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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ㅣ 까치글방 6
J. 호이징하 지음, 김윤수 옮김 / 까치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놀이, 예술과 관련한 책을 읽다가 찾아서 읽게 되었다. 요한 호이징하란 이름만으로 검색을 하다가 찾아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놀이하는 인간’이란 매력적인 명명만으로 쉬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좀 읽어내느라 고생한 책이다. 다 읽고 나니 뒤에 남는 것은 전 인류, 전 세계에 걸쳐서 사람들 사는 곳에는 공통된 문화와 놀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경계마다 다르긴 하지만, 공통되게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며, 다다르고 싶어하는 세계의 한 곳에 놀이가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되기는 어렵지만, 그 현실을 넘어선 곳, 때로는 현실에 비근한 것으로 대체되거나 치환되는 과정에 사람들은 놀이를 행한다는 이야기다. 그 부르는 이름은 나라와 민족마다 다르다. - <호모 루덴스>는 놀이나 놀이와 비슷한 뿌리를 갖는 이름들을 소개하는 데만도 책의 1/3을 다룬다. - 때로는 현실을 확장하여 넓혀내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도 하며, 주술의 힘을 빌기도 하고, 제도를 만들기도 한다. 존재하는 ’현재’를 다양한 방면으로 무한한 영역에서 넘어설 때 놀이가 시작된다. 모든 놀이에는 그 문화권에 익숙한 규율이 따라 붙는다. 또한 그것을 성취했을 때 사람은 승리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문화권이나 민족의 승리와 성취로 연결될 때 지속된 룰 안에서 영역을 만들고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요한 호이징하는 법률, 전쟁, 영웅, 문화, 철학 등의 뿌리에서 놀이와 놀이하는 인간을 찾는다.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릴적 놀이를 생각해보면 일정 공감이 가기도 한다. 비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연탄재 던지기 싸움을 하던 것,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위인전 속에 나오는 전쟁놀이나, 풍속에 나오는 돌 싸움들이 그렇다.
윗동네 아랫동네로 편 갈라 싸우던 연탄재 싸움은 당장 눈 앞에 떨어지는 무언가를 놓고 싸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기는 것은 모든 것을 얻는 것이었고, 지는 것은 한번이라도 다시 이겨 굴욕을 벗고나야만 당당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이었다. 분명 누군가 하자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누가 시켜서 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저, "야, 오늘 윗 동네 애들하고 붙는데.’ 하는 얘기가 돌면 ’그래? 좋아. 한판 붙자.’ 하며 달려 나가는 식이었다.
더 과격한 명절 놀이로 하던 돌 싸움의 경우도 그렇다. 부상자가 속출해도 마을 단위의 돌싸움은 해마다 벌어졌고, 이긴 마을은 풍년을 기약하며 풍악을 울리고, 진 마을은 다음 해를 기약하며 투지를 세웠다지 않는가.
꼬리에 꼬리를 잇는 끝말 잇기같은 놀이, 영웅이나 자연(변화된 오늘엔 선생님이나 엄마, 만화주인공이겠지만)을 흉내내는 놀이나, 경쟁이 있는 놀이 등 크게 네가지에서 다섯가지로 분류되는 큰 정형 안에서도 또 세분화된 규칙을 정해서 문화를 이루어 간다는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요한 호이징하가 다루지 않는 문화권은 거의 없다. 그만큼 많은 문화와 언어권을 탐구해낸 그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예술에 가까이 사는 나로서는 대부분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지면서 동의가 되는 내용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궁금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호모루덴스’임을 동의하며 산다면 보다 창조적이고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길이 경직된 현실을 거친 후에야 희뿌연 세상을 보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만들 것이므로,
by 키큰나무숲 http://blog.naver.com/win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