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이름이 없다
위화 지음, 이보경 옮김 / 푸른숲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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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게는 이름이 없다  - 낙천이 주는 힘

' 이게 진정한 구질구질함이야.' 위화의 인물들이 그렇다. 
구질함이 도를 넘어서 해탈이 보인다. 위화의 인물들은 알몸이다. 고전주의 작가들이 신화 속 인물들을 지상에 내려놓고 그린 우아한 알몸이 아니라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등장하거나 에곤 실레의 그림 속 '사람'들 처럼, 때로는 이중섭의 그림 안에서 나무를 타고 멱을 감는 아이들 모양의 알몸이다. 
땀 냄새 거름 냄새 물씬 풍기고, 흙먼지 뽀얗게 뒤집어 쓴 채 세상과 사람들 속을 뛰어다니는 인물들은 고매한 철학 보다도 삶과 사람의 근본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내게는 이름이 없다>는 위화의 단편 모음이다. 형제가 많은 집에 주목 받지 못하는 자식, 먹을 것이 넉넉치 않은 집에서 뭐 하나 하는 것 없어 그저 군입 취급을 받는 노인, 가족이 있어도 비빌 언덕이 되기는 커녕 수렁으로 밀어넣기나 하고, 처음부터 가족이나 이름 따위는 없이 동네의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책 안에 그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목울대를 넘어가던 코피의 찝질한 맛이나, 흙바닥에 넘어져 깨진 무릅팍 상처의 얼얼하고 억울하던 아픔, 먼지 섞인 눈물이 입꼬리를 타고 들어오던 기억들이 되새김질 된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혼란과 고통 그리고 어지러웠던 내 일상이 인물들을 거울 삼아 튀어 나온다.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작은 용기가 고이는 게 느껴진다.' 내게도 이들처럼 잡초같은 생명력이 있지.'  하는 격려같은 거 말이다. 땅에 발딛고 사람들과 부비적 거리며 살아가는 동안 슬그머니 단단해진 뼈마디나 근육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낙천이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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