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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비난 받을 사랑은 없다
마야 최 지음 / SniFactory(에스앤아이팩토리) / 2013년 11월
평점 :
20대 초반에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시간낭비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때는 인생이 재미 없었나보다. 나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랑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는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주었다.
지금은 사랑이 존재한다
믿는다.
요즘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챙겨본다. 다양한 빛깔의 사랑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익명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얼마 전, 그
프로그램에서 바람 핀 남자친구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여자 사연이 있었다. 프로그램 도중 그 여자분과 전화연결을 하게 되었다. 여러 패널 중,
칼럼니스트 곽정은씨의 말이 마음이 와닿았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세요."
홍석천씨의 의견도
일맥상통하였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두
분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이 책도 마녀사냥과
같다. 저자 Maya Choi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인도로 건너가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심리상담가이자 다문화상담가이다. 현재 주간동아에
칼럼 '마야최의 남자, 여자 그리고 섹스'를 연재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적인
사랑만이 사랑이라 착각했다. 편협한 나의 생각에 세상을 나의 잣대로 평가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마녀사냥프로그램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랬다.
원래 세상이 그랬다고 네
시각이 바꿨을 뿐이라고.
그래서 이 책도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p.73
인도철학에선 인간이 보는 세상은 개개인의 눈에
비친 '상'인데 그 상은 말 그대로 진짜가 아닌 '상' 즉, '환상'이라고 한다. 세상은 사람 수만큼의 환상, 즉 가짜가
존재한다.
'마야'는 진짜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환상을 믿게 만드는 신의 힘'이란 뜻이다. 신이 바로 진짜를 내주어도 인간은 진짜를 볼 수
없기에, 환상을 통해 진짜의 존재를 깨닫게 하려는 섭리가 '마야'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가상의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진짜를 볼 수
있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라 볼 수 있다.
p.114
예쁜 여자나 평범한 외모의 여자나 똑부러지는
여자나 허술한 여자나 완벽할 수는 없다.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남자들에게 자신의
흠결까지 내어주는 것이 여자의 미덕은 아닐까. 여자의 결점을 낱낱이 밝혀 남자가 존재감을
느낀다면 까짓것 다 밝히라 하자. 친한 선배언니가 말했다. "남자를 이기려 하는 여자는 어리석은 거야. 지고 물러서야 궁극적으론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거란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언니도 남편이 화가 나면 깨갱 숨죽이고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고는, 화가 풀리면 조목조목
따진다고 한다. 그녀는 참 현명한 여자다.
p.118 여자는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할 뿐이다?
p.120
결혼한
남자들은 종종 아내들이 돈밖에 모른다고 불평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내의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자들은 사랑이 지속되는 동안 돈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사랑이 식는 순간, 재빠르게 돈을 선택하는 것이 여자들이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여자가 돈을 밝힌다면 더 이상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외려 남자들은 사랑의 시점에서는 계산을 하나 일단 사랑으로 결합된 순간부터는
계산하지 않는 경향이 짙다. 사랑이 식어도 책임을 지려는 속성이 남자에겐 있다.
p.127
나는 과연 이 땅의 남자(남편)들이 여자의 마음을
알까 궁금하다. 남자들이여, 아직도 여자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착각하시는가? 천만에, 여자는 돈이 아닌 사랑을 좋아한다. 다만
사랑의 부재에서 차선으로 돈을 선택할 뿐이다.
p.133
여자는 사랑을 하면
남자와 자기를 묶어 하나로 파악한다. 즉 사랑하는 남자와 자기를 엮어 하나의 새로운
ego를 형성한다. 그래서 자기 남자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에고를 지키는
것이 된다. 남자가 바람을 필 떄는, 상대여자를 비난하는
것이 자신에게 덜 상처가 된다. 그러나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와 독립적인 인격을 갖는다. 당연히 여자가 바람을 피면 여자를
비난한다.
p.205
뭐니 뭐니 해도 질투 중의 으뜸은 이성간의
질투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남자(아들이자 남편)한 명을 두고 서로 질투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원래 어머니의 연인이다. 특히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을 경우 어머니, 아들 관계는 연인에 버금가게 밀착된다. 아때 아들이 여자를 데려오게 되면 어머니는 질투로 며느리를
괴롭힌다.
시집살이의 가장 큰 원인이다.
p.208
"질투하시나요? 그럼
당신은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질투는 사랑의 그림자이자, 사랑을 담고 있는 문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좋아하지만 질투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모순이다.
p.242
" 내가 무엇을
'찾으면서'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무엇에 '들키면서'가는 길이었다."
평생 무엇인가를 찾으면서
살아온 나는 그 문장으로 내 어리석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렇지, 내가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늘 자유를 꿈꾸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고, 이상향을 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으로 생을 허비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있는 그것들을 무엇에게 의해
들키며 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삶이지 않을까?
행복하고 싶어
행복,행복,행복 늘 떠느는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성공,성공, 성공 늘 성공만을 말하는 사람이 가장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고,
돈, 돈, 돈 돈을 갈구하는 사람이 가장 빈자이며, 깨달음, 꺠달음을 외치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이고, 자유, 자유, 자유를 늘 구하는 자가
가장 갇힌 자이며, 공부, 공부, 공부만을 외치는 자가 가장 무식한 자이며, 가정, 가정, 가정만을 외치는 자가 가장 가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사랑, 사랑, 사랑을 외치던 내가 가장
사랑하지(받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자유도, 성공도, 깨달음도, 사랑도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인데 그저 '들키'기만 하면 되는 것을, 왜 나는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