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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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안 앉고 뭐해!”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나는 재빨리 쓰레기통을 끌어당겨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았다. 짜잔, 이게 바로 내 자리다. 난 바로 이 자리를 위해 학점 평점 4.3을 유지해왔다.(p16)

스물넷, 그 나이에 입사했다. 내가 이거하려고 들어왔나? 이런 생각 많이 했다. 부모님은 같은 해 몇 달 뒤에 있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해라고 했다. 너무나 일하고 싶은 공간이었다. 공원. 처음 답사왔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밥먹을 때도 잘 때도 꿈에서도 항상 내 머릿속 어딘가 말풍선처럼 항상 떠 있었다. 내 마음속 상상 속 공간이었다. 꿈의 공간! 그 곳에 입사했다. 당당히 공채로, 너무나 기뻤다. 공무원이 되길 바라시던 부모님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나와 한달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다. 아빠만의 시위셨다. 그래도 난 나의 꿈의 공간으로 출근했다. 매일 4시간의 출퇴근시간도 즐거워하며,,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단한가지 이유는 책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할 스물넷의 나를 찾기 위해서였다.

읽으면 읽을수록 ‘스물넷의 나’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휴학 합쳐서 대학교에 거의 6년이나 몸담았는데, 뭘 배웠는지도 모르겠어. 아까 그 여자 앞에서 무지 유식한 단어를 말하고 싶었거든? 근데 달랑 하나 생각난게 포스트모더니즘이더라. 그게 다야! 머리가 하얘지더라고! 나 회사 다닌지 3주만에 바보가 됐어.”(p98)
 

입사 3개월. 난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없었다. 보고서에 대장정리에 현장도 뛰어야하고. 그런데 관리라는 업무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자연은 계절이라는 시간에 맞춰 다양함을 제공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내 생각과 다른 일들. 내가 포크레인을 공일오, 공삼이,,이렇게 친근하게 장난감다루듯이 부를 줄을 꿈에도 몰랐다. 노가다 용어들. 한 대가리, 시마이 등등 일상용어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나는 저들처럼 일상에 젖어들어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나또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외모도 실력이다. 이를 부정할 방법이 없다. 그러고 보니 부장과 친한 홍보담당자들도 다 미인이었다. 가요계를 주름잡는 연애매체 기자들도 다 예쁜 편이었다.(p187)

이 말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된 진리였다.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학교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오직 사회만이 나에게 이 진리를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교 때 이 진리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신랑이 첫사랑이 아닐 것이다. 훗. 이 사실을 알고 난 스물넷에 교정을 시작했다.

‘세상에는 개새끼가 무수히 많으며, 그중 상당수는 우리 회사에 있다.’
학교선배가 첫 월급을 받은 기념으로 미니홈피에 쓴 글이다. 나는 이 문장이야말로 최고의 명문이라고 생각한다.(p212)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스물넷의 나가 생각났기에.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문학작품을 본 후 느낀 점조차도 다섯개 중에 하나 골라야했던 우리다.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라는 논술조차도 서울대 출신 강사가 알려준 대로 ‘새롭게’써야 했던 우리다. 교복 단추에 색깔 한번 못칠하게 해 놓고 이제 와서 창의성? 그게 중요하다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와서 창의성을 내놓으라고? 시키는 대로 안살면 평생 낙오되어 굶어죽을 것처럼 협박해놓고, 이제와선 네 뜻대로 한게 뭐가 있느냐고 꾸짖는 모양새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창의성 좀 보자고 했다고, 또 쪼르르 달려가 이게 내 창의성이에요, 하는 애들이 진짜 창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건가?(p352)

주말이면 학원을 전전했다 영수는 기본이고 사탐 과탐, 언어영역은 심지어 학원을 두군데 다닌 적도 있었다. 서울대출신강사에게 강의 받으려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부모님 나에게 참 많이 투자하셨구나 생각이 된다.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책을 읽고 싶다. 공부는 내가하는거지 학원이 대신해주는게 아니였다. 대학가서 진짜 공부가 뭔지 알게 되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우리부모님 고생 덜 시켜드리는건데. 내게 남은 건 창의성도 뭐도 아닌 후회뿐이다.

읽는 내내 사회초년생의 나, 그 때의 내 모습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수와 마음씨 좋은 과장님을 만났다. 내 사수 대리님을 보며 생각했다. (그 분은 진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착했다.) ‘세상 착하게 살아서는 이용만 당하겠구나.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까칠해지는 수밖에 없다.’, 여자인 내가 남자들뿐인 그 사회에서 내가 살아남으려고 쓴 가면은 까칠함이었다. 열정? 그런 건 집에 두고 와야지 내가 상처받지 않는다. 훗. 그것이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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