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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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이에요. 요리사는 제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으니까요. 선택의 여지도 없었고, 다른 뭔가를 꿈꾼다는 생각조차 못 했고요. 오랫동안 날개 꺾인 새처럼 지냈고요. 그렇다고 반항할 생각도 전혀 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다는 게 새삼 놀라울 뿐입니다. 물론 요리를 하면서 아무런 즐거움이나 감정도 없었어요. (237쪽 본문 중)

제목만 보고 셰프에 관한 책인줄 몰랐다. 감정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었다. 책을 펼치니 한 사람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 장은 컬러풀하다.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 아침 사진으로 보여진다. 숟가락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있다.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이 주인공이다. 숟가락이 주인공일 수 없다. 하지만 숟가락은 그대로 남아서 레스토랑을 지킨다. 음식은 사람의 입을 통해 넘어가고 그 순간, 시간과 함께 존재할 뿐이다.

셰프는 그런 존재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누군지 몰랐다. 레스토랑을 찾아다닐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고, 미식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요일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겨본다. 언제부터 만드는 과정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 셰프들 중 최현석 셰프가 생각나는 책이다. 부모님이 요리를 하셨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요리를 시작한 피에르 가니에르.

앞 부분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이루어놓은 성과들이 나왔다. 그의 레스토랑에 대해 나왔다. 대단한 셰프구나 싶었다. 마지막 장에서 왜 제목이 <감정의 법칙>인지 알게 되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람의 시작이 꼭 자기 의지로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다가 알게 되었다고 한다.

237쪽
-당신은 정말 긴 시간동안 '아무런 낙이 없는'존재로 지낸 거로군요. 그렇다면 그 시간 동안 내면에 불씨를 틔워준 계기는 없었나요? 진정한 요리사로서 눈을 뜨게 된 사건 같은 거 말이에요.
-젊은 날의 대부분을 삶의 의미도 모른 채 지냈어요. 내면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무의식과 억압된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데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애정도 하나 없는 요리를 하고 있었으니 제 인생은 그야말로 모순투성이였죠.
내면의 '불씨'를 말씀하시니 떠오르는 한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열여섯 살 때로 기억하는데, 새해 전날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있었어요.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는 친구들의 말에 냉장고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재료나 꺼내 두세 가지 음식을 만들어줬죠. 당시에는 요리에서 잠시 손을 떼고 있을 때였는데, 뜻밖에 친구들이 엄청난 칭찬을 하더군요. 그 순간 묘한 감정이 가슴 한 구석에서 꿈틀댔어요. 그때부터 요리라는 '행위'를 인식하게 됐고 생각도 달라졌죠. 제 요리의 근본 원칙인 '감정의 흔적'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건 한참이 지난 후였지만요.

좋아하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것,
잘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 이건 같은 말일까.

240쪽
-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요리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없었어요. 사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칭찬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소 아주 기나긴, 혹독한 겨울 같은 시간들을 홀로 견뎌내야 했어요.
그런 제 앞에 갑자기 제 내면을 들여다본 지적인 평론가가 나타난 거죠. 제가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제 앞에 말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집이나 학교에서 입은 상처를 모두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잘하는 걸 인정 받는 순간, 한사람의 인생을 비로소 빛나게 된다.

247쪽
두 분은 레스토랑에서는 몰라도 집에서는 아무런 개념도 규칙도 없이 행동하셨어요. 그러니 음식에 신경 쓰셨을 리가 없죠.
좀더 생생하게 설명 드리기 위해 제 기억에서 평생 잊히지 않는 사건 하나를 말씀드려야겠군요 어느 날 등굣길에 어머니께서 샌드위치 하나를 종이에 싸서 도시락으로 주셨죠. 점심시간이 되어서 종이를 열어보니 그 종이가 말입니다. 인근 도축장에서 아버지가 생닭을 사올 때, 그 생닭을 쌌던 종이였어요. 선명한 핏자국에 그 생고기 비린내라니.... 죄송하지만 구역질이 났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아직도 몸서리가 쳐져요. 인간이 어떻게 그토록 모순되게 살 수 있을까요?

처음에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부모님께서 레스토랑을 운영하셨다고 해서 그래서 셰프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맛있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보고 그 환경에서 자랐으니 유명하게 되었겠지 했다.
이 부분을 보고 경악했다. 환경만 보고 오해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추측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당시 그의 부모님은 미슐랭 1스타를 받은 꽤 레스토랑이었다고 한다. 항상 분노 속에 살아가는 아버지, 우유부단해서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어머니 아래 자라면서 어린시절은 불행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만들게 된 건 그 세월 반작용이라고 한다.

249쪽
그 반작용이라고 할까요? 저는 일에서만큼은 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철저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어요. 일을 할 때 마음 속으로 다짐하죠. '일의 마무리는 확실하게 할 것' '일을설명할 시간을 미리 확보할 것' '충분히 검토할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요 지금도 늘 시간을 다투며 긴장 속에서 삽니다. 부모님이 항상 제때, 제시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물론 제가 추구하는 이런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동안 수많은 노력이 필요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나 견습생 시절, 저에게 요리는 그저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불과했어요.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부드럽고 시적이며 지극히 정감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된거죠.

251쪽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가슴 뭉클한 기억도 없고, 집에서 운영했던 레스토랑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하고도 이렇게 훌륭한 요리사로 성장하는 게 가능하다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당신의 경험은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큰 용기를 줄 겁니다.이 책도 더욱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고요!
- 다행스럽게도 전 극복해냈어요. 그 부조리했던 시간과 환경이 오히려 제게 음식을 평가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선생님이 된 셈이죠. 무슨 일이든 계속해서 한다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제가 과거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죠!

268쪽
당신은 주위의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확실히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이란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전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자신이 마음 먹은 것을 실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명이 정해준 역할을 실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얀 파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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