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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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로 그 점이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작은 관심 하나로 책 한 권을 읽게 되고,
그 책 안에서 발견한 작은 흥미 때문에 그 다음 책을 읽게 되고, 거기서 찾아낸 것 때문에 또 다시
다음 책을 읽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독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됩니다.
거기에는 가시적인 한계도 없으며,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이유도 없습니다."

 

 

 

 

 

 

 

 

 

친애하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 모두에게

 

 

 

내가 건지 섬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았네요. 우선 줄리엣과 그녀의 남편에게 무한한 축하를 전할게요!

제가 그 곳에서 직접 축하해줄 수 없어 매우 안타까울 뿐인걸요! 줄리엣은 항상 당차고 유쾌한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관찰력이 뛰어난 이솔라 덕분에 줄리엣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네요! 사실 줄리엣은 그 전에 왔었던 남자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제 예감이 맞았군요.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서 전 정말 기뻐요.

혹시 줄리엣은 글을 쓰고 있나요? 어떤 소재로 글을 쓰고 있나요? 혹시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쓰고 있나요?

그렇다면 정말 좋겠어요! 아니면, 사랑이야기를 넘어 지금의 생활들을 이야기 해주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그 곳에 없는 저도 책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 있을테니까요. 저는 건지 섬을 떠난 후유증때문인지,

아니면 이 곳의 바람이 차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이솔라의 관찰력을 능가하려는 저의 다분한[?] 노력때문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요. 지금 나에게는 이솔라가 만들어주는 약이 필요해요.

아니면 제가 건지 섬에 발을 내려 놓았을 때 저를 맞아주었던 이솔라의 그 다소 격한 포옹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도시는 행복한가요? 당연히 행복하겠죠! 으흐흐, 제가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을 했나요? 정말정말 부럽다고 전해주세요!

하지만 도시 조금은 실망이예요. 여자가 먼저 다가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도시는 몰랐나요?

하지만 전 두 사람의 인연이 닿아서 정말 기쁜걸요! 다음에 보게 되면 소년처럼 수줍어하던 도시는 이제 그만

안녕 - 해버리고, 듬직한 도시가 되어있길 바랄게요! 아, 은 아직도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나요?

처음 줄리엣을 대할 때 경계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의아했어요. 지금은 그렇게 잘 따르는데 말이예요!

제가 있을 때는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마지막에 떠날 때 즈음 되서야 친해져서 많이 아쉬웠다구요.

다음에 가면 킷은 몰라볼 정도로 많이 커서 숙녀 티를 내고 있겠죠? 아! 정말 기대되는걸요!

아멜리아는 아픈 곳은 없나요? 꼭 그래야만 해요. 저는 힘들 때 북클럽 회원분들 몰래 아멜리아에게 상담하고

차분한 말투에 위로를 많이 받곤 했는데, 항상 저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아, 엘리자베스의 소식은.. 그로 인해 저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에 빠졌어요.

그 곳에 갔을 때 저도 꼭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그녀의 재치로 인해 만들어졌는데,

창시자인 그녀를 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하지만 북클럽 회원분들께 들은 엘리자베스는 참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을 것만 같아요! 아니, 분명 그럴거예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의 모든 것을 들려주어야만 해요. 특히 그녀의 러브스토리는 너무나도 낭만적이예요.

하품하거나 하는 하는 그런 무례함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테니, 부디 다시 또 들려주길 바랄게요.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제인 오스틴과 셰익스피어의 책을 읽어본 적 없다고 한 저를 다들 의아하게 쳐다보셨던 것을요.

'어쩜 그럴 수가 있나'라는 눈빛이었는데, 너무 부끄러워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네요. 언젠가 꼭 읽어보겠어요.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공유할거예요. 그때는 저도 그 대화에 꼭 끼고 싶어요. 몰라서 멀뚱멀뚱거리는건 이젠 싫다구요.

 

아! 이 곳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요. 그 중에서도 나와 인연인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좋은 사람들뿐이예요!

언젠가 그 사람들에게 당신들을 소개할게요. 아마 만나면 당신들도 분명히 좋아할 수 있을거라 의심치않아요.

 

나는 당신들을 통해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엿보았어요. 항상 매사에 투덜대는 나를 돌아보게 됐구요.

