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
김정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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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큰아이는 38도 열감기에 둘째아이는 이유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몇 시간째 앉아 있다. 다 읽으려면 며칠 걸릴까 고민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은 후 덮었다. 중간에 화장실에 앉아 있는 둘째에게 딸기를 챙겨주고 태권도장 다녀온 첫째에겐 따뜻하게 전기장판을 켜주고 이부자리를 봐주었다.



작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영국에 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인공 삶도 그렇다. 한국에서 미국을 거처 영국, 프랑스에서 마무리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싶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주변 누군가의 삶을 재구성한건 아닐까 했다. 어떻든간에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게 하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덮고 나면,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한 장 한 장 저민듯이 아려오는 소설이다. 인물들 삶이 그랬다. 지금 내 눈 앞에 고민들은 정말 우주의 먼지 정도 되는구나 싶게 만들었다.



 주인공은 6.25때 부산 피난 시절, 국제시장을 기억한다. 대여섯 살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칠십중반 정도일 것이다. 딸 셋 집안 아버지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떨어져 살다 영영 같이 살기 힘들게 되었다. 엄마는 재혼했고, 자매들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큰 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맏딸이 되었다. 어떠한 인연으로 미국으로 떠나 공부를 하게 된다. 원래 유학 목적지는 더블린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각자 저장방식이 다르다. 더블린 세글자를 보는 순간, 난 TV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이 생각났다. (기존의 한국 가수들이 인지도 전무한 해외로 떠나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들은 버스킹을 했다. 영화 '원스'의 배경이기도 하다. 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 공간은 풍경과 음악으로 저장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바람의 옷'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나은 공간이라는 기억이 추가될 것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더블린으로 왔다. 그 후 5년 동안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또 한 아이와 시부모님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알게 된다. 남편과 자신이 낳은 아이가 그의 첫 아이가 아니라는 걸. 사촌누이와 남편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동안 남편에게 얇은 막이 느껴졌던 건,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온전히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따뜻하지 않아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였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본문 중에 자신의 업보를 아이에게 물려주어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 떠올랐다.

170쪽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목격한 것을 자신의 나름으로 저장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도 각자가 목격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 모두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나 역시 내가 맞닥뜨렸던 모든 것을 사실에 근거해 기억한다기보다 그것이 그때 내게 남긴 인상, 후유증, 아니면 그 여파를 기억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어떻게 목격하고 무슨 일을 기억하건, 언젠가는 어딘가에 가서 닿고야 만다. 결국, 끝내, 누구나 같은 곳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행로로, 어떤 시간에 도달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를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정말 그럴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너무 가볍게, 또는 너무 무겁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54쪽
사람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렇게 대단한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부속물들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소박한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기 때문이다. 많이 갖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왜 많은 걸 빼앗긴 뒤에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고 있었다. 왠지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내용에 같이 정리해두고 싶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중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불현듯 휘몰아치는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이 책은 가장어려운 분야에 대한 탐구 결과이고, 고독한 무인도에서 허황된 기대와 함께 띄워 보내는 유리병 속의 편지다. 이것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

<바람의 옷> 속 주인공들은 외로웠다. 그들은 온전히 혼자임을 말하고 있다. 뒷 부분에 친구 혜주를 회상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상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믿게 된다. 그리고 화방의 그 젊은 남자에게 이야기가 와닿기를 바란다.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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