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귀의 예술
피에르 토마 니콜라 위르토 지음, 성귀수 옮김 / 유유 / 2016년 7월
평점 :
아홉살 큰 딸이 이번 주 도서관에서 빌린 책.
<Why 똥>이다. 남편도 하루에 몇 번씩
붕붕, 둘째도 걸어다니며 붕붕
가족 모두 방귀와 친숙하다.
그래서 손에
잡은 책인데 세 번 놀랐다.
작가
피에르 토마 니콜로 위르토는 1719년에 태어나 1791년에 사망했다. 무려 약 삼백년 전에 태어났던 사람이다. 그 때 당신에는 익명으로 낸
책이라도 한다.
그 당시
출판사에서 펴냈다는 것도
인기가 많았다는 것도 놀랐다.
당시 자유사상 분위각 팽배한 고급 사교계의 읽을 거리로
급부상하면서 19세기 초까지 여러 차례 판을 거듭해와서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어진 것 자체가 또 신기하다.
덕분에 이
책을 우리나라에서 펴낸 유유출판사에도 급 관심이 생겼다.
지금도 심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웃음거리인 방귀를 진지하게
접근했다.
물론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 적은 부분도
있다. 지금으로선 더 과학적이라,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때 당시에 이만큼 접근했다는 것 자체도 재미있다.
13쪽
아무
스스럼없이 거창하게 '방귀의 이론', 나아가 '방귀의 미학'을 표방하는 이 책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는 '고품격' 재담의
파노라마다.
자못 학술적인 용어들을 내세워 진지하게 풀어 나가는
이야기의 형식과 그 속에 담긴 방정 맞고 우스꽝스러운 내용의 괴리야말로 풍자와 해학의 비결이다.
23쪽
독자여,
그대가 방귀라는 걸 뀌기 시작한 이래 아직까지도 그걸 어떻게 뀌는지, 어떻게 뀌어야 할지 모르고 있다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방귀란 어른과 아이가 다르지 않다고, 즉 모든 방귀가 똑같다고 여기기 십상인데, 그야말로 엄청나게 잘못된 생각이다.
오늘 내가
그대 앞에 최대한 정교하게 분석해 제시하고자 하는 이 문제는 지금껏 형편없이 무시되어 왔다. 다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라기보다, 딱히 마땅한
연구방법을 찾지 못했고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리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방귀란
하나의 예술이다.
즉, 루키아노스와 헤르모게네스, 쿠인텔리아누스 등등이 말한
것 처럼, 삶에 유용한 어떤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방귀를 뀔 줄 안다는 것은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89쪽
자고로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방귀 한 방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꼴볼견들이 있는 법이다.
예컨대,
잘난 척하는 게 일종의 취미인 어떤 겉멋 든 인간이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제 자랑을 늘어놓아 주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중이라 치자.
이때 난데없이 비어져 나오는 방귀는 그의 입을 다물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정신차리게 해서 공동의 적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여유를 갖게
해준다. 방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이득은 더 있다.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이어 주는 가장 매력적인 수단이 대화라면, 방귀는 그 대화의 문을 열어 주는 기막힌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어느
번지르르한 모임에 무려 두 시간동안이나 답답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공연히 점잔 빼느라 입을 다물었고, 다른 사람들은 조심하느라
그랬으며, 나머지는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급기야 사람들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 자리르 뜰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느닷없는 방귀 소리가 터져 나왔고, 곧이어 살마들의 웅성거림이 이는가 싶더니, 그로부터 흥겨우면서도 열정적인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사람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의 어색한 침묵이 종식되고, 활발한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방귀 한 방의 덕분일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