나에게 그런 깨달음을 안겨준 당신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마음이 커요.

나도 고마운 마음들을 고스란히 담아 당신들에게 전해야 할텐데,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전하죠?

 

 

ps. 그 때 먹었던 감자껍질파이가 생각나네요. 꼭 한번 다시 만들어주세요! 열개를 만들어 주신대도 전 모두 먹을 수 있어요.



 

 

당신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요. 다시 볼 날을 기대하며,

reerah.

 




 

난 사실 요근래 모든 책들을 부정적으로 읽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 책을 들고 그들이 사는 세계 속에 들어가 편지로 하여금 그들의 생활을 엿볼 때는 너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직 살아있군. 하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죠.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의 단 몇 분 뿐이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이었는데, 그들이 밝은 모습만을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작가인 메리 앤 셰퍼는 그리고 애니 배로스는 끔찍하고 견디기 힘든 전쟁과 나치 점령기의 상황을 그들의 긍정적으로 순화시키고 싶었을테지만, 그것만으로 치유되기엔 너무나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최대한 우리에게 전쟁의 적나라함을 그리고 그들을 통해 긍정적인 면들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그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니, 아마 다 못느꼈을 것이다.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의 몇 배보다 더 적은 양을 난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감이 될 수 있는 건 난 그 상황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도 일제강점기라고 불릴 때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건지 섬에 가면 정말 그들이 있을 것만 같고, 그들이 날 반갑게 와락 껴안아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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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 불통의 시대, 소통의 길을 찾다
정관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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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싸움이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서로가 얻고 배워 가는 과정이다.

배우는 토론을 해야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성립한다.(p232) 

 

 

 

 

 

'토론'하면 100분 토론을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토론문화에 대해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처음 100분 토론을 시청했을 때, 마냥 신기해하며 '아 저런게 토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주장을 말하기 앞서 원인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대책론을 펼쳤는데, 그 의견들이 나와 반대될 지라도 멋져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대립되는 주장이 들어오면 그 주장들을 경청하기보다는 무조건 반박하거나 회피하거나 심지어 그 속에서 말꼬리를 붙잡는 식의 대화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이는 그들을 보며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에는 매우 배타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토론이라는 것도 한마디로 말발(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말의 힘)이 세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상 우리가 토론이라는 점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는 곳은 대중매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이 보고, 그것이 토론이라는 문화로 우리에게 인식되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토론에 대한 정립을 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저자는 친절하게도 우리는 알 수 없는 방송토론의 숨겨진 진상을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고발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카메라를 보고 다수의 국민을 자기의 편에 세우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show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는 토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봐도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개인은 사상, 이념, 가치관, 정치의식이 각기 다르기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쪽으로 유리하게 당기기 위해 상대방의 주장은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않고 심지어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을 끊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바쁘다.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내가 남을 설득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설득될 수도 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비로소 남을 설득할 수 있다.(p234) 라고 충고하고 있다.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문제점을 고찰하고 일리가 있는 말은 수긍하며 서로 합치점을 찾아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한다는 것이 주 목적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소리 내기에 바쁘기 때문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는 커녕 그것이 싸움으로 변질된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싶고 그렇게 목소리가 크다면 웅변에라도 나가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할말이 없다. 나 또한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아 이견을 좁히기보다는 감정을 우선시해 결국엔 본질을 흐리고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인신공격이 되기 십상인 발언들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한 대책으로 저자는 몇가지의 대책 방법을 내세웠고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I-Message(나-전달법)였다. 책에서 나온 예를 들면 "당신 때문에 통화를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잖아요. 당신 왜 그러셨어요?" 와 "제가 고객과 통화하는 중에 당신이 방해해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객기 요구하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의 차이인 것이다. 둘 다 같은 말이지만, I-Message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상대방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를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함으로써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표현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때문에 불쾌함을 받았다면 I-Message보다는 You-Message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를 악화시킨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한 문학동아리를 들었었는데, 그 동아리는 책을 읽고 그 책을 읽고 난 후 자신들이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그 후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놓고 찬반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었다. 그 당시 토론의 주제가 되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 사형, 낙태, 안락사, 원정출산 등등이 있었는데, 토론이라는 그 자체보다는 우리끼리 하는 간담회식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며 '맞아맞아.'하며 맞장구 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내 입장만 내세우기 바빠서 귀 막고 입만 살아있는 귀머거리가 된 기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불통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소통이라는 것을 감정으로만 치부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저자가 불통에 대해 예를 든 것이 방송토론과 정치적 갈등이었다. 하지만 그 예들이 정치적으로만 국한되어있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저자의 말대로 단 하나의 진실만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토론보다 무의미한 것은 없을 것인데, 내 생각엔 정치는 그 뒤에 숨겨진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을거란 생각에 앞뒤가 안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너무 자극적인 발언들, 지나치게 극단론을 펼치는 인사들은 이제 무시해야 한다. 비판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p198)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올바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이 책이 만들어진 목적일텐데 저자는 무시하고 비판조차도 하지말아야한다고 하고있다. 대한민국의 불통을 문제로 삼긴 했지만, 불통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그로 인해 생겨난 문제들, 전쟁 등을 범본으로 예를 들어주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도 남겨본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몇번씩이나 강조하며 불통을 심각성을 얘기했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불통 속에서 소통이라는 한줄기 빛을 찾아낸 지금이고, 그 빛을 우리 모두 노력하여 잡아 끄는 일밖에 남지 않음을 나는 느꼈다.

