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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개정판에 실렸던 <청구회 추억>.
<청구회 추억>은 신영복 선생님이 구속되기 전 2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 한 문화동 살던 초등학교 6학년 7학년 아이들과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렸으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실린 다른 글들과 달리 수필 형식인 <청구회 추억>만 따로 내어 단행본으로 엮었단다.
책장을 따라 서오릉으로 가는 길을 따라 마음으로 함께 걸었고, 씨름판을 응원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충체육관 앞 계단을 오르락 거리며 선생님을 기다렸으며, 두방망이질치는 가슴으로 주머니 속 십원짜리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낯선 육군병원 위병소 앞에서 머뭇거리고, 웅크린 어깨 기지개 켜며 언 손 호호 불며 눈을 치우고, 계단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들이마셨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아이들은 흩어졌고, 어정쩡한 어른 하나만 헌눈으로 질척한 길 위에 서 있다. 맑은 거울같고, 숫눈같이 깨끗한 사람이란 바로 청구회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일을 이 아이들처럼 할 수 있다면, 이 아이들처럼 맑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동경하고, 약속하고, 굳세게 지켜낼 수 있다면,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더 일찍 나가고 한 시간 반 일찍 나가서, 기다릴 수 있다면, 전봇대 뒤에 숨어 사람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 수더분하게 기다릴 수 있다면....
한해 동안 만난 사람들을 돌아 보니 참으로 마른 먼지가 인다. 일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고, 역할 때문에 누군가를 챙겼으며, 일이 되게 하자고 누군가를 추슬렀다. 그러면서도 난 늘 좋은 사람들 속에 있으니 참 행복하다 생각했다.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럽긴 하지만 도저히 그 순수의 마음으로 돌아갈 자신 없음에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청구회 추억> 속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다.
그 마음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되도록 많은 이들과 이 책을 나눠 읽어야겠다.
본문 중에서>
'그날의 내 행위가 결코 '장난'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상당히 무구한 감명을 받고 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 그들을 잊고 말았다. 그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는 사실, 그것이 그날의 나의 모든 행위가 실상은 한갖 '장난'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길 저편의 전봇대 뒤에 꼬마 둘이 서 있었다. 우리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리자 그 두 명의 꼬마는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같이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두 명의 아이가 틀림없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전봇대 뒤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마음씨야말로 딱할 정도로 착한 것이 아닐 수 없다.'
by 키큰나무숲 http://blog.naver.com/win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