은이가 경매에서 받은 영호언니의 문자메세지도 어쩌면 그런 류의 위안이다. 비싼 값에 사는 것도 아니고, 꼭 니은이를 겨눈 문장도 아닌 것이 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싼다.


어느날 문득 내 안의 아이가 툭 튀어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르쇠로 넘기진 말아야겠다. 무엇으로 보나 이미 이른의 반열에 들어선 나와 내 안의 아이에게도 수선떨지 말고 그저 밥 숟가락 하나 건네야 하겠다.

   
  흐린 날. 오후에는 바람도 분대요. 따뜻한 국물 마시고 든든하게 하루 시작하세요.’
‘오늘부터 마임 배우러 갑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나는 일은 늘 설레네요. 두근두근.’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는 날입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광합성하기에 좋은 볕이네요. 축축한 몸도 마음도 내다 말립시다!’
‘우주는 아기 밥그릇 속에, 악몽은 내 머릿속에, 얼룩말은 아프리카에, 사랑은 냉동실 안에 산다.’
‘느슨한 연대가 갖는 미덕과 불편함 사이에서 늘 생기는 갈등. 난 이걸 극복해야 일인 조직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
‘시무룩한 하늘이 조금 웃네요. 번뇌가 깊어지면 꽃이 핀다는데, 아직 그런 기미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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