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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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가오리는 결혼한지 몇 년차에 빨간 장화를 썼을까?‘

한 장씩 한 장씩 넘길수록 짙어지는 생각이다.

‘결혼한 모든 여자들이 히와코와 같은 감정을 느낄까?’

난 그랬다. 공감했다. 히와코에게.


결혼한지 10년차. 쇼조와 히와코는 아이가 없다. 쇼조는 중견식품회사의 부장이고 집안인이라고는 도와주는 않는 남자이다. 그런데 세상으로부터 아내를 지켜준다. 아내를 사랑한다. 자상한 남편이다. 그리고 아내 히와코는 원예점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쇼조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이가 없어서 일까 히와코가 느끼는 감정들은 일반 주부보다 휠씬 세밀하다. 전개는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책들과 비슷하다. 도후쿠 신간센, 군것질, 실버카...와 같은 소제목을 중심으로 히와코와 쇼죠가 느끼는 감정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도호쿠 신간센

p15 의미를 읽은 말은 히와코를 제외한 부모자식 사이에서 마치 암호처럼 오갈 뿐이다.

“왜 내 말은 통하지 않는걸까?”


시집온 지 5년차 시댁이랑 30초거리에 살아서 그런지 갈일이 많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시댁에 갈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히와코가 아마도 아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같은 일이라도 다르게 해석한다. 서로 생각해서 하는 행동들과 말이었는데 오해가 쌓이고 감정의 골이 생긴다. 이것이 내가 느낀 시어머니와 며느리사이의 관계이다. 고부간의 관계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의 성격차이도 적용된다. 우리 시어머니는 활달하시고 외향적이시다. 며느리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이러한 차이가 성격차이 일 수도 있는 문제가 무슨 관계냐에 따라서 갈등양상이 다른게 펼쳐진다. 고부관계는 항상 남편이 중간에 끼인다.그것이 문제다.


#군것질

히와코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 쇼조는 히와코의 외출이 달갑지 않다. 히와코가 깨워도 도대체 일어나지 않는다. 쇼코는 침실의 TV, 거실의 TV 모두 켜놓는다. 아침을 늦게 먹고 먹자마자 점심은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어본다. 히와코가 샌드위치라도 사먹으라고 하자 같이가자고 한다. 히와코는 이미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그녀에게 굳이 한입먹고가라고 한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늘어난다. 나와 상대가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생기는 결과이다. 처음에는 왜 휴지는 여기 두냐고, 안경은 찾을수 있는 자리에 두라고, 항상 잔소리와 의미없는 싸움이 반복되지만 시간이 흐르면, 포기하게 된다. 아니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랄까? 그럼 편해진다.


p43 "요즘은 말이지, 마침 공원의 수국이 예뻐. 분홍이며 파란빛이 도는게 말이우“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인데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같은 수국이라도 누가 언제 보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나에겐 소중한 것들이 다른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다. 요시노할머니에게는 예쁜 수국이 히와코에게는 별의미없는 것처럼.

p58 히와코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순간 놀란다. 배워도 배워도 자꾸만 잊어버린다. 이 사람에게는 내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까다로운 조건을 대부분 충족시킨 사람이다. 그 땐몰랐다.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지를. 처음에는 서로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화내고 싸우고 했다. 몇 년이 지나게 되니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해도 어느 부분만 피하면 되는지는 알게 된다. 그것이 생활의 규칙을 가져온다. 그 속에 갇히게 되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찾게 된다.


p66 초조, 불안, 의지할 곳 없는 기분, 쇼조에게 돌아가 안정을 되찾고 싶다고 느낀다. 혹은 빨리 쇼조를 만나고 싶다고.

………………………

홀연히 정말로 홀연히 히와코는 이해한다. 나는 쇼짱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그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발견이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그리고 털끝만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그 발견에 히와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았지만 왜 그런지 납득이 갔다.


서로 다른 시점으로 다른 시간을 보내는데 아내라는 이유로 남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들어줘야하고 100%공감해야한다는 사실.

그렇지 않게 되면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을 바랬던 상대방은 상심하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화를 내게 된다. 부부라면 항상 공감해야한다는 사실. 새삼 깨닫는다 부부라는 이유로 그러한 의무감을 지녀야한다는 사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 질수록 듣지않게 될 수도 있다. 쇼코처럼, 그 사실을 알고도 계속 이야기하는 히와코처럼. 그래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 부부간의 대화도 차츰 사라진다는 것.


p97 히와코는 쇼조를 착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착한 사람인 쇼조에게 아낌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서글펐다. 쇼조와 마주하기 보다 쇼조의 빨랫감을 마주하는 편이 행복하다는 것이, 쇼조와 함께 있을 때보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 더 쇼조를 좋아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연애를 할 때, 결혼 후에도 우리는 실제인물과는 다른, 아니 다를 수도 있는 가공의 인물을 마음 속에 하나씩 만든다. 가공의 인물과 실제의 인물과 차이가 날 때 우리는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좁은문에서 알리사가 제롬에게 했던 말처럼.


p162 히와코는 빨간장화 과자가 자신과 쇼조의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어긋남의 상징처럼


p193 "결혼기념일 이나까, 뭔가 쇼짱이 좋아하는 걸로 먹자.“

히와코는 고개를 갸웃한다. 쇼조 이외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날을, 자신이 미련퉁이가 된날을, 대체 왜 기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기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 속의 작가와 대화하며 읽어나갔다. ‘반짝반짝 빛나는’, ‘울 준비는 되어있다’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났고,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를 통해서 그대로 드러낸 모습도 만나보았다. 빨간 장화 다음의 일곱빛깔 사랑 속에서의 에쿠니 가오리도 궁금하다. 한권 한권 읽으며 잊고 있었 것이 생각났다. 나의 취향, 대학교 때는 공강시간에 언제든 읽을 수 있었다. 책편식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다양하게 읽으려 노력중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만나니 마치 맞춤옷을 입을 듯 편안하다. 아마도 읽고 있는 책들이 내 몸에 너무 맞지 않아 불편할 때, 다시 찾게 될 것 같은 책.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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