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다잡을 수 있을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나 자신을 무한히 불신하던 그때, 세상의 모든 것이 쇼라고 느껴지던 그 시절에 읽었다면 다양한 죽는 방법 연구에 더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 시절엔 누군가 진짜 내 실체를 알게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부모님이 바라는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학원을 다니고, 부모님이 원하는 등수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내 모습을 가리기 위해 내 안의 무한한 고독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이 가면이었다. 그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게 되니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p23

나는 거기서 자칫 존경받을 처지가 된 것입니다. 존경받는다는 관념 또한 나를 몹시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사람들을 속이고, 그리고 어느 한사람의 전지전능한 자가 그 사기짓을 간파하는 통에 그만 모든 게 산산조각이 나고 죽는 것보다 더한 창피를 당한다. 그것이 ‘존경받는다’는 것에 대한 내가 내린 정의였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존경을 받아봤자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윽고 그의 말을 듣고 속은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내게 들이닥칠 분노와 복수는 아아, 과연 어떤 것일까. 상상만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습니다.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무서운 함정이다. 항상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보여주기 위한 나’로 살아야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남매의 첫째로 항상 부모님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니가 잘되어야 동생들이 잘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나로선 그 함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p30

“일부러 그랬지?”

나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일부러 실수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다케이치가 눈치 챌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나는 세계가 단 한 순간에 지옥의 불길로 떨어져 훨훨 타오르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것만 같아 헉하는 비명과 함께 자칫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침묵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친구들을 웃기려고 관심을 끌려고 노력했다. 무서운이야기, 귀신이야기를 제일로 싫어하는 내가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가능한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서 들려주었다. 많은 말을 하다보니 머리에 내용검증없이 말이 바로바로 나오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만남 후에는 항상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고 집에 올 때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곤했다. 나는 너무나 우울한 아이인데 그 우울이 들킬까봐 두려워 애써 명랑한척했다. 아마도 그 땐 나자신을 사랑할 줄 몰랐던 것이다.

인간실격을 읽기 전에 책날개에 있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설명되어 있는 내용을 읽었다. ‘우울한 삶이었네.’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는데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점차 짙어져갔다. 귀족원 의원 지방화족의 여섯째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어머니는 병약하여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Te는 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집 셋째동생은 항상 언니는 첫째여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위로 언니 둘이고 밑으로 남동생이 있는 셋째 딸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고달픈지. 난 장녀의 위치가 책임질 것이 많아 불평하느라 바빴다.

다자이 오사무는 열한명중 열째, 여섯째 아들이니 집안에서 존재감이 희미했을 것이다. 잉여인간. 느껴보지 못했지만 상상만 해도 자신을 비하시키기에 충분한 요건이다. 아웃사이더로서 반역의식으로 공산주의 운동에 참가하게 되나 그는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대지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p241
가장 우열한 형태로 자기 스스로를 망치는 것만이 사회에 대한 유일한 봉사라고 믿고, 1930년 스물한 살 때 사회주의 운동에서 도망쳐, 그날 밤 처음 만난여자와 사흘 뒤에 가마쿠라 바다에서 투신자살을 꾀한다. 하지만 여자만 사망하고 다자이는 구조된다.

그가 시도한 첫 번째 자살시도이다. 결국 인간실격을 쓰고 자살했다. 해설에서 보면 다른 작품을 철저히 독자를 중심으로 쓰여졌다면 이 작품은 자기자신을 위해 썼다고 한다. 난 인간실격을 어린 나이에 읽었더라면 너무나 빠져들어버렸다면...

다행이다. 이 작품을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된 후에 읽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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