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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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삶을 낱낱히 보여주는 건 별로다. 그렇게 세세하게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확 다르다. 아마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마주 앉아서 ’잘 봐. 너 지금 그 나이에, 네가 가진 거. 네 하는 짓...’ 정색하며 따지고 들었으면 난 벌써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찼을 거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지만 위화는 말하는 방식이 다르다.

난 삼남매의 가운데 였다. 이상하게 막내보다 내가 먼저 났지만 이상하게도 군더더기 같은 느낌이 내 어릴적을 따라다녔다.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눈치를 보느라 쭈뼛거려야 했다.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랐지만, 난 식구들과 떨어져서 할머니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가랑비 속의 외침> 은 내 어릴적 모습과 겹쳐지면서 시작됐다. 

가족들을 떠나 혼자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손광림은 그 덕에 세상과 사람을 객관화 할 수 있는 눈을 갖는다. 안타깝게도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슬픔도 맹맹하게 다가 오지만 애정도 알듯모를듯 희미하기만 하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어느 한 귀퉁이도 봐주고 넘어갈 데 없는 패륜아며, 형은 나약한 위선자이고, 어머니는 구질구질하고 비겁한 화상이다. 

온갖 악행은 다 저지르면서도 세상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손광재의 죄의식 없는 폭압은 힘없는 가족을 구석기의 무덤처럼 짓누른다. 그런데 광폭한 손광재가 집 밖으로만 나가면 초라하고 가련한 인간의 모습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나약한 위선자인 형은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마다 않는 용기를 드러낸다. 아버지 손광재의 손아귀에서 살아 남기 위해 어린 손주를 방패막이 삼는 할아버지 손유원의 추레한 이마와 굽은 등에는 한 생을 노동에 바친 깊은 주름과 고단이 실려있다.

못나고 비루하고 비겁하고 포악해도 저마다 삶과 부딪히고 세상에 휘둘리며 생겨난 상처를 붙들고 바둥질치는 절실함이 있다. 그렇게 얼크러져 가족의 역사를 이루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먼 발치에서 떨어져 보면 비루해 보이지만 그 삶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심장 뛰고 땀 흘리는 사람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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