 

 

 

이제 연극은 끝났으니 출연진 모두는 무대에서 내려와 관객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길 바래본다. 관객은 구지 초대해야 오는 관객도 있겠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고 찾아가는 관객도 있다는 걸 더불어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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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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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의 작품은 '퍼즐'로 만나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솔직한 감정으로 말하자면 '에레이'였다. 그러다가 표지에 끌려 작가의 이름을 보았더니, 아뿔사 권지예다. 그래서 시작도 하지말아야지 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손에 들어왔고, 전작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책을 읽어 나갔다.
 
 
추리소설이란 군더더기없이 사건의 진상들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조금은 짜맞췄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고, 저자 권지예는 로맨스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건지, 추리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복합된 로맨스추리소설을 쓰고싶었던건지, 모르겠다.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둘의 사랑을 표현해내는 부분들에서 둘의 감정을 억지로 짜맞추기한 것 같은 우울함을 발산해낸다. 이 책이 아무리 갈수록 진실들이 표면에 비치고 얼룩진다 하여도 둘이 사랑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조금은 심증을 기울여야 하지 않았나 싶다. 난 로맨스소설을 이렇게 어두운 뒷모습으로 바라본 건 또 처음이지싶다. 게다가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얼토당토 않다. 복선이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건 진상들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게다가 난 분명 관찰자 시점으로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바뀌어버리는 1인칭의 그 혹은 그녀. 내가 책을 잘못 읽은건지 다른 서평에서는 그런 의문점이 하나도 없었다. 언젠가 저자를 만나게 된다면 책을 들고 따지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참! 강선우 씨 가족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그럼, 강선우 씨가 고아라는 건 알고 있나요?"
"두 분이 사귄 지 얼마나 되셨는데요?!"
"그럼, 강선우 씨가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것도 모르시겠군요."
 
 
선우에게 혐의가 있건 없건간에(형사의 저 뒷말엔 강선우에겐 혐의가 없다는 말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더더욱.) 인권 보호차원에서 그런 얘기를 삼가해주어야 하는게 형사의 몫이거늘, 그것도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형사는 말을 꺼내고 헛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전에 대화한 사건진상의 표명을 알아내기 위한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긴 한것인가? 복선을 깔아주려는 권지예의 시도는 몇 번씩이나 있었지만, 너무도 뜬금없는 진상들은 서인의 머릿 속과 함께 나의 머릿 속도 혼란시키기에 충분했다. 읽는 내내 권지예는 도대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짐짓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기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던 너무도 뜬금없는 결말. 도대체 형사는 이 책에서 몇 가지의 복선을 깔아준 것 말고는 어떠한 일을 행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내겐 당신의 모습이……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면…… 윤곽만 보이고 당신의 모습은 어둠에 잠겨 있어. 그래서 답답해.
가끔은 내 마음에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야.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니까." p95
 
사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결국 상처를 입히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넌 제대로 사랑을 한 거야. p131
 
