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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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지 절교인지 모를 만큼 절이라는 공간을 사랑한다.

절의 지붕과 산하늘이 맞닿은 그 지점이 눈이 아릴만큼 쳐다볼 때도 있다. 자유로운 몸이어던 시절에는 생활하다 보면 절에서 오라는 소리가 들리는 때가 있다. 만사 제쳐두고 통도사로 달려갔던 나이다. 지금은 그 시절을 회상할 뿐이다. 절에 갈 때는 머릿 속 생각들은 집에 두고 가야한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머리 속을 비우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그래야만 절의 그 풍경들이 오롯이 그 풍경만으로 눈이 담을 수 있다.

평소 절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고맙게도 나에게 와준 이 책은 하늘과 산과 절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풍경을 내 눈 앞까지 고스란히 담아 가져와 주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책만 펼쳐들면 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p198 절이란 삶이 힘겨울 때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찾아가서 지친몸을 누이는 곳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도 절이란 그러하다. 평소 내가 즐겨찾던 통도사, 1시간 넘게 버스의 울겅거림을 거쳐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 한껏 마음을 비우고 나면 도착하던 그 곳이다. 절에 갔다오면 왠지 새로워지는 느낌이다. 삶의 묵을 때를 벗기고 오는 느낌. 그 새로움이 좋다.

 

p246 꽃무릇 사람들은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용천사의 누각도 상사루이다. 꽃과 잎이 운명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꽃이다. 꽃이 필때는 잎이 사라지고 잎이 나오면 꽃은 또 자취를 감춘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공원에서 일하던 시절,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꼭 찾는 곳이 있었다. 상사화꽃밭. 빽빽하게 심겨진 다른 꽃밭과는 달리 그 곳에는 여백의 미가 있다. 꽃이 필 때면 꽃대만 솟아 올라 그 끝에 커다란 꽃송이가 달린다. 그리고 시간 텀을 두고 방문을 하면 그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땅에 붙은 기다란 잎들이 밭에 듬성듬성 나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곤란한 품종이었다. 꽃과 잎이 만날 수 없으니 행여나 그 텀에 그 곳을 지나간다면 아무것도 심겨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도 그 꽃들은 꿋꿋히 생명을 이어간다.꽃들의 그 사연이 안타까워, 공원에 어울릴 수 없음이 안타까워 그 꽃밭을 자주 간 기억이난다.

 

한 장한장 넘기면 넘길수록 눈이 맑어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내가 앉아있는 곳이 어디든 간에 절에 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작가분이 찍은 사진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풍경 속 풍경들이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아 그런가보다. 아마도 현실 속에서 문득 절이 너무나도 가고싶어질 때 펼쳐보게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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