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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지하철에서 이 책을 처음
펼쳤다. 그 때 동생과 같이 타지 않았다면, 내가 내려야할 정류장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단 몇 페이지로 나를
사로잡았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잔잔하고 사람의 심리에 집중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이 그러하다. 특히 결혼 후, 여자들
감정 특히 무기력함에 대해 일기형식으로 제시힌다. 그 무기력감은 주변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온전히 세상에 부딪히며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엘레나는 자신의 감정을 일기에 털어
놓는다. 제일 앞부분에는 몇 년 뒤 엘레나가 자신의 일기장을 보며 느끼는 감정을 적었다. 이 부분이 와닿는다. 특히 산후우울증 등 결혼 후
심각한 감정변화를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p.77 내가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가슴과 피부로 느끼는 것들을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하루 속히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를 괴롭히는 오랜 의혹들이 말끔히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p.79 이 집에서 나는 혼자나 마찬가지다. 결혼은 했지만 집 안에서도, 남편과 차를 타고 있을 때도 나는 언제나
혼자다.
p.80 글을 쓴다는 행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다. 누가 내 일기를
훔쳐볼 수도 있다는 걱정은 제쳐두고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구체화한다는 것 자체가 나의 모순과 나의 실패를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지난 뒤에 일기를 다시 펼쳐보기라도 하면 어떤 때는 마치 다른 사람이 써놓은 것만 같은 내용을 발견하기도 한다. 글
속에선 나는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두려움과 욕망을 발견한다. 그리고 잊어버렸던 꿈들을 찾아낸다.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꺠닫고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나도
모르는 내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그럴 때 책을 참 좋은 도구이다. 내 감정을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된다. 서술형식으로.
<아침 첫 햇살>은 일기 형식이라 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건드린다.

이 책을 읽고 난
사람들은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에 더욱 놀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보통은 책 날개에 있는 작가에 대해 꼼꼼히 읽고 넘어가지만 이 책은 어쪈
일인지 본문부터 읽게 되었다. 그 후 역자후기에서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을 콕 짚어주었다.
나도 놀랐다. 여자의
감정을 이토록 놀랄만큼 자세히 알고 있다니. 여자인 나조차도 묘사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말이다.
p.96 "실수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에게 뭘
가져다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거라고. 널 좋을 쪽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그걸 누가 알겠니? 얼레나, 그러니까, 살면서 한번은
부딪혀봐야 하는 거야. 아무리 의미 없는 일이라도 한번 부딪혀보는 거라고."
지금보다 나이가 더
어렸을 때는 실수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안전한 길로만 다녔고 실패하지 않을 길을 선택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젊은 날이었다.
역동적인 20대후반을 겪고나서는 경험이 실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았다.
p.104 "행복하려면 우선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는 내
행복 속에 내 우울함과 연약함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해."
결국 행복은 누군가가
정의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