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버스안. 갑자기 눈 앞이 뿌옇게 변했다. 우리딸 또래의 그 아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상한 우유를 먹으며 견뎠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가난이란 돈이란 무엇이길래 그 어린 생명에게 처절한 운명을 쥐어준단 말인가.

길을 지나가다가도 엄마를 잠시 잃은 아이가 눈물 범벅으로 울 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 아이가 우는 소리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곤의 어린 시절은 글로 읽는데도 마치 내 눈 앞에 생생히 보이는 거 같았다.

뉴스에서 가족동반 자살 소식이 나올 때면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 그 어린 나이에 고통을 받아야하나’ 생각하곤 했다.

p25 어느날 2박 3일만에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사라진 채 얼굴에 코피와 쿳물이 말라뭍어 엉긴 아이만 남아 탈진 상태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을 때,

그 아이의 옆에서 제대로 소독하지 못해 쉰내가 떠나지 않는 젖병 다섯 개를 채워두고 출근하면서 바깥 자물쇠를 걸어 잠기기를 48일간 지속한 다음 여름에 접어들자 부패한 분유를 먹고 토사물에 머리를 박은 채 파란 얼굴로 잠든 아이의 더운 몸을 안아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폭우와 태풍으로 정강이까지 차오른 물과 동네 주민들의 떠다니는 가재도구를 해치고 지나가 반지하방 문을 열자 흙탕물 속에 간신히 머리만 내놓고 물끄러미 아빠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과 마주쳤을 때,

 

지금 이 순간에도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나서 글을 쓸 수가 없다. 소설이라 인식하고 있지만 그 아이, 곤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해서.

아이의 아버지는 밀린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을 백자로 내려찍고는 아이와 함께 작은 차속에 몸을 담고 뛰어든다. 아이는 근처사는 노인에게 구출된다. 노인과 같이 사는 외손자는 아이에게 아가미를 발견하게 되고 곤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노인과 호수, 강물을 아는가, 호수공원의 어느 날, 바다의 방문, 진흙탕에서, 홍수속에서, 에필로그이다.

그 중 프롤로그, 바다의 방문, 홍수속에서는 곤이 구해준 여자의 목소리로 진행된다. 마치 인간극장이나 한편의 다큐멘터리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책을 읽었는데 영화를 본 듯한 착각은 아마도 이러한 구성 덕분이 아닐까. 

 

여자는 노인과 그 손자, 강하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마지막 소식을 곤에게 전하게 된다. 그 후 곤은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 더욱더 물에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는 8월 중순 늦은 휴가를 온 가족들이 나온다. 아마도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리라. 부부는 출발전부터 싸우고 아이들은 재미없다고 투덜거렸다. 여행목적이 아이들의 방학숙제였다. 그 집 소녀는 비치볼과 젤리슬리퍼를 물에 떠내려보낸다. 아이가 옷을 입고 나왔을 때는 떠내려간 비치볼과 젤리슬리퍼가 텐트 앞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소녀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여서 따라가 내 물건 때문에 물에 젖은게 미안하니 아빠옷을 빌려드리겠다고 하니 물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중요한 사람의 시체를..

곤은 너댓살에 아버지를 물에 잃고 오랜기간 같이 지내온 할아버지와 강하도 물에 잃었다. 그가 아가미가 생긴 것은 물 속에서나마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그의 운명때문인가. 생각해본다.  

맨 뒷장에는 곤이 구해준 여자와 같은 말투로 작가의 말이 이어진다. 왠지 작가가 그 여자 같은 착각이 들고 물에 가면 어딘가에서 곤을 만날 것만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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