 
천사라는 분장을 한다고 해서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요, 악마라는 분장을 한다고 해서 악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아픈 날들의 또 다른 선우 미카엘. 지금 그 병든 마음을 누구에게 위로받자고 무고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가. 관찰자인 척 하면서 남몰래 선우를 서인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감싸 안기만 하는 저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선우의 행동들은 어떠한 이름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다. 처음부터 거짓으로 똘똘 뭉친 사랑이라는 거짓된 이름이 그들의 중심에서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사랑을 비웃고 있다. 선우와 서인이 느낀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지않는다. 선우는 자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거짓된 말과 행동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서인을 보면서도 곁에 두려한다. 또한 내가 서인이었다면 그리고 정말 그를 사랑했다면, 그의 내면 속에 들어가 미카엘을 어루만져주는 방법을 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의 감정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으며, 한낱 감정에 이끌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난 둘의 처절한 사랑도 애절한 사랑도 느낄 수 없었다. 권지예가 풀어나가는 사랑에 대한 통찰이 조금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와닿지않았을 뿐더러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찾을 수가 없다면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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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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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보지 않아도 한비야의 책의 표지엔 모두 그녀의 얼굴이 우리를 맞아준다. 그래서 처음에 '이 아줌마는 도대체 뭔데 책을 쓸 때마다 얼굴을 이렇게 홍보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한비야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하, 긴급구호팀의 팀장이라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퐁당퐁당 생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유명세를 탄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예인이 쓴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책을 구입했다가 괴발개발 써놓은 문장들을 보며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까지 이르렀던 책이 있었기 때문이랄까. 그래서 왠만하면 그들의 책은 한결같이 NO를 외치게 되는건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책을 읽기 전 긴급구호팀을 그리 좋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리나라에도 식량난에 허덕이는 아이들, 노인분들이 얼마나 많으며 후천적인 요인으로 또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몸이 불구가 된 사람들이 살기에 이 나라가 얼마나 각박한가. 그런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몰라라 내팽개치고 다른 나라로 가서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라는 생각이 내 머릿 속에 박혀있었나보다. 하지만 그녀의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다 우리의 가족이고 친구라던 말이 뇌리 속에 박힌다.

 

 

나에게 그녀의 책 중 '그건, 사랑이었네'가 첫 작품이다. 처음 제목만 보고 명색에 긴급구호팀장이라면서 이런 사랑을 운운하는 글을 썼단말이야? 라고 생각하며 첫 책을 펼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속의 내용들은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에 적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 작품으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손에 들었다. 사전에 조사[?]한게 있기 때문에 여행가라는 사실도 언뜻 떠오르며, 이 책도 역시 제목만 보고 이건 여행에세이를 써놓은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울컥하게 만드는 긴급구호생활들을 세세하게 써내려간 책이다.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기 전 이 책을 먼저 읽어도 좋았을껄 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그녀가 처음 일을 시작하고 5년동안을 써내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시간, 그 어떤 것이라도 처음 시작은 우리에게 좋은 관계의 습관을 짤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준다. 지금 나에게 그 기회가 왔다는 걸 잊지 말자. (p29,30)

 

 

하나하나 다 가슴에 담아두고 내가 힘이 들 때 그들을 생각하며 내 힘든 일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작가 할레이드 호세이니 작품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나 <연을 쫓는 아이>의 배경이 되었었던 아프가니스탄이다. 탈레반 시절, 자기 언니가 옷 바깥으로 손목이 보였다고 길거리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다며 미리암은 부르카 벗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부르카뿐만 아니라, 탈레반은 여자들이 있을 곳은 집 아니면 무덤뿐이라고 하면서 여성의 일과 교육을 원천적으로 막았단다.(p40)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이를 대변해주는 말들이 많이 나왔었다. 사실임을 알면서도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기에 소설이라고만 믿고 싶었던 그것들이 정말로 있었다는 문장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탁탁 막혀왔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 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거야. (p21) 나는 항상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자극하고 노력하려 하지만 이따금 슬럼프가 찾아올 때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지며 회의감도 든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잘나면 얼마나 더 잘나겠다고 나를 스스로 구속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도 허다했다. 하지만 한비야는 나와는 반대로 자기 일을 즐기고 있다. 자기 안의 꿈틀거리는 에너지들을 쏟을 일을 찾았다는 것. 그게 가장 부러웠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p14)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즐겁게, 열정적으로, 힘들어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 그 일들을 하려면 아직은 내가 조금 더 노력을 해야한다는 거겠지. 늦었다고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는데, 한비야는 그런 나를 알아봐주었는지 충고를 해준다. 시계가 우리 인생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지금 정오를 조금 넘기고 커피를 한 잔 하며 휴식을 취할 때라고. 하지만 그의 반절인 나이를 가지고 있는 나는 아직 오전 6시다. 내가 노력하는 한 나에겐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믿고, 내 지도 밖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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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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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리 밝히건대, 나는 미술을 데리고 노는데 혼이 팔렸던 사람이다. 놀기를 즐기는 사람한테 배우고 익히는 걸 얻으려 하는 것을 두고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한다. 그러니 미술의 저 까마득한 세계에서 대어를 골라 낚을 학도나 전문가들은 이 책을 덮는 게 좋겠다. 이 책은 미술을 데리고 놀아볼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다."

