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김영건 지음, 정희우 그림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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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그림도, 소재도 보는 순간 푹 빠져버린 책.
책크기도 종이재질도, 내가 만약 책을 낸다면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 요즘 작은 크로스가방을 주로 매는데, 그 가방에 쏙 들어가는 건 이 책 뿐이다.

반은 카페에서 일요일 오후에 읽었고, 나머지 반은 아이들 재워놓고 읽었다. 아이가 잠드는 동안 같이 잠들 뻔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는데, 읽는 동안 잠이 깼다.

일상 이야기가 좋다. 서점운영은 어떨까 궁금했었다.
동해를 가게 되면 꼭 가고 싶은 서점이 있었는데, 속초를 가게 된다면 이 공간을 갈 것이다.

공간과 사람은 조합마다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데, 속초 동아서점은 거기에 시간까지 더했다. 삼대로 이어지는 서점.

책을 읽다 저자의 솔직함에 놀랐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탐나는 책이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에버노트에 옮겨적다보니, 몇 페이지를 이어 적은 부분도 있다. 100일쓰기 99일차이다. 나는 아직 이렇게 글을 쓸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일상을 이렇게 풀어내려면 얼마나 내공이 필요한 걸까.

덕분에 서울을 가면 꼭 가고픈 서점이 생겼다.
고요서사. 소설 전문 서점.

책인데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눈 느낌이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 제목처럼.

 

28쪽
그 숫자도 숫자지만 고유한 경험이 축척되고 나름의 관점이 생기면서 읽은 책들이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기 때문이리라.


29쪽
책방 운영을 결정하면서, 손님 없는 틈엔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느긋한 오후를 상상한 적도 없진 않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하여 '교양인'이 되고 말리라는 당돌한 소망 또한 마음속에 고이 품었다.
 "책을 좋아하면 서점을 하지 말고 그냥 독자로 남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충고가 적어도 내겐 뼛속 깊이 와 닿는다. 느긋하게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은커녕, 책 표지만 훑고 지나가게에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가장 큰 요인은 서점 일이라는게 하느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가는 일인만큼 가만히 앉아서 넋 놓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책을 진열하고, 진열했던 책을 교체하고, 교체한 책을 반품하고 흐트러진 책을 다시 정비하고, 그러다 보면 또 어느새 새로 도착한 책을 진열해야 한다. 읽고 싶은 책은 나날이 쌓여가는데, 대부분 제대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다.


55쪽
오늘은 여기서 그만하자. 무리하지 말고 내일 다시 시작하자.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께 윽박지르곤 했다.
아직 책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 벌써 들어갈 수 있어요.
너무 무책임하신 거 아니에요?
나는 다름 아닌 내 안의 막막함과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화가 났을 따름이었다는 걸, 일 년이 지난 지금 깨달았다. 그때 아버지를 조금 더 편히 쉬게 해드리지 못한 나의 조급함에 후회가 든다.

91쪽
베스트셀러만 소개하고 잘 팔릴 것 같은 책들만 진열했다면 아마 묻혀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책.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책.
그런 책들을 손님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그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듣고 책을 펼칠 수 있을까?
별것 아닌 진열 하나에도 새삼 절실함이 깃들고 때로 가슴 아파지는 까닭도 실은 베스트셀로가 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144쪽
문학의 초입에 있어서든 문학에 진절머리가 나서든,
문학이라는 이름 앞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면, 고요서사에 가서 서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시라. 그는 당신에게 몰랐던 작품을 추천할 수도 있고, 새로운 작품 소식을 알려줄 수도 있으며, 만일 그것도 아니면 그저 당신의 얘기를 귀기울여 들어줄지도 모른다. '맞춤형 서점'이 나아갈 미래 중 하나라면, 그러한 표현은 고요서사처럼 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는 동네서점에 특히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161쪽
아내 앞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편이 되지 말자.
아내와 함께 일하게 되며, 속으로 아내에게 한 약속이었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재깍하면 모진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순간 나는 실패하지만, 여전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내와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내적 개선과 인간적 성숙을 요구한다. 그것이 비로소 부부가 함께 일한다는 진실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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