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어디에 끌리느냐에 따라 나눈 것이다. 누군가 강요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나무도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가 있고 그늘에서 잘 자라는 음수가 있다. 우리는 나무 모두가 햇빛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 데 그것은 착각이다. 하물며 사람도 그러하다. 이성애자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허용된다. 누구나 다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누군가에게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가끔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를 착각하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또 다른 개념이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는데 여자로 인식하는 것, 육체가 남자로 태어났는데 정신도 남자로 인식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육체는 여자로 태어났는데 정신이 남자인 경우, 육체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정신은 여자인 경우이다. 나는 그 개념을 이해하면서 참 지금의 내 모습이 행운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성교육전문가과정 수업을 들을 때였다. 강사분이 서울에서 내려오셨는데 그 분은 동성애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셨다. 남녀간에 결혼을 전제로 만날 때는 그 사람의 직업, 집안 등 배경을 보게 되지만 오히려 동성연애는 그런 부분이 사라지고 오로지 사람만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오히려 더 사랑에 본질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내가 하는 것만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었다.
예전 직장에서 내가 하는 업무중 하나가 비정규직 관리였다. 일을 잘하는 아주머니들을과 2년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퇴직금을 주면 한정된 예산에서 많은 인력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1년에 9개월 이상 같이 일을 할 수 없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내가 일하던 분야는 계절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겨울에는 일거리가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겨울에 일을 하지 못했다. 그 기간동안 아주머니들은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받으셨다. 그나마 실 고용기간이 180일이 지난 분들만 해당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년에도 꼭 연락달라는 아주머니들의 전화를 받을 때면, 마음으로 참 곤란했다. 내 마음과 회사 입장에서 그 아주머니가 일하는 것이 좋지만, 비정규직 법안은 더욱 발목을 잡는 꼴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이 책에서는 인권의 다양한 부분을 다룬다.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과 폭력, 장애인인권, 노동자인권, 종교에 인종까지 어려운 인권이야기를 영화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저자 김두식은 영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고려대 법대와 미국 코넬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했고, 변호사, 검사를 거쳐 지금은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p. 79
김비는 "저를 만든 누군가가 있다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은 느낄 필요가 없는 그런 혼란과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을 가지고 살게 하는지 저도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p.88 인권은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 권리들을 다른 사람들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입니다.
p.96 드라마 [아이리스](2009)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이 남성의 따귀를 때리는 원인은 남자의 기습키스가 단연 으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이병헌이라해도 사랑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돌발적으로 입술을 들이미는 것은 미친 짓이고 폭력입니다. 김태희가 그걸 때귀 한대로 응징하고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전 세계 어디에도 흔히 찾기 어려운 우리만의 드라마 문법입니다.
p.97 세상에는 따귀 말고도 사랑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익혀 나가는 게 바로 인생입니다. 그 많은 표현방식을 연구하고 익히는 대신 따귀 한대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우리 드라마 작가들과 PD들의 태도는 딱 한단어, '게으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p.100 자동차에 억지로 태우는 사람하고는 아예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따귀를 때리는 사람하고도 빨리 정리하는 편이 신상에 좋습니다. 안그러면 반드시 그보다 심한 일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결혼이라도 하면 더 끔찍한 폭력에 노출됩니다. 연애시절에 여자를 때린 남자는 결혼 후에도 반드시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연애시절에 여자를 때린 남자는 결혼 후에도 반드시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휠씬 더 심하게 말이지요.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지, 주먹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p. 101 이유없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맞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생생한 공포는 느껴본 사람만이 압니다.
p.103 영화 똥파리 중
"이 나라, 씨발, 애비들은 아주 좆같애. 이게 븅신들 같은데 지 가족들한테는 아주 김일성같이 굴라 그래, 이 씨발놈들이. 니가 김일성이야, 이 씨발새끼야, 김일성이야, 이 씨발놈아."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가부장제도의 상관관계를 소름 끼치게 요약한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훈이 마음을 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순간, 그를 죽이는 사람은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성장한 신참 용역깡패 영재(이환)입니다. 영재는 자신이 상훈의 칼에 죽은 어머니의 복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이처럼 영화 속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누구 하나 자기가 왜 이렇게 폭력을 쓰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로봇처럼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 뿐입니다.
p.186
임금이 다를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목숨입니다. 기간제노동자의 고용기간이 2년을 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의무화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했더니, 기업들은 2년동안 부려먹은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아예 2년이 되기 전에 잘라버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규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사용자들은 그것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부릅니다.
p. 188
사람은 돈만 들어가면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비정규직으로 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있는 존재입니다. 불안정성이 외형적인 생산성을 높일지는 몰라도 불안한 영혼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에는 혼이 빠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혼이 빠진 상품이 고객에게 감동을 줄 리도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경제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면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와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경제논리에 기반한 정책만 양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날로 행복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양극화만 심화됩니다.
p.207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시피, 기독교계 일부는 이 영화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원래 자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입니다. 저는 텔레비젼에서 잠깐 인터뷰하는 제 모습만 봐도 '내 목소리가 왜 저렇게 나오고, 표정은 왜 저렇지?'카메라나 조명이 잘못된 게 아닐까?'하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기독교인끼리만 알고 있던 부흥회, 구역예배, 기도회 등의 모습을 객관해서 보고 듣는 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입니다.
p.228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젊은 남성들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더 의미있는 것이 되도록 병영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그런 문화 속에서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인권의식을 갖고 남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