 

 


그림을 꼭 알아야만 그림을 볼 자격이 되는가? 그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같이 그림에 대해 문외한 사람도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이 나에게 전해주는 그 무언의 감정을 참 좋아한다. 나는 그림을 볼 때 가끔 내 감정선이 그림에 스며서 녹아들며 그것을 느끼게 된다. 내 기분이 조금 하강세를 보일 땐 아무리 경쾌하게 붓질을 한 그림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 가는대로 보기 마련이기에 조금은 우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안목이 없어서라고 해도 할말은 없다. 그림을 볼 때 있어서 내가 그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은 안목이나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욕심을 낸다면 그것을 작가의 작품의도를 집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책, 같은 영화를 보고 각기 생각하는 것이 다른데, 하물며 그림이라고 그것을 보는 생각이 같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면 난 아직도 피카소의 그림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책에는 피카소, <아코디언 주자>와 브라크, <기타를 든 사람>이 함께 나온다. 어떤 사람은 추상적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마치 미치광이가 그려넣은 그림같단 말이다. 추상적이라도 너무 추상적인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엔 내 머리가 아직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모양이다. 적어도 그림을 봤을 때 불편한 감은 없어야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난 피카소 그림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 속이 복잡해져온다.

그림이란 것은 그림 이전에 화가와 감상자의 교류가 이어져야 그 그림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난 피카소의 그 그림의 배경도 모르니 이해할 수가 없다. 나중에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하고 배경지식을 알게 된다면 그의 그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건 그때 두고봐야 할 일이다.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보며 미국인들은 말한다. "초상화라면 인물, 풍경화라면 바다가 있어야 할 것 아냐. 이건 기왓장이 폭발하는 장면인가." 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이걸 처음 보는 사람이 '아!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그린거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난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로보트를 그려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철주의 해석을 봐도 난 도저히 이해불가다. 그냥 지금 내 눈엔 자기 멋대로 그려놓고 '이건 이거야.'라고 우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난 그림을 배우는 입장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가보다.

 


 

화가가 그린 그림 속에는 그가 선택한 욕망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감상자는 화가의 욕망에다 자기 욕망의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 초점이 삐끗할 때, 감상자와 화가의 차이가 발생한다. (p265)

 


손철주는 '작품을 감상할 때는 몇 걸음 물러서서 화면을 보라.'라는 미술관 푯말과는 다르게 '작품은 최대한 가까이서 봐야 한다.'라고 권하고 있다. 한 작품의 숨은 모습이 뜻밖에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서 몇가지의 작품들을 설명해놓았는데, 이렇게 명쾌할 수가 있나. 그림들이 없어서 찾아서 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몇 번 본 그림에도 불구하고 '아, 귀퉁이에 이런 것이 있었어?'하는 어리석은 말들을 내뱉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오롯하게 작품들을 이해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볼 때 중요한 tip를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기억은 실물을 덮어버린다. 풀은 초록색이라는 기억, 사람의 팔은 양쪽이 같다는 지식이나, 눈은 둘이요 코는 하나라는 정보 등은 그림의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한다. 교양에 복종하지 않는 천진함, 대상의 고유한 진실을 파악하는 어린아이의 눈이 그림을 그림으로 보게 한다. 그림을 보되 겉모양만 보는 사람은 달은 가리켰으되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사람과 같다.(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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