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레시피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공경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테레사 드리스콜
신문기자로 시작해 뉴스앵커로 15년 활동했다. 열일곱살 때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작가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의 데뷔 소설이다.

유방암에 걸린 엄마.
젊은 나이이지만 병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바람에 남편과 아이를 두고 먼저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하던 엄마는
레시피가 담긴 책을 남기기로 한다.
딸 하나만을 위한 책이다.
변호사에게 스물다섯살 딸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스물 다섯살이 된 멜리사는 그 책을 전해받는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다.

책 속에는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그리고 아버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시선으로 어릴 적 자신을 돌아보는 기분이 어떨까. 책을 읽는 나도 울컥한다. 두 딸의 엄마이자 나도 우리 엄마의 딸이니까...

 책은 여러 사람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현재 멜리사의 시선, 그리고 현재 멜라사 아버지인 맥스, 마지막으로 책 속의 엄마 엘레노어의 시선이다. 각 장 시작에 사람이름과 내용이 전개되는 해가 적혀있다. 그래서 혼란스럽지 않다.
 오히려 일인칭 주인공 시선보다 좋았다. 가족 이야기를 여러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딸이자 엄마이자 아내이다. 항상 내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본다. 엄마에게도 딸에게도 남편에게도 말이다.
소설의 장점이라면 잠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아마도 이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처럼.
울컥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멜리사의 엄마 엘레노어는 죽기 전까지 현명한 아내이자 엄마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를 생각했고 남편을 배려했다.
하지만 배려가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멜리사는 엄마와 제대로된 작별을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딸을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게 평온한 삶을 살게 해주느라 엄마는 혼자서 생을 마감했다.
가족도 없이 말이다. 정말 가족을 위한 일이었을까?

멜리사도 엄마가 된다.
책을 읽으며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엄마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전 추억의 장소도 찾아간다. 그렇게 스물다섯에 엄마와 이별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현명한 엄마 엘레노어는 딸이 클 때까지 이별을 미루어왔던 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딸이 엄마가 될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었던 책 속의 엄마.

작가도 엄마를 일찍 여의었다. 그래서 자신이 엄마가 되려는 순간 막막함 그리고 불안감을 멜리사에게 투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울컥했다.

소설의 끝으로 갈수록.




41쪽
"아,아무것도 아냐.
그냥 일과 관련된 메모를 했어.
잊고 있던 할 일. 생각이 나서."
"일? 새벽 4시에?"
"미안. 이제 정리됐어. 내가 얼마나 근심 걱정이 많은 사람인지 알잖아.
잠이 오질 않았어."

64쪽
내 어머니는 솜씨가 아주 좋고 기본에 충실한 요리사였어. 포장용 식재료와 냉장고 등 '편리'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들이 나오자 분개하고 약간 잘난 체를 하기도 하셨지. 사실 어머니는 시간이 있고, 직장과 가정생활의 혼돈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지. 내 세대만 해도 그걸 전쟁으로 여겼고. (그래서 한 장을 전부 할애할 거야. 이 책 말미에 요즘 시대의 어머니 노릇에 대해 쓰기 시작했단다. 아직 너한테는 관심 없는 일 같아서 따로 떼어 다루었지만, 네게 해당되는 시기가 올 경우에 대비해 내 생각과 요령을 남기고 싶어.) 아무튼. 어머니는 요리에 대한 의지와 시간 여유, 둘 다 가진 분이었고 그래서 요리를 했지.

71쪽
사이프러스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영국에 반대하는 폭도들을 소탕하기 위해 트루도스 산맥에 영국군이 배치되었다. 애드먼드의 이야기는 초여름 어느 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날 다른 영국 부대들이 같은 산악 지대에서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 특정한 날, 부대 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 애드먼드는 진상을 낱낱이 밝히지 않았지만, 영국군이 다른 영국군에게 발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동족 간의 발포로 어린 병사가 죽은 것을 목격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를 품에 안았다. 그저 아이였다.
사실 난 바로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우리가 얼마나 어린지 모르고 있었다.'


72쪽
'여기서 나는 진실을 말해야 하고, 진실은 이것이다. 그-트루도스 산맥에서의 그 병사-는 아이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열아홉 살. 그 사실이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그 마지막 순간 우리가 그를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너무 두려워했으니까. 그리고 여러분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만을 원했다.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199쪽
 엘레노어는 젊은 멜리사가 처음에는 이 부분에 관심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뒤쪽에 쓰기로 했다. 그녀는 스물다섯 살 때의 자신을 기억했다. 맙소사, 부모가 되는 건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는 전환점이었다.
 인생은 출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또 세상 사람도 두 부류로 나뉜다.
자녀가 있는, 동병상련인 사람.
자녀가 없는, 공감할 수 없는 사람.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었다. 이 부류가 저 부류보다 낫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246쪽
 하지만 남과는 나누기가 몹시 힘든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의 일을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여기는 사람들. 어머니와 좋고 나쁜 일을 겪는 사람들. 속상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괜찮아지기도 하는 사람들.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없어서, 두어 해 지나면 그런 슬픔은 사라지고 행복한 기억만 남을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
 맙소사.
깊은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멜리사는 유년기를 보내면서 알았다.
그것이 무엇보다 충격을 주었고, 결국 그녀를 남다르게 만들었다.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무시무시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숨어서, 아무렇지 않다고 믿도록 자신을 속이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무퉁이를 돌면 '딱' 그것이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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